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탐방] 영국은 ‘北인권’ 확실히 팔걷고 나섰다

▲ 세계기독연대 엘리자베스 바사 국제담당 이사(왼), 시민연합 대표단과 탈북자들이 영국 의회에서 증언하는 모습(가운데), 영국은 작년 유엔총회에서 북한인권결의안이 통과되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지난해 영국은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통과에 주역을 맡았다.

올해에는 영국뿐 아니라 유럽지역 곳곳에서 북한인권문제가 본격 제기된다. 3월에는 벨기에 브뤼셀에서 ‘제3회 북한인권국제대회’가 열리고, 5월에는 노르웨이 베르겐에서 ‘제7회 북한인권ㆍ난민문제 국제회의’가 개최된다. 오는 4월 유엔인권위원회에서 유럽연합의 주도로 또 다시 북한인권결의안이 채택될 가능성도 높다.

현재 유럽지역에서 불고 있는 북한 인권 바람은 어느 정도일까.

<열린북한방송> 하태경 사무총장은 2월 26일부터 3월 2일까지 영국을 방문, 데이비드 앨턴 상원의원 및 영국 정부 관리들과 면담을 갖고 현재 유럽지역에서 세차게 불고 있는 북한인권 바람을 재확인했다.

<열린북한방송>의 양해를 얻어 하태경 사무총장의 영국 방문기를 소개한다.

◈ 2월 26일- 영국 도착

영국 방문은 이번으로 두 번째다.

이번 방문은 영국 정부의 초청으로 이루어졌다. 그래서인지 공항 도착부터 달랐다. 비행기에서 내려 버스로 갈아타고 내리자마자 내 이름표를 들고 기다리는 영국 외교부 직원이 있었다. 보통은 짐을 찾고 밖에 나가야 마중 나온 사람들이 있는데 정부 손님으로 온 것 때문에 이런 환영을 다 받아본다.

여권 심사도 특별 케이스다. 줄도 서지 않고 정부 공무원 통과하는 문에서 바로 도장찍고 밖으로 나왔다. 게다가 일당까지 받다니…황송할 수밖에..

물론 한국 대기업 다닐 때의 출장비에 비하면 아주 적은 액수지만 NGO 국제회의에 초청받아 갈 때는 아무런 일당도 주지 않는 것과 비교하면 대단한 대접이다.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제일 먼저 물어본 것은 인터넷이 되느냐였다. 이제 세상 어딜가도 제일 중요한 것이 접속이다. 1시간에 5 파운드, 2시간에 7.5파운드이고 하루 종일 마음대로 쓰면 10파운드라고 한다. 요즘 환율로 13,000원 정도 될까? 그렇게 저렴한 비용은 아니지만 영국 정부로부터 일당도 받았으니 마음 놓고 인터넷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영국 정부 입장에서 북한 문제는 얼마나 중요한 문제일까 계속 생각해 봤다.

사실, 내가 아는 영국 친구들은 북한을 잘 모른다. 마치 한국 사람들에게 아프리카 어떤 나라를 이야기하면 별 관심없어 하는 것처럼 영국에게 북한이란 존재는 그렇게 큰 관심사가 아니다. 때문에 영국이 나같이 민간 NGO에서 일하는 사람을 초청했다는 것에 대해서도 솔직히 반신반의했다.

“영국이 북한 문제에 대해 얼마나 큰 관심이 있을까? 나 같은 사람을 초청하는 걸 보면 관심이 있기는 있는 모양인데 얼마나 적극적일까?” 솔직히 확신을 할 수 없었다.

“과연 어떨까?”

내일부터 시작될 미팅이 기대되어진다.

◈ 2월 27일 – 영국 외교부 방문

영국 방문 첫 공식 일정이 시작됐다.

오늘은 영국의 Foreign & Commonwealth Office, 즉 외교부 북한관련 담당 부서들의 미팅이 쭉 잡혀 있었다. 4개 부서를 만났다. 외교부 극동그룹, 여기서는 한반도와 몽골 문제를 다룬다. 다음엔 인권, 민주주의 관련 부서를 만났다. 이 부서는 네 개의 팀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거기서 유엔 관련 담당자를 만났다.

