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정부가 북한 산림녹화와 관련한 대북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광주과학기술원에서 열린 환경부 업무보고에서 “(북한 산림조성이) 통일 대비도 되고 국토 보전도 된다”며 “국토환경이라는 가치를 창출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강조했다.
이날 이 대통령은 “(북한에서) 이산화탄소 생산을 줄인다고 하면 그것이 우리에게는 일방적인 지원이 아니라 반대급부가 있다”고 했다.
이 대통령의 제안에는 북한의 녹화사업을 매개로 UNFCCC(유엔기후변화협약)에서 규정하고 있는 탄소 배출권을 확보하자는 복심이 담겨있다.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에 나무를 심어주고 그 대신 탄소 배출권을 확보하는 사업을 조림/재조림 청정개발사업(A/R CDM, Afforestation/Reforestation Clean Development Mechanism, 이하 약칭 CDM)이라고 한다. 이 대통령은 북한과 CDM 사업을 시작해 보자고 제안한 것이다.
MB의 복심은 ‘탄소 배출권’에 있어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 3월 7일 이 대통령 제안의 정책적 기초가 된 대(對)북한 조림 청정개발체제 사업을 분석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30년 계획을 기준으로 북한에 1억 그루 나무를 심는데 총 8억2500만 달러 비용이 소요되며, 목재 판매 수입 10억772만 달러와 이산화탄소 배출권 판매 수입 1억4050만 달러 등 총 12억1700만달러의 수입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결과적으로 4억 달러의 이익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대북 CDM 사업을 남북이 서로 윈-윈(win-win)할 수 있는 실용적 남북협력 사업의 일환으로 제안하고 있다.
사실 이 대통령의 제안에는 박정희 대통령 때 시작된 한국 녹화사업의 기적이 북한 땅에서도 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담겨있다. 그렇다면 과연 대북 CDM 사업이 실제 남북교류의 성공사례로 자리잡을 수 있을까? 나아가 수익까지 올릴 수 있을까?
현대경제연구원의 대북 CDM 사업 보고서에는 두 가지 논리적 맹점이 엿보인다.
첫째, 북한 현실에 대한 인식부족에서 나오는 논리적 허점이다. 산림정책은 ‘나무심기’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산림정책이 성공하려면 ‘산림조성’과 ‘산림유지’가 효과적으로 병행되어야 한다. 산림유지를 위해서는 정부의 행정력과 사회구성원들의 생활수준 향상이 뒷받침 돼야 한다. 한마디로 산림을 훼손시킬 동기가 감소되고, 산림 훼손을 통제하는 국가 행정력이 켜져야 효과를 볼 수 있다는 말이다.
1960년대에 우리나라는 나무를 연료로 사용하던 국민 생활수준이 석탄, 석유를 사용하는 생활수준으로 발전했다. 또한 산림보호 정책을 집행할 수 있는 국가행정력이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산림조성 의지는 한국 사회의 경제적 발전과 정부의 행정능력의 향상이라는 전제 속에서 성공한 것이다.
북당국 산림보호 능력 의문
그러나 지금 북한은 1960년대 한국의 상황과 완전히 다르다. 현재 북한 주민들이 사용하고 있는 연료에서 나무가 차지하는 비중은 월등히 높다.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1990년대 이후 북한의 대부분 가정에서는 석탄에 대한 대용 연료로 나무를 사용하고 있다.
북한 당국의 행정능력도 한심하기 이를데 없다. 주민들에게 산에 나무를 베고 밭을 만들라는 지시를 내린 것은 북한당국이다. 숲을 밀어내고 만든 밭에 대해 ‘땅세’를 걷는 공무원들이 바로 ‘산림감시원’들이다. 북한 당국은 주민들이 개인적으로 나무를 채벌하지 않도록 교육하고, 예방할 수 있는 행정력이 전혀 없다.
과연 언제쯤 북한의 생활연료 소비 실태가 변하게 될까? 북한에서 지금과 같은 독재체제가 유지되는 동안 쉽지 않아 보인다. 생활연료 소비 실태는 산업 발전과 궤를 같이하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개혁개방을 거부하면 북한의 산업 발전은 아주 더딜 것이다. 때로는 후퇴할 수도 있다. 주민들이 개인적 필요성에 의해 벌목하려는 동기를 감소시킬 유인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북한식 통제정책만으로는 별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
대북 CDM 사업, 李정부 이후에나 가능
현대경제연구원의 보고서는 ‘한국은 2012년까지 개도국 CDM 사업 대상국이 아니다’ 는 점도 놓치고 있다. 즉 2012년까지 우리 정부는 북한에 나무를 심어주고 탄소배출권을 받을 수 있는 CDM 사업을 할 지위가 안된다는 뜻이다.
