[홍성기 시대세평] 김정일을 개혁개방으로 ‘조용히’ 몰고가는 법

▲ 김정일이 북한 해군 제291군부대 산하 구분대를 시찰하는 모습 ⓒ연합

I.
이회창 한나라당 전 총재는 자신의 대선출마를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대북정책이 모호하다는 점을 주요 근거로 들었다. 그러나 사실상의 경선불복을 의미함에도 불구하고 유권자 20% 내외의 지지도는 그의 ‘강경한’ 대북정책에 지지를 표시하는 층이 결코 적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한편 일부 보수 논객들이 이회창 전 총재의 지지층을 ‘극우’로 지칭하고 있지만, 그것은 내용적으로 옳지 않고 형식적으로는 자가당착이다. 비록 ‘극우’라는 개념이 면도날로 자르듯 날카롭게 정의되지는 못하지만, 한 정치 집단이 “극우”로 지칭되기 위한 필요조건에 ‘인종주의’와 ‘국수주의’가 속한다는 사실에는 -한국의 친북좌파 이외에는-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다행히도 한국의 보수층은 그 유래가 어떻든 외부세계에 열려 있으며, 한반도에서 인종주의를 공식적으로 표방하는 집단은 ‘김일성민족’을 내세우는 북한의 노동당이 유일하다는 점에서, 한국에 극우는 없다. 또 만약 이 전 총재의 지지층이 ‘극우’라면 그의 출마를 이명박 후보 지지자들이 보수진영의 “분열”이라고 부를 수도 없다.

다른 한편 이명박 후보가 외국의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햇볕정책을 계승하겠다”는 주장을 하였다는 것은 명백한 오보라는 점에서, 그리고 정형근 의원이 중심이 되어 작성한 「한반도 평화비전」을 집권 시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한 점에서, 이명박 후보의 대북정책을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대북정책과 동일시하여 좌편향 되었다고 단정하는 것도 분명 잘못이다.

II.
중요한 점은 보수진영이 대선에 승리하였을 경우 현재 한반도의 상황 하에서 가장 적절하고 실현가능한 대북정책의 원칙과 실천방안을 수립하는 것이다. 또 이명박 후보의 대북정책인 「비핵개방 3000」 즉 “북한이 핵을 폐기하고 개혁․개방을 결단하였을 경우에 향후 10년 내에 국민소득 3000달러에 이르도록 경제협력을 하겠다”는 ‘조건부 경제지원 정책’도,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고 개혁․개방을 하지 않았을 경우에 어떤 정책을 실시할지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인권과 정치군사적 측면으로의 논의의 확대가 절실히 필요한 상태다.

이런 맥락에서 지난 11월 9일(금) 북한민주화네트워크가 개최한 “신(新)대북정책을 논한다: 한반도 평화 무드와 북한의 선택”이라는 제4차 북한전략포럼에서 발제, 토의된 내용은 매우 중요한 점들을 시사하고 있다.

포럼의 발제자 중 한 명인 한국국방연구원의 군비통제실장이자 핵전문가인 김태우 박사는 북핵문제와 관련하여 한 여권 후보의「선순환론(善循環論)」을 분석하였다. 선순환론이란 “핵 해결이 남북관계 개선에 도움이 되지만 남북관계를 개선시키는 것도 핵 해결에 도움이 되므로 핵문제에도 불구하고 대북경협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선순환론의 문제점은 이중적인데, 그 하나는 선순환이 이루어진다는 보장도 없지만 동시에 선순환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단정도 어렵다는 것이다. 즉 선순환론이 “선(先) 경제지원이 핵폐기의 이유를 제거한다”는 비판이나, “선 경제지원이 핵보유의 이유를 제거한다”는 희망 모두를 논리적으로 배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선순환론이 성공할지 실패할지 아무도 100%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 그 핵심이다.

선순환론과 관계된 이중적 불확실성이 형식논리적으로는 타당할지 모르지만, 경험세계의 주장으로는 좀더 세심한 검토가 필요하다. 그것은 마치 “땅에 씨를 뿌리면 싹이 튼다”는 주장에 대하여 아무도 100%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 논리적으로는 타당하지만, 이런 불확실성은 경험세계에 대한 모든 주장이 갖고 있다는 점에서 실은 말하는 바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차라리 우리는 토양의 질과 습도, 기온 등과 함께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서 “싹이 튼다” 혹은 “싹이 트지 않는다” 등의 주장을 분명히 함으로써 하나의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것이, 설사 이 주장이 논리적으로 100% 확실하지 않더라도 더 일반적이며 더 생산적이다.

바꿔 말해 선순환론은 우선 경제지원을 할 경우 북한이 핵을 폐기할 수 있는 토양을 갖고 있는지, 또 과거에 선 경제지원을 하였을 경우 북한이 취한 행태를 살펴보고, 선순환론의 성공-실패 여부를 단정하는 것이 옳은 태도이다.

그렇다면 선순환론이 성공할 수 있는 토양이란 무엇일까?