그 다음엔 민간외교(Public Diplomacy) 그룹과 홍보팀(Press Office)를 만났다. 영국에 오기 전에 계속 가지고 있던 의문은 “영국이 북한문제에 대해 얼마나 큰 관심이 있을까? 나 같은 사람을 초청하는 걸 보면 관심이 있기는 있는 모양인데 얼마나 적극적일까?”였다. 영국 정부 관계자들을 한 사람씩 만나면서 이 의문은 의외로 쉽게 풀렸다.

그들은 아주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다. 작년 11월 유엔총회에서 북한인권결의안을 통과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나라가 바로 영국이라는 사실을 다시 상기해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영국 정부의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이 있었음을 재확인한 것이다.

11월 유엔총회 전, 2005년 9월 경 북한 정치범수용소 출신 강철환씨가 영국의 잭 스트로 외무부 장관을 만났다. 한국의 외무부 또는 통일부 장관이 탈북자를 면담한 사실이 있을까를 상기해볼 때 이는 파격적인 관심이 아닐 수 없다.

2005년 4월경에는 원재천 한동대 교수, 김영자 사무국장, 수용소 출신 김태진, 김영순씨 등 북한인권시민연합 대표단이 영국의 의회 관계자들과 언론에 자신의 경험을 증언한 적이 있고, 이는 영국 사회의 큰 주목을 받았다. 유엔총회에서 영국이 주도적 역할을 한 것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유엔총회 결의안을 영국이 주도한 뒤 영국과 북한의 외교관계에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우선 그것이 궁금했다. 특히 한국정부는 남북관계 악화를 이유로 유엔총회에서 기권표를 던졌다. 그런데 표를 던진 정도가 아니라 결의안을 주도했다면 악화 정도가 아니라 관계가 절단나야 하는 것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영국 정부도 유엔 결의안이 영국-북한 관계에 미칠 파장에 대해 관심이 컸다. 그런데 마침 전임 영국 대사의 임기가 다해서 신임 대사가 취임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신임 대사의 신임장을 북한 정부가 승인할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고 한다. 혹시 유엔 결의안을 핑계로 신임장을 승인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없었다. 물론 북한은 외교적 수사를 동원해서 영국 정부를 비난했지만, 그건 수사뿐이었고 실질적으로는 신임 대사를 승인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 정부가 남북관계 악화를 핑계로 번번히 기권표를 던지는 것은 그 명분이 얼마나 궁색한지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그리고 영국 정부 북한 담당자들은 한결같이 북한이 국제사회에 합류하기 위해서는 인권문제에 전향적인 입장을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록 핵 문제가 해결되더라도 북한이 국제사회의 정상적인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인권 기준을 지키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영국 정부가 북한인권 문제를 계속 제기하는 것은 북한의 장래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외에 북한인권 문제를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전략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많은 논의가 있었다.

인권 범주에 있어서 ‘시민, 정치적 권리”와 “경제, 사회, 문화적 권리” 중에 어떤 권리를 더 강조해야 하는지의 문제, 식량 지원에 있어서 분배의 투명성 문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북한과의 공식적인 관계를 통해 인권 개선이 가능한지, 북한은 과연 유엔 인권특별보고관의 방문을 허락할지 등의 많은 문제가 논의되었다.

어느 이슈 하나 간단한 문제가 없었지만 영국 정부가 아주 구체적인 문제에까지 세심하게 고민하고 있구나 하는 점을 느낄 수 있었다. 동시에 영국이 왜 북한인권에 관심이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풀렸다.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도 나와 있지만 이제 인권은 ‘글로벌 스탠다드’가 된 것이다. 적어도 영국 정부 입장에서는 말이다.

