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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일각에서 ‘2·13 합의’에 북한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이 포함되지 않은 것과 관련, 향후 북핵 폐기 과정에서 중대한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따라 그동안 논의되어 온 플루토늄과 HEU가 기술적으로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도 커지고 있다.
HEU 문제는 지난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당시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대통령 특사로 평양을 방문한 자리에서 북한이 HEU 프로그램의 존재를 시인하며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이로 인해 2차 북핵 위기가 촉발되기도 했다.
미국 6자회담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초기이행 조치 60일 사이에 북한의 HEU 프로그램에 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철저히 추궁할(run to ground) 것”이라며 HEU 문제 해결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나타냈다. 2·13 합의문에는 빠졌지만 짚고 넘어갈 것은 짚고 넘어가겠다는 것.
그렇다면 HEU란 무엇이고, 북한은 정말로 이 HEU 프로그램을 갖고 있는 것일까? ‘2·13 합의’의 쟁점으로 떠오른 HEU 프로그램에 대해 알아보자.
◆ 고농축우라늄(HEU)은 무엇인가?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핵분열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원소는 ‘우라늄’과 ‘플루토늄’ 등 2가지이다.
우라늄은 자연에서 얻을 수 있지만 플루토늄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다. 그런데 우라늄이나 플루토늄이라고 해서 다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그 중에서도 핵무기의 원료가 되는 핵분열성 물질은 ‘우라늄-235’와 ‘플루토늄-239’이다.
천연우라늄 덩어리에는 여러 종류의 우라늄이 섞여 있는데, 그 중 우라늄 238이 99.3%고 우라늄-235는 0.72%밖에 되지 않는다. 이 극히 적은 우라늄-235만을 골라내기 위해 정련공장에서 우라늄 광석을 분쇄하고 화학적 처리를 통해 불순물을 제거해 준다.
이렇게 되면 ‘옐로우 케이크'(Yellow Cake)라고 불리는 순도 75% 이상의 천연우라늄이 추출되는데, 이 정도로는 우라늄 235를 추출하기 부족하다. 때문에 더 순도를 높이기 위해 우라늄에 불소를 혼합하여 완전히 분말 형태로 만든다. 이 작업을 거치면 우라늄 순도는 99.5%로 높아진다.
다음에는 가장 중요한 농축 작업이다. 순도 99.5%의 우라늄에서, 0.72%를 차지하는 우라늄235를 얻어내는 과정이 필요한데, 0.72%밖에 안 되던 비율을 90%이상으로 끌어올려야 핵무기급 우라늄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로, 원자력 발전에는 천연우라늄이나 2~20%의 저농축 우라늄을 사용한다. 우라늄을 농축하는 방법은 기체확산법이나 기체원심분리법, 레이저법, 노즐분리법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기체확산법’과 ‘원심분리법’이다.
기체확산법은 거대한 시설을 필요로 하고 엄청난 전력을 잡아먹는다. 1년 내내 가동해 봤자 겨우 핵무기 하나 분량밖에 고농축우라늄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현재는 잘 사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최근에는 원심분리법으로 고농축 우라늄을 얻는다. 방법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기체상태의 우라늄을 원심분리기에 넣어 고속으로 회전시키는 것. 그러면 무거운 우라늄 238은 밖으로 밀려나고 가벼운 우라늄 235만 안쪽에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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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심분리법은 기체확산법보다 다량의 고농축 우라늄을 얻을 수 있고 비용도 비교적 저렴하지만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어려운 농축방법이다.
이런 원심분리기 하나의 가격은 약 16만~24만 달러 정도가 된다고 하며, 핵폭탄 하나를 만들 수 있는 20kg의 고농축 우라늄을 추출하려 할 경우 원심분리기는 1200여 개가 필요하다고 한다. 현재 북한의 원자로는 천연우라늄을 원료로 한 흑연감속로이기 때문에 농축이 필요 없다.
때문에 북한이 정말 원심분리기를 구입했다면 그것은 핵개발을 은밀하게 추진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미국 정보기관에 따르면 북한은 이러한 원심분리기를 1998년 파키스탄에서 구입해 2004년 7~8월경 가동을 시작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더욱 확실한 것은 북한이 1998년을 전후해 파키스탄에서 원심분리기 제작의 원료가 되는 고강도 알루미늄을 집중적으로 구입했다는 것이다.
◆ 북한의 손 안엔 ‘HEU’가 있을까?
국내외 전문가들은 북한의 HEU 프로그램 보유 여부에 대해 다양한 추측을 내놓고 있다.
핵무기 제조가 가능한 무기급 우라늄 생산이 가능하다는 주장에서부터 원심분리기 20여개 정도를 보유한 초보적 단계에 불과할 것이라는 의견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분석들이 제기되고 있다.
HEU 프로그램 논란의 시작은 켈리 전 차관보가 방북한 2002년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켈리 차관보가 강석주 외무성 부상에게 HEU와 관련한 ‘증거’를 제시하자, 강 부상은 “그(HEU 프로그램)보다 더한 것도 가질 수 있다”며 존재 자체를 간접 시인했다. 미국 측이 제시한 증거는 북한이 원심분리기에 필요한 특수 알루미늄 재제를 구입한 영수증일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1개월가량의 침묵기를 거친 뒤 “시인한 바 없다”며 일관되게 부인해 왔다. 2003년 8월 북핵문제를 위한 제1차 6자회담이 시작됐지만 미·북 양국은 HEU 프로그램 존재 여부를 놓고 줄곧 상반된 입장을 보이며 대치해왔다.
미국은 “켈리 차관보가 증거를 제시하자 북한이 핵개발 계획을 시인했다”면서 HEU 프로그램의 폐기를 요구한 반면 북한은 “미국이 있지도 않은 우라늄 농축 문제에 대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고 있다”면서 일관되게 반박하고 있다.
그렇다면 북한은 과연 HEU 프로그램을 보유하고 있는 것일까? 미국은 아직까지 북한의 HEU 프로그램에 대한 ‘결정적 증거’를 제시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최근 신빙성 있는 주장 몇 가지가 북한의 HEU 프로그램 개발 의혹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페르베즈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은 지난해 출간한 자서전에서 1999년부터 북한의 핵기술자들이 파키스탄을 방문해 핵무기 제조를 위한 우라늄 농축 과정에 필수적인 원심분리기에 대한 기술 지원을 받았으며, 파키스탄 핵개발의 대부인 압둘 카디르 칸 박사가 북한에 20여기의 원심 분리기를 제공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또한 북한이 96년경 미사일 기술을 파키스탄에 넘겨주고 그 대신 고농축 우라늄 기술을 들여온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외에도 황장엽 전 노동당 국제비서는 “전병호 군수공업담당 비서가 그 전(96년 이전)에는 나에게 ‘핵무기를 몇 개 더 만들어야 하니까 국제비서가 외국에 나갈 때 플루토늄을 좀 사오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96년 외국에 나갔다 가을 경 다시 나타나 ‘이제 플루토늄을 사올 필요가 없게 됐다. 파키스탄과 농축 우라늄 기술 협정을 맺었다’고 말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2·13 합의’에 따라 북한이 모든 핵 프로그램을 신고해야 할 데드라인(4월 13일)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우리 정보 당국 및 미국 정부에서 북한의 HEU 프로그램에 대한 강한 확신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원심분리기 구입 의혹을 해소하지 못한다면 2·13 합의문은 휴지통에 버려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