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김부자 흔적만 있으면 모든게 사적지”

▲ 중국 관광객이 김일성 동상앞에서 북한측 해설원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출처: 가우재선)

지난 7월 26일부터 28일까지 백두산지구 혁명사적지를 참관한 중국관광객들의 사진이 중국 카메라동호회 인터넷 사이트인 가우재선(佳友在线-디시인사이드 개념과 유사)에 실렸다.

이들은 국경을 넘어 혜산시, 보천보, 이명수폭포(鲤明水瀑布)등 북한 대학생들과 고등중학교 학생들의 백두산 혁명전적지 답사코스로 되어 있는 노정을 손수 밟아본 것으로 알려진다.

이들은 보천보 전투가 진행된 총탄자국이 역력한 경찰관 주재소를 방문하고, 김일성이 직접 전투를 지휘했다는 유리관에 보관된 백양나무를 관찰하기도 했다.

북한은 보천보 전투를 김일성의 대표적인 항일무장투쟁 업적이라 주장하고 있다.

1937년 6월 4일 밤10시 부대원 150명이 2개의 습격조와 2개의 차단조, 1개의 정치공작조로 나뉘어 제1 습격조는 경찰관 주재소·면사무소·소방서를 공격하고, 제2 습격조는 우편국·농사시험장·산림보호구를 습격하여 기관 건물들을 전소시키고 일제군경을 전멸시켰다고 북한 당국은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미미한 전과를 김일성 우상화를 위해 부풀렸다는 지적이 많다.

그들은 또한 김일성·김정일이 기념사진을 찍었다는 삼지연 호수가에 서있는 봇나무를 관찰하고, 김부자의 자취가 있는 무엇이든 사적물로 보존되는 북한의 우상화물 보존 관행에 경이로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이들은 또한 김정숙사범대학을 방문하고 이곳 교장과 기념사진을 찍고 어린이들이 준비한 예술공연을 관람하는 등 ‘외빈’으로 대우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한적한 혜산시의 도로와 교통경찰의 모습도 카메라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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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천보 전투가 진행된 경찰관 주재소 현장. 총탄자국이 벌집처럼 나있는 모습이 선명하다. 해설원들은 보천보전투 규모 보다는 국내 전투 의의에 대해서 강조한다.

▲김일성이 보천보 전투를 지휘했다는 백양나무. 유리관에 보관되어 있으며 참관자들이 올때마다 가운을 벗겨 구경시키고 있다.

▲ 사진은 보천보의 파헤쳐진 도로. 보천군은 양강도의 일개 군이며 도로는 시내의 한 언덕길이다. 중국산 짚차가 달린다.

▲ 사진은 혜산시에 있는 보천보승리기념탑. 나이많은 해설원이 관광객들을 안내하고 있다. 해설원들은 항일빨치산 연고자나 검증된 계층의 대학졸업생들이 맡고 있다.

▲ 사진뒤의 군상은 삼지연 대노천 박물관에 세워진 ‘조국진군상’. 항일빨치산들의 조국진군을 형상하고 있다.

▲ 혜산시 거리의 한곳에서 교통보안원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한적한 혜산시의 도로변. 도로중심인데도 비포장 토사도로이다.

▲ 이명수 폭포. 뒷편의 정각은 폭포위에 있으며 폭포수는 삼지연에서 뚫고 흘러나오는 것으로 알려진다.

▲ 북한의 답사생들이 이명수 폭포를 돌아보다 마루위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 삼지연 못가에 서있는 봇나무 아래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 나무아래서 김일성이 기념사진을 찍은 곳으로 유명해 사적물로 보존되고 있다 .

▲ 백두산에서 가장 높은 장군봉은 해발 2728m이다. 비석 뒤 백두산 천지의 모습이 장관이다.

▲ 혜산시에 있는 김정숙 사범대학교. 가운데 양복을 입은 사람이 학장이다.

▲ 혜산시 중학생들이 한 체육관에서 중국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예술공연을 벌이고 있다. 체육관 벽면이나 시설이 매우 낡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