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지원국 해제] 北 ‘정상국가’ 진입 계기

미국이 26일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지정의 해제 절차에 착수함으로써 북한이 ’악의 축’ 이미지를 벗고 ’정상국가’로 국제사회에 편입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마련됐다.

북한이 이번에 미국의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되면 1987년 대한항공(KAL) 여객기 공중폭파 사건을 이유로 이듬해 1월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된지 20년만에 멍에를 벗게 된다.

이는 북한이 ’동토의 왕국’, ‘국제범죄 지원국’ ’악의 축’ 등 온갖 부정적인 이미지를 벗을 수 있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는 게 북한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전망이다.

서재진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테러지원국 해제는 북한의 깡패 딱지를 떼어주는 엄청난 의미가 있다”며 “국제사회에서 정상국가로 대접받는 것이고 말하자면 일반 민간인이 되는 것”이라며 평했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 역시 “테러지원국 해제는 북한이 국제사회로 정상 편입하는 교두보”라며 “테러지원국 해제라고 해서 어떤 유형의 조치들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북한이 정상국가로 간다는, 국제사회에 대한 신호라는 점에서 북한에 혜택이 큰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은 최근 우방인 중국과 러시아 뿐 아니라 베트남, 미얀마 등 동남아국가와 중동과 중남미의 비동맹 국가, 유럽연합(EU) 국가들과 활발히 교류에 나서면서 국제사회 참여 의지를 적극 내보이고 있다.

특히 미국이 50만t의 대북 식량지원 방침을 밝힌 후 이탈리아 등 유럽과 중국, 러시아도 잇달아 식량지원 입장을 밝히고 나선 데서도 알 수 있듯, 미국의 대북 테러지원국 해제 조치는 국제사회가 북한을 ’정상국가’로 인정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지난 2000년 남북정상회담 개최 후 당시 북한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과 미국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상호방문을 통해 북미관계가 개선조짐을 보이자 유럽 국가들이 잇달아 북한과 수교에 나섰던 선례도 북한의 국제무대 진출에서 대미관계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북한 정권 입장에선 특히 올해가 정권 수립 60돌을 맞는 해라는 점에서, 테러지원국 해제는 북한 정권이 올해 들어 거듭 다짐하고 있는 “조국청사에 아로새겨질 역사적 전환의 해”를 실현시킬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기도 하다.

북한을 둘러싼 국제환경의 변화는 북한 지도부가 내부 정치와 경제에서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는 데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일각에선 사회주의 맹주였던 중국이 과감한 개혁개방에 나섰던 1978년의 ’결단’에 비견되는 시발점도 될 수 있다는 한발 더 나간 전망까지 나온다.

고위 공직을 거친 북한 전문가는 “테러지원국 해제는 북한에 씌워진 여러가지 제재를 푸는 중요한 고리가 되기 때문에 북한이 공식적으로 표현하지는 않겠지만 경제 개혁과 서방과의 경제관계를 확대하는 개방으로 나아가는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개혁개방 의지를 강하게 보였던 중국과 다소 양상이 다를 수는 있어도, 북한의 선택에 따라서는 중국의 1978년 결정과 같은 기폭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국이 대미관계 개선 이후 사회주의 시장경제로의 전환을 추구하고 사회적으로도 변화를 시작했던 것처럼 이미 중국의 개혁.개방 현장을 두루 살펴본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개혁개방 정책을 가속화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핵실험 이후 ’강성대국의 여명’을 강조하고 있는 북한 당국은 미국의 테러지원국 해제 조치에 대해 주민들에게 “미국과의 싸움에서 이겨 미국이 억지로 굴레를 씌웠던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벗어나게 됐다”고 선전함으로써 김정일 위원장의 지배체제를 안정시키는 데도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 당국은 ’2.13합의’를 전후해 미국의 대북 강경자세가 누그러지고 북핵 6자회담이 풀려갈 기미를 보이자 김정일 위원장이 “핵실험이라는 초강수를 뒀기에 미국이 굴복했다”고 주민들에게 선전했었다.

그러나 테러지원국 해제가 북한에 ’이미지 개선’이라는 상징적 의미 이상의 의미를 가져다 줄 수 있으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림은 물론, 무엇보다 북한 정권의 변화 의지가 관건이라는 지적이 늘 뒤따른다.

박형중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테러지원국 해제의 상징적 의미가 크기는 하지만, 북한의 운신은 미국뿐 아니라 북한의 핵실험 이후 유엔의 제재 결의 등 다른 부분에 의해 걸리는 점도 많다”면서 “테러지원국 해제 이후 일단 국제기구 등과 접촉은 가능해지겠지만 북한이 실질적인 지원을 받기 위해 국제금융기구가 요구하는 요건을 충족시키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북한이 실질적인 도움을 받으려면 상당한 정도의 개혁.개방을 할 수 있는 자체의 정책 변화가 필요하고 국제사회와의 접촉 증가를 소화할 수 있는 수용력을 길러야 함은 물론 3단계 비핵화에도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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