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패러디] 사치품 금수3년…장성택 드디어 쿠데타 성공

북한 핵실험으로 2006년 10월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결의가 실행된 지 2년 반 정도 지난 2009년 늦은 봄.

김정일은 최근 1년 동안 일체의 외부활동을 중단하고 중성동 15호 관저에 주로 머물며 간혹 노동당 청사에 출입하는 게 전부다.

한때 85kg에 달하던 그의 몸무게는 20kg이나 빠져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홀쭉해져 버렸다. 김정일은 특별히 다이어트를 하려 한 것도 아니었지만 지난 2년여 동안 입맛을 잃어 제대로 밥을 먹지 못했다. 거기에 거식증까지 걸려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남한에서는 홀쭉해진 김정일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혀 TV 9시 뉴스에 공개됐다. 이를 본 유명 연예인 다이어트 비디오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업체가 김정일이 다이어트를 한 줄 알고 다이어트 비디오를 찍자고 제의했다.

뱃살 빠진 김정일에 남한에서 다이어트 비디오 찍자 제안

제의를 받은 김정일은 달러 대신 자신이 원하는 음식들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계약하자고 했으나 최종 계약과정에서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에 막혀 좌절됐다. 결과적으론 ‘김정일 다이어트 비디오’ 촬영은 불발로 끝났지만 남한에서는 ‘김전일 다이어트 비디오’ ‘장군님 다이어트 비디오’ 등의 짝퉁이 등장하기도 했다.

김정일이 입맛을 잃은 원인은 다름 아닌 2년 6개월 전 북한의 핵실험을 제재하기 위해 안보리가 채택한 결의안 내용 중에 ‘사치품들이 그 원산지를 불문하고 각국의 영토나 국민, 국적선, 항공기 등을 이용해 북한으로 직간접적으로 제공되거나, 판매 이전되지 못하도록 막는다’고 명시하면서부터다.

유엔안보리가 관철시킨 이 조항은 김정일 정권과 인민들을 분리해 접근하는 게 핵심이다. 이로써 김정일 정권의 핵심 세력으로 유입되는 사치품을 차단해 군부와 당 핵심세력의 와해를 가져오고자 한 것이 목적이었다.

실제 김정일은 노동당 38, 39호실을 통해 사들인 사치품을 군과 당 간부들에게 나눠주곤 했다. 김정일이 선물을 돌리는 이유는 선물을 줌으로써 자신에게 복종하도록 하고 받는 사람에게 ‘장군님의 특별한 은혜’에 감사하도록 만드는 것.

명절 때 김정일이 선물을 돌리는 대상은 무려 2만여 명에 달했다. 매해 선물비는 2천만 달러 정도다. 특히 특별공급 대상은 약 5천여 명이다. 중앙당 간부들과 인민무력부장, 호위사령관, 군 사령관급 간부들은 1일 공급, 주(週)공급 대상이다.

김정일 생일에는 핵심 측근들에게 벤츠나 김일성 이름이 새겨진 오메가 금시계 등을 주기도 했다. 1990~99년 사이에 스위스에서 수입한 시계만 2천400만 달러에 달했다.

보다 중요한 것은 미식가로 잘 알려진 김정일이 핵심측근을 관리하는 사치품뿐 아니라 그의 화려한 식탁을 채우던 음식들이 사라진 것. 그는 전 세계의 고급음식들을 매일같이 즐겼는데 결의안이 채택된 이후 음식재료에 대한 조달이 막히게 되자 입맛을 잃고 말았다.

‘특수 거식증’ 김정일, 업무 뒷전…측근들 불만 고조

김정일이 입맛을 잃게 되자 예상치 못한 사태가 발생했다. 김정일의 몸무게가 줄고 측근들을 관리하고 고심하던 일도 사라지고 업무는 완전히 뒷전이 됐다. 올라오는 제의서(보고서)조차 읽지 못했다. 안보리 결의안이 통과된 초기만 해도 미국과 맞서 전쟁이라도 일으킬 것처럼 나오던 김정일도 초라해진 식탁 앞에선 힘을 쓰지 못했다.

하루 종일 김정일은 먼 산을 바라보며 신선한 바닷가재, 캐비어(철갑상어 알), 상어지느러미 요리, 프랑스산 와인에 대한 상상으로 가득 찼다. 결의안이 통과되기 전에 먹던 화려한 식탁을 상상하며 군침을 흘리는 일도 다반사였다.