그래서 북한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영국이 북한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데 석유나 다른 자원 등 경제적 이익이라던지, 안보적 이익 등의 고려 요인은 전혀 없었다. 그저 북한인권 상황이 심각하기 때문에 그들은 북한인권에 관심이 있는 것이다. 보편적 가치가 국가 속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영국 정부 관계자들과 연이은 미팅을 끝내고 북한인권 문제가 이제는 정말 한반도 내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보편 관심사가 되었을 다시 한번 절실히 느꼈다. 그들은 한결같이 북한의 인권 상황은 세계 최악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미국에서는 이미 2004년에 북한인권법이 통과되었다. 일본에서도 북한인권법이 의회에 계류 중에 있다. 영국을 포함한 유럽 국가들은 유엔에서 북한인권을 지속적으로 쟁점으로 삼고 있다.

북한인권 문제를 해결하려는 흐름은 이제 국제사회의 대세가 된 것이다.

“이 흐름을 과연 누가 거스를 수 있을까?”

◈ 2월 28일- 웨스트민스터 재단

오늘의 첫 방문지는 웨스트민스터 민주주의 재단(Westerminster Foundation for Democracy)이다. 92년에 설립된 이 재단의 목적은 전 세계 민주주의 진흥이다. 즉 각국에 민주주의가 정착되는 것을 다양한 방법으로 지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세계 민주주의 진흥 또는 전파라는 것이 미국만의 모토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웨스트민스터 재단의 프로그램 담당 국장 아인 킹에 따르면 서유럽 국가들에는 대부분 웨스트민스터 재단과 유사한 재단이 있다고 한다. 동유럽 폴란드와 체코에는 유사한 재단이 있다고 한다.

이 재단의 1년 예산은 4백10만 파운드, 즉 한화로는 70억 정도된다. 이 돈은 대부분 영국의 외교부에서 지원된다. 하지만 예산 운용은 자체 이사회의 판단에 따라 독립적으로 된다. 이는 미국의 대표적 민주주의 지원 재단인 ‘미국민주주의기금'(National Endowment for Democracy)이 미 국무부 지원을 받지만, 운영은 정부 간섭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되는 것과 동일하다.

지원 국가를 어떻게 선정하는지가 궁금했다. 자신들도 어떤 나라들을 선정해서 지원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한 때는 나라와 상관없이 프로젝트 제안서를 심사한 뒤, 좋다고 판단되는 프로젝트를 지원했지만 별로 성과가 없어서 지금은 목표 국가를 전략적으로 선정해서 지원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목표 지역은 벨로루시아, 세르비아, 우크라이나 등 동유럽 지역, 케냐, 우간다, 시에라리온 등 중부 아프리카 지역 이집트 등 북아프리카 또는 중동 지역을 지원하고 있다.

웨스트민스터 재단은 한국에게 있어서 크게 두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주고 있었다.

하나는 한국의 국가 외교전략 차원이다. 현대사회에서 민주주의, 인권신장이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보편 가치로서 현대 민주주의 국가는 예외없이 이를 수용해야 한다. 동시에 국가는 자국 국민들의 번영과 안위를 최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안보와 경제적 실익 문제도 배제할 수는 없다.

민주주의 우선이냐, 국익 우선이냐는 정치학에서도 이상주의와 현실주의의 오래된 논쟁 거리이기도 하다. 이 모순은 권위주의 독재국가를 상대할 때 특히 두드러진다. 이 모순을 어느 정도 조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민주주의 재단을 만드는 것이다.

즉 영국은 벨로루시아의 루카셍코 독재정권과도 외교관계를 가진다. 경제협력도 하고 다양한 교류도 한다. 하지만 동시에 웨스트민스터 재단은 벨로루시아의 야당 세력을 지원한다.

만약 영국 정부가 직접 벨로루시아의 반 정부 세력을 지원한다면 양국간에 큰 외교 문제가 된다. 그러나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민간 재단이 지원을 하는 것은 벨로루시아 정부 입장에서 볼 때 마음에 들지는 않겠지만 정부간 직접 충돌은 피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도 대북 정책을 수립하는 데 있어서 이와 같은 방법을 진지하게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한국 정부 입장대로 북한의 인권, 민주주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남북 간의 긴장을 고조시킨다면 민주주의 재단 같은 것을 통해 간접적으로 북한의 인권, 민주화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다.

