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초대석] 북녘의 ‘목화할머니’ 김필주 박사

“제가 구상하는 대북 농업지원은 친환경 순환농업, 북조선(북한)형 새마을 만들기입니다.”

북한에서 ‘목화할머니’로 불리는 재미동포 김필주(70) 박사는 18일 연합뉴스와 이메일 인터뷰에서 유기질 비료로 토양을 개선하고 꾸준히 종자를 개량해 북녘 지역사회의 지속 가능한 개발을 도와야 한다며 이 같이 말했다.

김 박사는 이러한 신념에 따라 지난 18년 동안 대북 농업지원을 펼쳐왔으며 북한 당국으로부터 황해도 내 4개 농장 3천ha(약 900만평)를 임대받아 목화를 비롯한 각종 농산물을 재배하는 동시에 선진 영농기술을 현지에 전수하고 있다.

함경남도 영흥이 고향인 김 박사는 서울대 농과대학을 졸업하고 1962년 미국 유학길에 올라 미시시피주립대에서 종자학으로 석사, 뉴욕 코넬대에서 종자생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이후 노트럽킹(현 신젠타), 파이어니어 하이브레드 인터내셔널 등 미국의 유명 종자회사에서 근무하며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을 포함해 각국에 고품질 종자생산 기술을 보급하는 일을 맡았다.

김 박사는 파이어니어사의 기술보급담당 이사로 일할 때 북한의 옥수수 종자개량을 도와 달라는 부탁을 받고 1989년 3월 처음 방북했다.

“방북 제안을 받았을 때는 사실 조금 망설여졌지만 ‘아프리카도 가는데 북한을 왜 못갈까’하는 생각에 방북을 결심했어요. 동물, 특히 젖소 영양학 전문가였던 남편(고 주영돈 박사)과 저는 북한의 농업 개발을 위해 가장 필요한 과제를 연구하고 있었기 때문에 현지에서 환영을 받았습니다.”

김 박사는 당시 일주일 동안 북한에서 “두끼 먹기 운동”, “인민군대를 위한 돼지 두 마리 기르기 운동” 등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북한의 식량사정과 생활 수준이 높지 않다는 것을 체감했고 “어떤 방법으로든 도와야 한다는 막연한 생각을 갖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해마다 두 차례 방북해 미국산 옥수수, 콩, 밀, 보리, 사료작물, 꽃 등 작물의 적응실험을 진행하고 농업서적과 영농 실험기자재 지원도 시작했다. 이때 북한의 농업당국과 함께 일하면서 “북한에서 종자개량 및 생산, 효율적인 유기비료 시비, 정밀도가 높은 농기계 등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도 깨달았다고 한다.

김 박사는 그러던 중 1992년 회사로부터 3년 간 계속해오던 대북 옥수수 적응시험 프로젝트를 중단하라는 지시를 받고 은퇴를 결심, ‘지구촌 농업협력 및 식량나누기운동’이라는 비정부기구(NGO)를 설립하고 미국 내 다른 NGO와 함께 ‘봄보리 이모작 프로그램’, 감자 증산 등 본격적인 대북 농업지원 활동을 펴기 시작했다.

1992년과 1997년에는 북한 농업 전문가들을 미국으로 초청해 미네소타와 아이오와 등 미 중서부 곡창지대의 농업 현황을 파악하고 관련 기업, 대학, 시설을 참관하도록 주선하기도 했다.

“2000년 남편이 별세하면서 마지막 충고가 ‘북한 사역은 혼자 감당하기에 너무 힘든 일이니 그만두라’는 것이었는데..피가 물보다 진해서인지 농업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북녘의 아픔을 뿌리치지 못했어요. 지금은 협동농장 활성화를 우선 순위에 두고 수익성이 높은 농산품 생산으로 지역사회 개발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김 박사는 특히 “18년 간 경험으로 미뤄볼 때 긴급구호 물자로 2300만 인구를 먹인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구호는 일시적인 해소일 뿐”이라며 국가 차원의 종자 개량과 보급사업 활성화, 농장의 고수익 창출 등을 통해 북녘 농민들에게 “비빌 언덕”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박사가 선택한 고소득 작물은 목화로 이미 2004년 1정보당 0.72t, 2005년 1.2t, 지난해 2.3t을 수확했다.

그에 따르면 북한은 오랫동안 중국에서 목화 솜을 수입해 옷감을 짰는데 2002년 중국산 솜 값이 t당 1천60달러에서 1천500달러까지 올라 외화난 속 수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런 시기에 협동농장 운영을 시작한 김 박사가 북한에 잘 적응하는 목화 품종을 들여와 재배를 시작한 것이다.

김 박사가 운영하는 농장에서는 대부분의 수익을 농민에게 분배하고 주거.교육환경 개선, 사회복지, 편의시설, 육아.보건향상 등에 투자해 ‘자립형 농장’을 지향하고 있다.

김 박사는 아울러 “북측은 사료가 부족해 일반 협동농장에서 축산이 활발하지 못하고 퇴비를 만들 자원도 없다”면서 “북녘 산천에 축분(가축 분뇨) 냄새가 진동하도록 해 땅이 살아나게 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남한에서 나오는 축분을 저장, 숙성할 수 있는 시설을 북한에 만드는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남북이 상생하는 방법”이라고도 했다.

그는 “북측의 실무자나 농민들은 물론 지도층에서도 외부와 농업 협력의 중요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그들은 오래전부터 종자개량 연구가 활발한 미국과 협력을 원했다”며 “미국도 북한과 정치적인 문제만 해결되면 북한의 종자개량 사업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올해 수해로 농장의 경우 목화 수확이 47~60%, 식량 수확은 20% 정도 줄어들 것 같다”고 안타까워 하면서 남한과 국제사회는 북한이 식량난 해소와 농민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 “국가적인 정책수립과 농업개발의 마스터 플랜”을 마련하도록 협력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북한은 여건만 허락된다면 어느 발전도상국가보다 빨리 발전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습니다. (북한을) 부정적으로만 보면 한이 없습니다. 긍정적으로 보고 변해가는 북한에 우리의 힘을 보태야 합니다.”

김 박사는 그러면서 “대북 농업지원 사업은 여생을 바치기로 결정한 사업이고, 이를 위해 언제 어디든 필요하다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정열을 갖고 있다”며 ‘지구촌 농업협력 및 식량나누기운동’에 대한 관심과 후원(☎ 1-703-638-0074)을 당부하는 말을 잊지 않았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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