필자가 볼 때 그것은 북한의 개혁개방 이외에 다른 것일 수가 없다. 왜냐하면 경제지원이란 그 목적이 ‘단순히 북한 정권을 먹여 살리는 것’이 아니라 ‘북한 인민 스스로가 먹고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이며, 이때 지금과 같은 폐쇄적 체제로는 독자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명백한 사실이다. 따라서 체제개방은 선순환론이 성공할 수 있는 토양이다. 즉 체제개방의 결단이 없는 상태에서 선순환론은 북한정권을 단순히 먹여 살리는 퍼주기식 지원 이상이 될 수 없고 그 결과는 지난 10년간 익히 체험하여 결국 북한은 핵보유에 이르게 되었다. 바꿔 말해 북한은 계속 퍼주기를 유도하기 위해서라도, 즉 선순환론이 끝임 없이 제기되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그 발단인 핵무기를 보유할 것임은 거의 분명하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선순환론이란 실은 햇볕정책의 다른 이름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님을 알 수 있다. 다만 ‘개혁개방’ 대신에 ‘핵폐기’를 목표로 했을 뿐 그 구조는 완전히 똑같고 실은 임동원씨의 선공후득론(先供後得論)을 말만 바꾼 것이다. 따라서 실패한 햇볕정책이 폐기되어야 한다면 선순환론 역시 동일한 이유로 결코 선택될 수 없다.

III.
선순환론으로 핵폐기가 불가능하다면 어떤 정책이 대안으로 나올 수 있을까? 개혁개방을 유도하여 북한의 경제를 회복시킨다면 핵폐기에 이를 수 있을까? 아마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김정일 정권의 종말, 즉 수령체제의 붕괴를 요구할 것이다.

여기서 김영환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의 발제가 갖는 의미가 있다. 김영환 위원은 북한은 이미 민심이반이 상당히 진행된 상태로서 사실상 치유 불가능한 말기 암환자와도 같다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 좀더 정확히 표현하면 김정일 수령체제에게 남은 선택의 여지는 지금처럼 천천히 붕괴되던지, 아니면 개혁개방을 통해 빨리 붕괴되던지 둘 중의 하나 이외에는 없다. 따라서 인도적 지원을 제외한 필요 이상의 경제지원은 붕괴할 운명인 수령체제를 인공적으로 유지시켜 북한인민의 고통만을 연장시키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인도적 지원만을 하기 위해서라면 굳이 개혁개방을 위해 경제지원을 무리하게 할 필요도 없을 것이고 수령체제가 무너지도록 놔두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 수 있다.

이날 포럼에서 토론자로 나온 강철환 기자는 실제로 최상의 대북정책은 김정일 정권을 그냥 붕괴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무위정책(無爲政策)”이라고 명명할 수도 있는 이 정책은 매우 소극적이라고 보일지 모르지만 적절히 변형될 경우 신중하게 검토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경제지원을 북한의 개혁개방이나 인권개선, 납북자, 국군포로 송환과 연계시키려는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는 북한이 개혁개방을 하지 않으리라고 말하면서도 북한에 개혁개방을 요구해야 한다는 이중적 태도를 취할 때가 많다. 전자의 이유는 개혁개방이 체제붕괴로 이어질 것이고, 후자의 경우는 개혁개방 없이 어떤 경제지원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이 개혁개방을 부정하는 현 상황 하에서 개혁개방은 실현목표라기 보다는 명분축적용이 될 가능성이 많다.

IV.
김영환 위원은 차기정부의 대북정책의 원칙으로서 ‘봉쇄압박’과 ‘집요한 개혁개방 유도’ 모두가 의미있다고 말하였다. 여기서 개혁개방 유도가 애걸이 아니라 사실상의 강제라는 점에서 실은 양자 모두 「대북압박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필자가 볼 때 대북압박정책의 문제점은 남북과 남남 두 측면에서 발생할 수 있다. 국제적으로 주권국가로 인정받고 있는 북한은 지금까지 자력갱생과 우리식 사회주의를 통해 ‘자기식대로’ 살겠다고 주장하여 왔다. 비록 북한이 마피아 혹은 사이비 종교집단과 흡사하여 자기식대로 살겠다는 것이 곧 수령 내지는 교주 마음대로 살겠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국제적으로는 주권국가인 북한을 봉쇄·압박·강제한다는 것이 북한정권뿐 아니라 한국내의 친북좌파들로부터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킬 것이고, 그것은 이념갈등과 함께 국민 전체의 동의를 받지 못하는 대북정책이라는 비난도 일어날 것이다.

물론 우리는 북한의 인권유린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국제적인 차원에서 압박해야 하나, 북한의 경제와 정치체제 자체를 공개적으로 붕괴시키겠다는 것은 분명한 명분이 없다면 내정간섭으로 비쳐질 수도 있다. 필자가 볼 때 개혁개방이나 핵폐기가 실패할 경우 이러한 명분을 제공하리라 본다.