예산은 정부에서 나오더라도 이사회 등 의결 기구를 독립적으로 운영한다면 한국이 인권/민주화에 소홀하다는 비판을 피해가면서도 북한과의 마찰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비단 북한뿐만이 아니라 최소한 아시아 여러 민주주의 진흥을 위해서라도 한국 정부는 한국판 웨스트민스터 재단 설립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한국은 적어도 아시아권에서는 가장 민주주의가 발전해 있고 민주주의 역량도 강한 나라이다.

한국보다 민주주의가 늦게 시작된 동유럽의 폴란드, 체코 같은 나라들도 민주주의 재단을 운영하고 있다. 또 아시아권에서는 대만에서도 민주주의 재단을 운영하고 있다. 이런 점을 보면 아시아에서 가장 선구적으로 민주주의를 발달시켜 온 한국에서 세계 민주주의 진흥을 위한 재단이 없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웨스트민스터 재단을 보면 주 지원 국가들이 영국과 가깝거나 아니면 과거 영연방에 속했던 나라들이다. 아무래도 전 세계 모든 국가들을 지원할 수 있을 정도로 풍부한 재원은 없기 때문에 자신들이 상대적으로 잘 알고 있는 나라들에게 주로 지원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도 민주주의 재단을 만든다면 이와 같은 타깃 국가들을 정해서 지원할 수 있을 것이다. 성과를 냄에 따라 지원 국가 수와 단체 수를 늘려 갈 수 있을 것이다.

한 나라의 민주주의가 오로지 그 나라 민중 자체만의 힘으로 달성된 역사적 사례는 별로 없다. 어떤 나라의 경우도 외부의 지원과 협력이 있었다. 이는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특히 한국의 민주화를 이끌고 온 핵심축인 기독교 민주화 운동 세력은 독일,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 민주주의 세력의 지원이 있었다.

이는 북한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전 세계 어느 국가도 마찬가지다. 이제 한국의 민주화 세력들도 세계에 눈을 돌릴 때가 되었다.

◈ 세계기독연대와 엘리자베스 바사

북한인권 문제 전도사로 프랑스에 피에르 리굴로가 있다면, 영국에는 엘리자베스 바싸(Elizabeth Batha)가 있다. 피에르 리굴로와 엘리자베스 바사는 들판의 하나의 불씨가 어떻게 전체 들판을 다 태워버리는지 잘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이다.

리굴로가 강철환씨와 공동 집필한 북한수용소 체험기 <평양의 어항>이 결국은 미국 백악관을 움직이고 유럽을 움직였다. 엘리자베스는 유엔인권위원회와 유엔총회를 통해 전 세계를 움직이고 있다.

엘리자베스는 세계기독연대 인권 전문가로서 활동해 왔다. 그는 유엔 인권 메커니즘에 정통한 인권 변호사이기도 하다. 그녀가 북한인권 문제에 뛰어듦으로서 북한인권 문제가 세계화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유엔에서 그녀의 역할은 결정적이었다.

그런데 알고보면 그녀가 북한인권 문제에 뛰어들게 된 결정적인 모멘텀을 준 것은 한국의 대표적 북한인권 단체인 <북한민주화네트워크>(대표 한기홍)이다. 그녀와 <북한민주화네트워크>의 만남은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북한민주화네트워크>는 북한 문제를 유엔에 알리기 위해 북한인권 관련 단체로는 처음으로 제네바 유엔인권위를 방문한다. 거기서 엘리자베스를 만난 것이다.

당시 그녀는 북한인권 현실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었다. <북한민주화네트워크>는 그녀에게 북한 내부 실상에 대해 많은 정보를 제공했다. 그녀도 북한의 실상을 파악하기 위해 집요하게 많은 질문을 했다고 한다. 그녀는 <북한민주화네트워크> 관계자와의 첫 만남에서 약 다섯 시간 동안 자신의 궁금증을 쏟아냈다고 한다.

