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캠프 1박2일 동행기] “바이킹은 무슨 뜻이야요?”

▲ 탈북자 종합회관에서 주최한 ‘새 생활체험학교’ 캠프 ⓒ데일리NK

한국에 입국한지 채 3개월도 되지 않은 탈북자들의 남한 적응을 돕는 새생활체험학교에 자원봉사자로 1박 2일간 참여하게 됐다. 1만 2천명의 탈북자가 한국에 살고 있다고 하지만 지금까지는 나와는 먼 사람들인줄로만 알았다.

11일 오전 10시 서울 양재동 탈북자종합회관에 들어서니 화사하고 깔끔한 옷차림의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있었다. 처음에는 자원봉사를 위해 온 사람들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오늘 만나게 될 탈북자들이었다. 탈북자라고 하면 어딘가 촌스럽고 어색한 모습이라고 생각했던 그동안의 생각과는 너무나 달랐다.

그러나 ‘남한사람이나 북한사람이나 별 차이 없구나’라는 생각도 잠시. 같이 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닮은 모습만큼으나 차이도 크다는 것을 조금씩 깨닫게 됐다.

캠프가 진행된 경기도 포천에는 유난히 밤이 많이 열렸다. 탈북자 분들은 쉬는 시간마다 틈틈이 밤을 주으러 다니셨다. 어떤 분들은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 밤을 주을 정도로 열성이었다. 나무를 흔들다 벌에 쏘여 응급차에 실려가는 소동도 일어났다. 처음에는 저 분들이 왜 그리도 열심히 밤을 따는지 이상하게만 느껴졌으나 북한에서는 밤 한 알조차도 귀중한 식량이 되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자 마음 한 켠이 싸해졌다.

탈북자들과의 대화는 흥미진진했지만 서로 알아듣지 못하는 얘기가 많아 곤혹스럽기도 했다.

전날 에버랜드에 놀러갔다는 이야기에 “에버랜드에서 바이킹도 타셨어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에버’와 ‘랜드’는 무엇이며 ‘바이킹’은 뭘 말하는 것이냐고 되묻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에버랜드와 바이킹을 머릿속에 기억해 두려는 듯 계속 입으로 중얼거렸다.

최근에 화장하는 법을 새로 배운 탈북자들과 얘기를 나누다 립스틱이 북한에서는 구홍(口紅)이라는 것도 배울 수 있었다.

캠프에서는 북한에서 신병들을 교육시켰던 여군 출신 탈북자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군인들에게 미국을 욕하고 김정일을 칭송하는 교육을 시키면서도 그것이 강제적인 허상임을 느꼈다고 한다. “남조선을 때려 부수고 조국을 통일하자”는 말이 입에서 튀어 나왔지만 마음에서 우러나왔던 것은 아니었다는 고백이었다.

그녀는 처음 중국에서 선교사를 통해 탈북 제안을 받았을 때 북한에 있는 가족들이 걱정되어 단칼에 거절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후 남한 사람들의 얌전한 말투와 옷차림이 너무 부러워 탈북을 결심하게 되었다. 그녀의 소원은 남한의 군대에 들어가 여군이 되는 것이었다.

26살이라는 또 하나의 여성 탈북자는 북한에서 의사나 군인이 되고 싶었지만 집안이 좋지 않아 원하지 않는 학교를 배정받은 후 북한사회에 대한 실망감을 느껴 탈북을 결심하게 됐다고 한다. 몽골을 거쳐 남한에 오게 된 그녀는 이곳에서의 외로움과 북에 두고 온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을 토로했다.

캠프에서 만난 많은 탈북자 분들은 한국을 아직도 어색해했다.

중국에서 3개월 정도 체류하다 온 분은 중국에서 짧게 있었던 것처럼 남한도 잠시 여행을 위해 들른 곳 같다고 이야기했다. 중국에서 오래 생활 했던 분은 서울이 청도와 비슷해서 이곳이 한국이라는 생각을 잊다가도 사람들이 중국어를 안 쓰는 것을 보며 한국이라는 것을 순간순간 깨닫는다고 했다.

상기된 얼굴로 “지금이 너무 꿈만 같아 잠에서 깨면 사라질 것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한 탈북 여성의 이야기에 모두 크게 동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으로는 김일성의 별장이었던 경기도 포천 이동면의 산정 호수를 찾았다. 어떤 탈북자 분이 웅변하는 말투로 “친애하는 김정일~”을 외치며 장난을 쳤다. 여기서까지 그런 이야기를 하냐며 핀잔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다들 예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자유로운 분위기가 싫지만은 않은 듯 했다.

이 자리에는 선배 탈북자들도 참가해 남한 적응을 위해 필요한 조언도 해주었다. 많은 돈은 아니지만 보조금으로 받으며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는 현재의 생활에 만족한다는 말과 함께 남한에서 어떤 힘든 일이 있더라도 북한에 비해 살기 좋은 이곳의 삶을 항상 감사하고 살라고 당부를 남겼다.

탈북자들과의 짧은 만남을 통해 북한이 나와는 뗄 수 없는 가까운 곳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대학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핸드폰에 오는 광고 메시지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라고 묻는 그들에게 아직 남한은 멀고도 낯선 땅일 뿐이었다.

서울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고향을 등지고 떠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해야 하는 탈북자들에 대한 염려와 북한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조차 두지 않는 대학교 친구들의 모습이 동시에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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