현재 한국은 UNFCCC 안에서 개발도상국으로 분류된다. 때문에 UNFCCC의 1차 공약기간(2008~2012년) 동안에는 이산화탄소 감축 의무가 없다. 역으로, 한국은 개발도상국에 나무를 심어주고 탄소배출권을 대신 받는 CDM 사업을 추진할 자격이 되지 않는다. 이 자격은 이산화탄소 감축 의무가 있는 선진국들만 갖고 있다. 물론 2013년 이후에 한국이 UNFCCC 안에서 선진국으로 분류되어 이산화탄소 감축 의무를 지게된다면 그 때부터는 CDM 사업 지위을 가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UNFCCC 1차 공약 기간 이후의 일은 그때 가서 다시 협상 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에 지금 단정지을 수 없다.
2012년은 이명박 정부가 사실상 임기 마무리에 돌입하는 때이다. 그 때까지 북한을 대상으로 하는 탄소 배출권 연계 사업을 확정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한 시점에서 현 정부가 굳이 지금부터 대북 CDM 사업을 크게 벌일 필요는 없다. 대북 CDM 사업은 2013년 이후 한국이 UNFCCC 안에서 이산화탄소 의무 감축국으로 선정된 뒤 재검토해도 결코 늦지 않다는 것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의 대북 CDM 사업 손익 분석 예상치도 문제가 많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북한에 1억 그루 나무를 심는데 비용 지출을 총 8억2500만 달러로 추정했다. 이에 반해 수입은 목재 판매 수입 10억772만 달러와 이산화탄소 배출권 판매 수입 1억4050만 달러를 합쳐 총 12억1700만달러로 추정했다.
여기서 이산화탄소 배출권 판매 수입은 이산화탄소 1톤당 15달러로 계산했다. 그런데 15달러는 지나치게 높은 액수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산화탄소 시장은 항상 가격이 변하기 때문에 정확하게 추정하기는 힘들지만 최근 평균 가격은 1톤당 5달러 수준이다. 1톤당 5달러로 계산하면 탄소 배출권 판매 예상 수익은 1/3로 떨어진다.
더 심각한 부분은 목재 판매 예상 수치다. 목재 판매 수입은 10억772만 달러로 전체 예상 수입의 83%에 달한다. 현대경제연구원은 30년 뒤에 나무를 팔 수 있다는 전제 하에서 계산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30년 뒤에 몇 그루나 온전하게 성장할 수 있을까? 북한 주민들은 아궁이에 불을 지피기 위해 깊은 산속까지 들어가 나무를 베어가는 데 말이다.
대북사업, 섣부른 ‘판 키우기’는 금물
이명박 정부는 대북 CDM 사업을 진행하는 데에 있어서 좀 더 신중해야 한다.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선 민간이 주도가 되어 소규모의 식목 사업을 해보는 것이 좋다. 1~2년 동안 지켜보면서 심은 나무가 잘 관리가 되고 있는지, 관리가 안되고 있다면 어떤 방법으로 관리를 하는 것이 좋은지 검토 해야 한다.
민간 주도 사업을 통해 나무 관리 방법이 확고히 정립된 이후 정부가 나서면 된다. 정부도 우선 시범 지역을 선정하여 2년 정도는 소규모로 식목 사업을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대통령은 기회 때마다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정부사업에서는 ‘큰 판에서 크게 사업하는 것’을 선호하는 태도가 감지되고 있다. 대북사업까지 이렇게 몰고 가서는 안된다. 대북사업은 작은 실험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실험을 통해 검증해보고, 검증된 범위에서 투자를 확대해도 늦지 않다. 지난 10년 대북사업에서 ‘큰거 한방’을 선호했던 과거 정부의 선택이 어떤 실정(失政)을 낳았는지 주의깊게 살펴야 한다. ‘모르고 덤비는 것’이 ‘알고도 가만히 있는 것’ 보다 더 위험할 때가 있다. 바로 ‘대북사업’ 분야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