그로부터 몇 년 뒤 유엔 인권위에는 북한인권 문제가 공식적으로 상정되었으며, 압도적인 표차로 인권 결의안이 가결되었다. 북한인권 특별보고관이 선임되기도 했다. 급기야 작년에는 유엔총회에서 북한 결의안이 통과되었다. 유엔 결의안 현장에 항상 엘리자베스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이렇게 혁혁한 활동을 해온 엘리자베스와 세계기독연대는 여기서 결코 멈출 것 같지 않다. 그들은 올해 6월 19일부터 25일까지 북한을 위한 전세계 기도 주간(Global Week of Prayer for North Korea)을 계획하고 있다.

세계기독연대는 영국뿐 아니라 노르웨이, 덴마크 등 유럽에 많은 지부 조직들이 있다. 이 기도 주간에는 유럽뿐 아니라 한국과 미국의 많은 교회들이 동참할 것이다.

엘리자베스라는 하나의 불씨가 유엔을 움직였다. 그리고 지금 전 세계 기독교인들을 움직이려 하고 있다. 이 불씨는 조만간 북녁 땅 안으로까지 퍼져 나갈 것이다.

◈ 두 사람의 상원 의원

점심은 영국 의회 건물에서 먹었다. 그 뒤에 영국 상원 의원 두 사람과의 일정이 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앨턴(David Alton)과 캐롤라인 콕스(Caroline Cox) 두 상원 의원이다.

영국의 상원(House of Lords)은 한국에는 없는 개념이다. 상원은 종신제이며 국민들의 투표로 뽑히는 것이 아니라 과거 남작, 백작, 공작 등의 귀족부모에 의해 세습되거나 아니면 공로를 인정받아 국가에서 임명된다. 입법에 있어서도 법안 발의는 할 수 없고 하원(House of Commons)에 의해서 발의된 법안을 심의 개정할 수 있는 권리밖에 없다.

사실 영국은 봉건시대의 잔재가 사회, 정치 영역에 있어서 많이 남아 있는 나라다. 왕실의 존재부터가 그렇다. 만약 현대의 한국에서 왕실을 복원하자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정신 나간 사람으로 취급받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영국인들은 그들의 왕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자랑스러워하는 사람들도 많다.

상원도 마찬가지이다. 영국의 상하원은 그 명칭에서도 뚜렷이 드러나지만 상원은 귀족의회(House of Lords)이고 하원은 평민 의회(House of Commons)이다. 그 말 뜻으로만 본다면 상원은 귀족을 대변하고 하원은 평민을 대변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내가 만난 두 사람의 상원 의원 중 여성인 캐롤라인 콕스는 자신의 명함에 “Baronness”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Baron은 남작이라는 뜻이고 뒤에 붙은 ness는 여성 남작을 가리킨다. 데이비드 앨턴은 사람들이 ‘Lord Alton’이라고 불렀다. Lord도 작위를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것은 아니지만 귀족 집안 출신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

귀족 출신이기 때문에 의원직을 세습하고, 그것도 죽을 때까지 의원직이 보장된다는 것은 한국인들에게는 아주 낯선 개념이다. 그리고 민중의식이 강한 한국의 젊은 세대들에게는 도저히 용납되기 어려운 개념이다.

한번 상상해보라. 과거 조선시대 3정승, 판서 출신 집안 자제라고 해서 현대까지도 국회의원직을 물려준다면 아마 지금 우리 세대 정서로는 폭동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사회의 특수성은 그 사회의 전통을 통해서만 이해가 가능하다. 영국의 근대는 명예혁명 즉 프랑스처럼 끝장을 보는 대결 투쟁이 아니라 왕정 세력과 공화정 세력간의 타협과 화해, 귀족 세력과 평민 세력간의 타협과 화해에 의해 이루어졌다. 바로 그 타협의 산물이 왕실의 존재이고 귀족 의회의 존재일 것이다.

이제 다시 북한 문제로 돌아가자.

