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북한군] “금강산발전소 건설군인 3만명 죽었다”

▲ 안변청년발전소 상황을 듣고 있는 김정일
ⓒNK조선

북한 원산에 본부를 둔 ‘615 관리국'(군단급) 예하 부대 군인들이 지난 86년~2003년 안변청년발전소(금강산발전소) 건설 중 3만명이 사망하거나 영양실조로 죽었다는 증언이 나와 주목된다.

지난해 9월 한국에 입국, 지난 1월 하나원(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 사무소)을 졸업한 ‘615 관리국’ 예하 407군부대(일명 까마귀 부대) 하사출신 임영수(25, 가명)씨는 8일 기자와 만나 “90년대 중반 식량난 시기에 안변발전소 건설에 참가한 군인 3만명이 공사중 죽거나 허약(영양실조)에 걸려 사망했다”고 말했다.

강원도 창도군 임남리, 회양군 신명리 일대에 건설된 안변청년발전소는 86년 6월 착공했으나 건설이 지지부진했으며 2000년 10월 20일 2단계 공사가 완료된 것으로 알려진 20만KW 규모(추정)의 발전소다. 그러나 마무리 공사는 2003년까지도 진행돼 왔다. 2단계 공사는 96년~2000년 10월까지 진행됐으며, 이 기간중 인민군 4만여명이 공사에 투입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임씨는 “407군부대는 고성군 위남리에 있는데, 부대 앞산 전체가 무덤으로 그곳에 3만 명이 묻혀있다”며 “우리는 임남댐을 가리켜 ‘죽음의 언제(堰堤)’라고 하고, 굴을 뚫는 야적장을 ‘죽음의 굴’로 불렀다”고 말했다.

임씨는 또 “지금 북한군 하급부대는 대부분 허약에 걸려 있다”며 “내가 소속한 부대는 나와 비슷한 또래 100명 중 군에 남은 사람은 5명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한편 임씨는 “2004년 7월 김정일이 407 군부대를 시찰한 적이 있는데, ‘우리부대는 잘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민가의 가축을 빼앗아와 식사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또 임씨는 “군복무중 허약에 걸려 어머니가 돈을 주고 제대시켰다”고 말해 현 북한군의 기강이 무너지고 있음을 시사했다.

다음은 임씨와의 대화

– 소속했던 부대 이름은?

부대의 공식 명칭은 ‘615 관리국’이고 본부는 원산에 있다. 내가 소속했던 여단은 ‘407군부대’이며 강원도 고성군 위남리에 주둔하고 있다. 나는 2002년에 군에 입대했다가 2004년 9월에 제대됐다. 강원도 철령 밑에 있는 전시물자 야적장을 건설하는 굴을 뚫었다. ‘까마귀 부대’라고 하면 인근 주민들은 다 안다.

– 부대에 허약자가 얼마나 되나?

대부분이 허약자다. 우리 부대에서 내 또래들은 100명 중 5명밖에 남지 않았다. 죽고, 불구자가 되고, 감정제대(의병제대 또는 일시 귀가조치) 되어 집에 갔다. 요즘은 허약에 걸려도 집에 힘(빽)이 없으면 데려가지 못한다. 거기 있다가 죽으면 앞산에 묻는다. 죽으면 ‘사망신고서’ 한 장 집에 발송하면 끝이다.

군부대 앞산 전체가 무덤인데, 그곳에 3만 명이 묻혀있다. 안변청년발전소 건설에 투입된 615 관리국 예하부대 군인들이 죽었다. 우리는 안변발전소 물길 굴착 공사도 참가했는데, 임남댐을 가리켜 ‘죽음의 언제(堰堤)’라고 하고, 뚫는 야적장을 ‘죽음의 굴’이라고 불렀다.

– 김정일의 군부대 시찰을 언제 받았나?

2004년 7월이다. 우리부대가 뚫은 갱도를 돌아보고 ‘전쟁준비가 잘 되었다’는 치하를 하고 군부대 지휘관들을 대거 승급시켰다. 그날 기념사진도 찍었다.

– 방문 시 부대는 어떤 준비를 하나?