화려한 식탁을 빼앗겨버린 김정일에게 유일한 낙은 남한TV에서 방영되는 ‘맛집탐방’ 같은 음식소개 프로를 보며 위안을 삼는 것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된 원인 중에는 중국의 결의안 동참이 가장 컸다. 결의안이 통과될 때만 해도 중국을 통해 음식재료 확보가 가능하다고 판단했지만, 중국이 예상을 깨고 석유 공급을 제외한 모든 경제제재에 동참하면서 가능해졌다. 김정일은 중국에게 크게 배신감을 느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와 함께 김정일로부터 정기적으로 선물을 받으며 충성을 맹세했던 측근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군대 내에서 그동안 김정일로부터 작은 선물이라도 받아 온 세력들이 선물을 받지 못하자 크게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김정일에 반기를 든 주인공은 김정일의 최측근이자 매제인 장성택 노동단 근로단체 및 수도건설부 제1부부장이었다.

장성택은 북한군 차수로 노동당 민방위부장을 지낸 큰형 장성우와 함께 김정일에게 불만을 품은 군 일선의 주요 간부들을 포섭해 쿠데타를 일으켰다.

친중파로 알려진 장성택은 쿠데타를 일으키기 전에 중국 지도부의 지인을 통해 후진타오 주석에게 쿠데타 계획을 알리고 지원 내락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김정일에게 이미 마음이 떠나있던 중국도 2008년 베이징올림픽이 성공리에 마무리되자 친중파인 장성택을 지지했다. 북한에 친중정권이 들어서서 안정적인 개혁개방을 실시하는 것은 중국으로서는 대환영이었다.

쿠데타 계획은 치밀하게 준비됐다. 특히 김정일의 경호를 맡고 있는 두 명의 호위총국 부사령관 중 한 명을 포섭해 제거작전을 세웠다. 군부를 동원해 노동당 청사와 김정일 관저를 포위하는 것으로 시작한 김정일 제거작전, 일명 ‘홀쭉이 제거작전’은 어렵지 않게 성공했다.

장성택 쿠데타 성공, 모든 핵 폐기 선언

▲ 2009년 늦은 봄 쿠데타에 성공한 장성택

김정일 체포과정에서 일부 교전이 발생하기도 했지만 사상자는 많지 않았다. 이로써 장성택은 권력을 장악하자마자 국제사회를 향해 모든 핵무기 및 핵프로그램 완전폐기, NPT 복귀와 IAEA 사찰 허용을 선언했다.

국제사회는 전폭적인 지지와 환영으로 화답했다. 특히 중국은 대북 경제제재를 철회하고 새롭게 정권을 장악한 장성택을 적극 지지해 개혁개방을 유도했다. 국제사회와 중국의 원조를 받은 장성택은 쿠데타에 협력한 핵심세력을 다독거리며 개혁프로그램을 가동했다. 미국, 일본, 러시아도 이를 적극 지지했다.

권력을 잡은 장성택이 인민들로부터 정권의 정당성을 인정받고, 내부의 동요 없이 개혁개방으로 이끌기 위해선 김정일과의 확실한 선긋기가 필요했다.

인민들은 처음에는 눈치를 살피다 상황을 완전히 파악한 이후로는 김정일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대다수 주민들은 김정일을 공개처형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장성택은 김정일의 여동생이자 자신의 아내인 김경희의 간곡한 부탁으로 해외 추방령을 내리기로 결정했다.

한편 관저에 감금돼 있던 김정일은 눈물을 흘리며 “제발 야자상어날개탕과 이란산 캐비어, 낙타족발에 헤네시 xo 꼬냑 한잔만 먹게 해달라”고 애원했다. 아버지 때부터 철통같이 지켜오던 권력도 모든 고급음식을 차단당하고 입맛을 잃어버린 미식가 김정일에겐 부질없는 것이었다.

김정일의 몸무게는 그새 50kg까지 줄어있었다. 그 무렵 김치와 된장찌개를 먹지 못하는 ‘특수 거식증’이 너무 악화된 나머지 김정일은 지중해의 참치떼와 포르투갈 배꼽귤이 자신을 부르는듯한 환청까지 들렸다. 또 90년대 중반 식량난으로 억울하게 굶어죽은 300만 인민들의 영혼이 매일밤 김정일을 괴롭혔다.

김정일은 스스로 죽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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