데이빗 앨턴과 캐롤라인 콕스 두 상원 의원은 한국의 김문수, 미국의 샘 브라운 백과 비교할 수 있는 인물들이다. 영국 의원들 중에서는 북한인권 문제를 포함한 북한문제 전반에 가장 적극적이다.

특히 데이빗 앨턴은 영국 의회 북한그룹의 대표를 맡고 있다. 그는 2003년 영국 의회 대표단을 이끌고 북한을 방문했다. 당시 그는 북한 당국에게 북한의 감옥을 보자고 요구했다.

“당신들이 영국의 감옥을 보자고 요청하면 우리는 언제든 보여줄 것이다. 그리고 영국 감옥의 문제점을 지적한다면 우리는 언제든지 귀기울여 경청할 자세가 되어 있다. 그러니 우리에게도 당신들의 감옥을 보여달라”

돌아온 대답은 싸늘했다고 한다.

그리고 유엔인권 특별보고관을 북한이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느냐는 나의 질문에도 그의 대답은 비관적이었다. 영국 의원 대표단은 북한 의회 대표단도 영국을 방문해 줄 것을 요청했고, 2004년 최태복을 단장으로 한 세 사람의 대표단이 영국 의회를 방문했다고 한다.

그리고 데이비드 앨턴은 최태복에게 북한인권 관련 선물을 하나 주었다. 바로 BBC 방송에서 방영한 북한감옥 내의 생화학 실험 관련한 다큐멘터리였다. 그 뒤에도 앨턴은 북한인권 관련 자료집이나 영상물을 입수하면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에 전달했다고 한다.

앨턴은 영국 주재 북한 대사를 자주 만난다고 했다. 그리고 최근 놀랄만한 변화가 있었는데 대사를 포함하여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 직원들 모두가 김일성, 김정일 배지를 착용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필자는 다시 한번 확인했다.

정말 착용하고 있지 않은지, 그리고 대사뿐 아니라 모든 직원이 착용하고 있지 않은지를 물어보았다. 그리고 그는 재확인 해주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대사를 포함하여 자기가 만난 모든 직원들이 김일성, 김정일 배지를 착용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사실 2년전쯤 김정일이 교시를 내렸다고 한다. 외교관들이 배지를 달면 외국인들에게 혐오감을 준다고 해서 달지말라고 지시를 내린 것이다. 그리고 이런 지시는 북한 일반 주민들에게도 내려졌다. 그러나 북한 주민들은 지시대로 배지를 뗐다가 나중에 정책이 바뀌면 충성심이 약하다고 비난이나 처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쉽게 못떼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대사관 직원 등 외교관들은 배지 때문에 창피당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고, 길거리에 나가는 것도 두려워 하기 때문에 지시가 내려오자 마자 바로 떼어버린 것이다. 이는 그만큼 그들의 김일성, 김정일에 대한 자발적인 충성심이 약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진심으로 존경한다면 적어도 몇 사람은 계속 착용하고 있을 법도 한데 말이다.

마지막으로 상원 의원 두 사람과 북한 내부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북한 내부의 변화가 생각보다 빠르다는 것과 그 변화가 위(북한정부)로부터의 변화가 아니라 밑(북한주민)으로부터의 변화라는 데에 공감대가 있었다.

자리를 파하면서 앨튼 경이 나에게 던져준 마지막 이야기는 아주 의미심장했다.

“북한은 거짓으로 구축된 체제이다. 이제 북한 주민들이 서서히 각성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허위 체제의 본질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이 허위 구조를 깨닫기 시작하면 북한의 거대한 변화가 올 것이다.”

현재 북한 사회 내부에 많은 변화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변화를 북한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만들어 가고 있다는 사실,그 북한 주민들이 북한 체제의 진실을 직시해 가고 있다는 사실… 이는 도도한 역사의 물결에서 결코 북한만 예외가 될 수 없음을 웅변해 주고 있다 하겠다.

하태경/ 열린북한방송 사무총장 (nkradio@nkradi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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