시찰 며칠 전부터 관리국 장령(장성)들이 내려와 분주하게 오간다. 어느 날, 부대 전원을 집합시키고 행사과 군관(장교) 3명이 나서서 허약(영양실조)에 걸린 군인들을 골라냈다. 그때까지 김정일이 온다는 것을 몰랐다. 허약에 걸린 사람들은 여단 수송차에 태워 다른 부대에 가서 쉬도록 했다. 행사가 시작될 무렵에야 김정일이 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북한매체를 보면 부대마다 남새(채소)와 육류가 많던데?

▲군부대를 시찰하고 있는 김정일

염소, 개, 닭은 주변 농장에서 우선 빌려다 짐승 우리에 넣는다. 김정일이 부대에 오면 식당에서 고기도 끓이고, 남새도 여러 가지 만들어 식탁에 올린다. 그 덕에 행사에 참가한 군인들은 한끼 푸짐하게 먹는다. 행사가 끝나면 가져왔던 짐승을 도로 가져간다. 이렇게 해서 ‘우리부대는 잘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 남은 짐승들은?

마을에서 빌린 짐승은 주민들이 절반도 못 찾아간다. 더러 잡아 먹었다고 하고, 일부는 빼돌리고 돌려주지 않는다. 그렇게 해도 농장에서는 찍소리 못한다. ‘장군님 행사’를 시비하면 목이 달아나기 때문이다. 여단에서 ‘인민군대 지원증’을 떼주면 그만이다.

– 기념사진을 찍는 경우도 있던데?

기념사진을 남기면 영광이다. 군대에 복무하는 목표는 입당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인데, 김정일을 만나 사진까지 찍으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접견자(김정일을 만난 사람)는 화선입당(후보당 생활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당원이 되는 제도)시켜 대학도 보내준다.

우리부대에서 접견자를 내세운 적이 있다. 여단장은 8년째 복무한 부소대장을 내세웠다. 그는 일도 잘하고 입당도 했다. 그런데 행사과에서 그 사람은 허약이라고 잘랐다. ‘허약자를 보면 장군님이 걱정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몸이 튼튼한 사람을 골랐는데, 그는 평소 일하기 싫어하고 쩍(툭)하면 마을 부락에 내려가 계집질 하던 찔통(말썽꾸러기)이었다.

김정일이 그에게 ‘너는 어떻게 이렇게 몸이 좋으냐?’고 묻자 그는”‘군사규정과 규범의 요구대로 살았습니다”라고 보고했다. 그 말을 들은 우리부대 전사들이 분노했다. 건달꾼이 영광을 차지한 것도 말이 안되지만, 진짜 군사규정대로 복무하면서 열심히 일하다 허약에 걸린 사람은 도대체 뭐란 말이냐고…

– 왜 대학 못 가고 제대됐나?

접견자도 부류가 있다. 나는 많은 사람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집체적으로 사진 찍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적어도 단독 접견 내지 서너명 접견에 끼어야 값이 있다. 나는 허약에 걸렸는데, 어머니가 군대에 돈을 먹여 빼주었다.

– 군복무 규정이 있는데, 그렇게 할 수 있는가?

군대도 돈만 먹이면 다 된다. 면회 왔던 어머니가 뼈만 남은 날 보고 눈물을 흘리며 돌아갔다. 후에 여단에 불려 갔더니, 대열참모(입대, 제대를 관할하는 사람)가 “자네는 가정곤란으로 제대된다”고 말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어머니가 돈을 주고 날 빼낸 것이다.

– 돈은 얼마나 주었나?

어머니가 대열참모에게 현금으로 건넨 돈은 10만원(남한 돈 4만5천원), 담배와 물건까지 합하면 모두 20만원이다. 다행히 남한으로 먼저 간 누이가 돈을 보냈기 망정이지, 나도 거기서 죽을 뻔했다.

2003년 7월 한국에 먼저 입국한 누이의 도움으로 임씨와 그의 어머니는 지난 2005년 9월 한국에 입국해 살고 있다.

한영진 기자(평양 출신 2002년 입국) hyj@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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