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기자] 나는 북한에서 6.25를 이렇게 배웠다

6월 25일이 다가왔다.

기자는 남한에서 네 번째 6.25를 맞는다. 놀라운 것은 6.25 전쟁에 대한 북한 당국의 선전이 지금 이곳에서도 버젓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어릴 때부터 6.25전쟁이 ‘북침전쟁’이었다는 반미선전을 지겹게 들어왔다. 따라서 북한 주민들의 역사관을 재정립하지 않고서는 사실상 의식의 통일은 어렵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오히려 진실을 가르쳐주는데도 어떤 교수는 맥아더 때문에 사망자가 늘었다는 주장을 버젓이 하고 다닌다. 둘다 반미선동이라는 점에서 유독 닮았다.

6.25 전쟁은 ‘미제가 일으킨 북침전쟁’

북한의 6.25 전쟁 교육은 철두철미 반제(反帝) 반미(反美) 계급교양이다.

북한 소학교 교과서에는 “6.25전쟁은 미제의 사주를 받은 남조선 괴뢰들이 일으킨 침략전쟁”이라고 못박고 있다. 1950년 6월25일 새벽 5시, 불의에 38선을 넘어 이제 막 태어난 공화국에 대한 침략전쟁을 개시했다는 것이다.

이날을 맞아 북한당국은 6월 25일부터 7월 27일(휴전협정일)까지 ‘미제 반대투쟁의 날’을 제정하고, 당, 군, 주민들이 모여 복수모임을 다지도록 한다.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 여성대표들이 차례로 나서 목이 쉬도록 외치는 ‘미제 타도’의 구호와 거리마다 반미를 선동하는 대형 포스터와 구호들이 내걸린다.

전쟁 자신감 키우도록 교육

북한이 반미선전장으로 이용하는 곳은 전승기념관(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과 신천박물관이다. 이 두 곳을 통해 북한이 어떻게 6.25를 반미 선전교육으로 활용하는지 알 수 있다.

평양시민은 물론 지방에서 올라온 평양 견학자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들르게 되는 곳이다.

전승기념관에는 6.25전쟁과 관련한 각종 자료들과 ‘전쟁영웅’들의 사진, 북한군 전쟁장비들과 전쟁시기 유엔군으로부터 노획했다는 탱크, 대포, 비행기 등 무기장비들이 전시되어 있다. 전장에서 직접 끌어온 잔해들이 곳곳에 전시돼있다. 서울 용산에 있는 전쟁기념관과 흡사한 곳이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어린이에서 학생, 군인, 노병 등 각 계층이다. 특별히 참관자들의 발길을 멈추는 곳은 넓이 3천㎡ 의 원형으로 된 ‘대전관’이다. 1950년 7월 20일 대전해방작전 승리를 기념해 만들어진 회전식 전경판은 360도 회전하면서 벽화와 구조물로 된 전투상황을 실제 상황에 맞게 조명하고 있다.

대전작전을 ‘현대포위전의 빛나는 승리’로 극찬하면서 군인들과 주민들의 전쟁공포를 없애고 승리의 자신감을 키우는데 사용된다.

날조된 ‘신천 박물관’ 계급교양 장소로

전승기념관이 ‘북침전쟁’의 역사를 가르치는 곳이라면 신천박물관은 반미, 계급교양 거점으로 유명한 곳이다.

신천박물관에 전시된 자료들은 50년 10월 황해남도 신천군을 강점한 미군이 전체 주민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3만 5천여 명의 양민들을 학살했다고 주장한다.

당시 위수사령관이었던 해리슨 중대장이 ‘아이와 어머니가 함께 죽는 것은 너무 큰 축복’이라며 일부러 따로 갈라놓고 학살했다는 것. 400명의 어머니와 102명의 어린이들의 묘까지 공개하고 있다.

기자도 중학교 시절 박물관을 돌아보며 ‘미군 한 개 중대가 3만 5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어떻게 죽였을까?”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남한에 나와 신천군 학살의 진상을 알게 됐다.

당시 사건은 ‘10월 13일 사건’으로, 토지개혁 때 공산당에 땅을 빼앗긴 극우 반공청년들과 공산당간의 좌우 충돌로 기록되어 있다.

2002년 4월 MBC 모 프로그램에서 당시 신천봉기 출신 가담자와 뉴욕의 미국국립문서보관소의 24사단 19연대의 전쟁 일지를 통해 북한이 선전하는 신천학살이 허구라는 것을 밝혀낸 바 있다.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한 국군과 유엔군이 38선을 넘어 북진하자, 공산군들이 지주, 성직자를 포함한 우익 반동분자들을 처형했다는 것. 이를 반대한 우익 청년들이 일으킨 반공봉기로 군안의 치안은 반공청년들의 수중에 들어갔고, 곧 이은 빨갱이 숙청작업으로 빚어진 내분이라는 것이다.

미국국립문서보관소 24사단 19연대의 전쟁 일지에도 ‘10월 13일 반공봉기’는 ‘만세 사건’ (Mansai affair)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북한 주민이 6.25에 대해 올바른 인식을 갖고, 이 두 기념관과 박물관을 역사의 유물로 남길 때 북한은 진정한 해방을 맞이할 것이다.

한영진 기자(평양출신, 2002년 입국)hyj@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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