여기서 북한정권을 딜레마로 몰고 가야 한다는 점이 분명해진다. 즉 북한이 개혁개방 혹은 핵폐기를 한다면 더 바랄나위가 없는 것이고, 설사 그 반대라 하더라도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대북압박정책이 존재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2 트랙(track) 정책이다.

V.
우선 핵폐기에 대해서는 6자회담의 성과를 기다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것은 핵불능화를 넘어서 핵폐기에 이를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 절차가 압박의 명분 축적을 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필자가 볼 때 여권이 선순환론을 주장하는 이유는 북한이 핵폐기를 하더라도 오랜 시간이 걸리며 실은 핵폐기에 이를지 여부도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노무현 대통령이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핵폐기와 평화협정의 동시 추진의 필요성을 핵폐기에 이르는 시간이 길기 때문이라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핵폐기에 이르는 시간이 길어지면 북한은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된다는 점에서 노정권의 핵폐기에 대한 의지는 매우 낮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여기서 내년에 핵폐기에 이르지 못한다면 한국과 미국 그리고 일본은 중국과 러시아를 설득하여 북한의 핵폐기를 위해 국제적 봉쇄·압박 정책을 쓸 수 있도록 협조해야 한다. 즉 북한이 핵무기 보유가 체제 안정의 담보가 아니라 체제의 무덤임을 자각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개혁개방을 강제하기 위한 명분이다. 노무현-김정일 회담에서 북한측은 개혁개방 유도라는 햇볕정책의 존재이유를 부정하였고 노정권은 북한정권의 불만을 수용하였다.

중요한 점은 개혁개방이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추진한 햇볕정책의 존재이유이기는 하지만 북한정권을 압박할 수 있는 근거는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우리는 주는 자의 입장에서 경제지원을 개혁개방에 연계시킬 수는 있다. 그러나 북한이 그것을 거부한다고 해서 압박정책의 명분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다만 경제지원을 줄이거나 거부할 수는 있다. 그러나 북한이 이미 거부하고 있는 개혁개방을 전제로 할 경우 순전히 명분축적용이라는 비난의 소지가 있다. 따라서 북한도 그 정당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그러나 내용적으로 개혁개방을 의미하는 요구를 해야 한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남북기본합의서의 전면시행’이다. 왜냐하면 북한도 자신이 서명한 이 합의서의 존재를 부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남북기본합의서에는 남북 간의 자유왕래, 통신 등을 비롯한 광범위한 교류를 규정하고 있으며 실현될 경우 동서독의 기본조약처럼 남북의 경계선이 뚫릴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남북기본합의서의 전면 실행의 또 다른 장점은 친북좌파의 입을 막을 수 있다는 점이다. 만일 전면 실행이 이루어지면 최선이지만 반대로 김정일정권이 전면 실행을 허용하지 않을 경우, 차기정부는 김정일 정권에게 퍼주기를 줄이거나 적절히 조절할 수 있는 확실한 이유, 즉 무위정책이나 압박정책의 명분을 확보할 수 있다. 그것은 금강산이나 개성공단 등과 같은 남북경협사업도 마찬가지다. 남북경협의 경제적 토대를 정부보조에서 이윤추구로 옮김으로써 본래의 위치로 정상화하면 된다. 이윤이 확보되면 계속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기업 스스로 철수하는 수밖에 없다. 북한은 기업의 이윤확보를 보장하지 않으면 돈을 벌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VI.
인권과 핵, 개혁개방 그리고 남북경협 분야에서 보수진영은 큰 목소리를 내지 않더라도 남북, 보수·진보 모두 부정할 수 없는 명분을 확보하면서 ‘남북대결론’이니 ‘전쟁위기론’을 잠재우면서 ‘북한의 정상화’로 갈 수 있는 길은 분명 존재한다. 즉 노무현 정권이 호언장담하듯이 어떤 당이 정권을 잡아도 현재의 대북정책의 기조를 변화시킬 수 없다는 주장은 완전히 허구인 것이다.

이때 많은 북한 민주화 전문가들이 주장하듯 정부와 민간단체와의 역할 분담을 통해 국내의 분위기를 안정적으로 형성하면서도 효율적인 대북정책을 실행에 옮기는 것이 매우 중요한 점이 될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북한의 지배집단에게 현 상태 유지를 통한 집단적 고사(枯死)와, 개혁개방을 통한 수령체제의 변혁 중 양자택일의 중요성을 인식시킬 수 있으며, ‘수령체제의 종언(終焉)이 곧 북한의 붕괴가 아니라는 희망과 확신’을 갖도록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 확신이 차기정부의 대북정책의 원칙이 되어야 하며, 김정일과 친북좌파들이 그 의도와 결과를 뻔히 알고 예견하더라도 어찌 할 도리가 없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대북정책의 실천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보수 진영의 대북정책은 수령체제라는 21세기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전체주의 체제를 제거함으로써 도덕적으로 정당화 되며, 북한인민을 도탄에서 구하고 북한사회를 정상화한다는 점에서 현실적이며, 자유민주주의 평화통일에로의 길을 연다는 점에서 헌법정신에 부합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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