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후한 북한의 경제를 재건하기 위한 계획으로 ‘북한판 마샬 플랜’이란 말이 회자된다.
2005년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은 핵문제 해결을 전제 조건으로 `한반도 경제공동체’로 향하는 과감한 북한 재건계획(가칭 `북한판 마샬플랜’)을 언급한 적이 있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도 유사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2005년 4월 박근혜 대표는 방미중 뉴욕 컬럼비아대 연설에서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이 먼저 ‘북한 마샬플랜’이라고 불릴만큼의 대담한 경제재건 계획을 구체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북한판 마샬 플랜’ 현실성 없다
두 사람의 의견은 마샬 플랜을 핵문제 해결과 연계시킨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사실 북한 핵 문제가 미북관계와 남북관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으로 크기 때문에, 북한에 대한 어떠한 제안도 핵문제와 연계시키려는 경향이 생길 수 있으나 이는 문제의 본질을 간과하고 있다.
핵 문제 하나가 해결된다고 해서 북한판 마샬 플랜이 효과를 나타낸다고 결코 보기 어렵다. 북한판 마샬 플랜이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인권 개선과 직접 연계되어야 한다.
쉬운 예를 몇 가지 들어보자. 북한에 도로를 닦아 준다고 하자. 그런데 도로를 닦아 주더라도 북한 주민의 이동의 자유, 여행의 자유가 통제되어 있다면 닦아 준 도로가 무슨 쓸모가 있을까? 도로를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데 말이다. 즉 도로를 닦아 주는 일은 북한 내의 이동/여행의 자유가 증진되는 것과 결부되어 진행되어야만 그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다.
현대는 지식 정보 사회이기 때문에 북한에 광통신망을 깔아주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런데 김정일 정권이 북한 주민의 인터넷 사용을 금지한다면 광통신망이 북한 주민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따라서 광통신망 건설은 북한 내의 정보통신의 자유, 인터넷 사용의 자유와 결부되어야만 효과를 볼 수 있음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인권개선과 결부되어야 ‘북한 재건계획’ 성과
거꾸로 우리는 북한판 재건 계획을 인권 개선과 연계하여 북한 정부에 역(逆)제안을 할 수 있다.
가령 북한 정부가 주거 이전의 자유를 증진할 경우 북한 주택의 개량과 현대화를 지원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또 외국 방송 청취의 자유를 보장할 경우 북한 미디어 설비 현대화를 지원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외국인과의 자유로운 접촉을 보장한다면 공항, 항만 건설을 지원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인권개선과 북한판 마샬 플랜을 연계시키는 정책의 핵심은 해당 인권 개선에 상응하며, 그 인권 개선을 더욱 촉진할 수 있는 사회·경제 인프라 건설 지원을 상호 연계시키는 것이다.
인권 개선과 경제적 지원을 연계시킨 사례는 다른 나라에도 있다. 미국은 소련의 유태인을 구하기 위해 1974년 이민의 자유와 무역 관세 특혜를 연계시킨 Jackson-Vanik 법을 제정한 적이 있다. 중국에 대해서도 인권 개선 문제와 무역의 최혜국 대우(MFN)를 연계시킨 적이 있다.
그러나 남-북 관계에서는 무역이 내국 무역으로 규정되어 무관세로 진행되기 때문에 북한의 인권 문제와 무역 관세 특혜를 연계시키는 것은 의미가 없다. 따라서 북한의 인권 문제와 사회·경제적 인프라 지원 문제를 연계시키는 것이 현실적인 방법일 수 있다.
다음은 위에 언급한 사례를 포함하여 북한 인권 개선의 8대 과제와 그에 상응하는 사회, 경제적 인프라 건설 지원 항목들을 연결시켜 정리해 본 것이다.
인권 개선 항목에 상응하는 사회·경제 인프라 지원 |
|
인권 개선 항목 |
사회·경제 인프라 지원 |
이동의 자유 증진 |
도로 및 철도 건설/복구 지원 |
주거 이전의 자유 증진 |
해비타트와 협력하여 빈민을 위한 주택 건설 지원 |
외국 방송 청취의 자유 증진 |
미디어 설비 현대화 지원 |
인터넷 접속의 자유 증진 |
고속 통신망 설치 지원 |
직업 선택의 자유 증진 |
자전거/오토바이 이동 수단 지원, 직업 기술 학교 건물, 설비, 커리큘럼, 교수 지원 |
개인과 기업의 자유로운 해외 무역과 해외 취업 보장 |
국제 무역을 위한 수출입 금융제도/기관 설립 지원 |
외국인과의 자유로운 접촉 보장 |
공항, 항만 설비 근대화 지원 |
농지 개혁 |
농업 기술자 양성을 위한 학교 건물, 커리큘럼, 교수 지원, 식목 지원 |
6자회담에서 인권개선-북한재건 논의돼야
마지막으로 북한의 사회·경제 인프라 건설 지원 문제는 한국뿐 아니라 미 중 일 러를 포함한 주변국과 함께 제안 및 계획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북한 인권이 개선되고 그로 인해 사회 인프라가 구축된다면 그 과실은 주변국 모두 향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권 개선을 조건으로 하는 북한판 마샬 플랜은 기존 6자 회담 틀 내에서도 충분히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