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청와대 호소] “목숨 같은 저의 배를 돌려주십시오”

2005년 6월 자신의 배를 타고 황해남도 룡연군에서 남한으로 탈출한 홍만수씨가 당시 타고온 배에 대해 보상을 요구하는 글을 24일 청와대 게시판에 올렸다.

홍만수씨는 “존경하는 노 대통령에게 드립니다”는 제목의 글에서 자신의 생계수단과도 같았던 배를 남한당국에 회수당한 채 보상도 받지 못했다고 주장하며 자신의 사연을 소개했다.

홍씨는 1998년, 저축해둔 부모의 돈까지 털어 배와 엔진을 구입했다. 해삼, 전복, 소라, 미역 등을 채취하여 생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바닷가 마을에 국가등록을 해놓고 개인영업을 하는 배들이 생겨나자, 북한 당국은 ‘자본주의 현상’이라며 배를 회수했다. 바다에 나가지 않으면 살 길이 없었던 홍씨는 다시 가산을 몽땅 판돈으로 작은 배 한척을 장만했다. 하지만 2003년 3월 또다시 ‘비(非)사회주의 집중검열’에 걸려 배를 잃고 말았다.

계속 무상몰수 당한 홍씨는 배를 가지고 남조선에 가면 통제를 받지 않고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곳에서 열심히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자신의 배를 2005년 남한으로 탈출했다.

그러나 홍씨는 남한에 왔지만 배를 찾지는 못했다고 주장했다. 홍씨는 이 글에서 남한당국에서 배를 파기했다고 주장했다. 홍씨는 “배 값은 돌려주어야 한다”며 “마지막 소원으로 이 글을 올린다”고 호소했다. 다음은 홍씨가 올린 글의 전문이다. 북한식 표기는 그대로 두었다.

이현주 기자 lhj@dailynk.com

홍만수씨가 청와대 게시판에 올린 글의 전문

존경하는 노무현 대통령님께 드립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2005년 6월 26일 황해남도 룡연군 등산곶에서 가족과 함께 배를 타고 백령도로 귀순한 탈북자 홍만수입니다. 국사로 다망하신 대통령님께 무엄함을 무릅 쓰고 이 글을 올리는 까닭은 대한민국의 한 국민으로서 대통령님께 마지막 청이라도 드려야 하겠다는 억지스러운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북한이 많이 변했다는 것은 대통령님도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살던 황해남도 룡연군에서도 그 변화의 바람을 타고 90년대 중반부터 개인들이 배를 무어 바다에 띄울 수 있는 조건이 조성되었습니다. 물론 순수한 개인영업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으나 국가기관 산하 기업소에 등록만 하면 그 명목 하에 개인어업을 할 수 있는 조건이 열렸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고등중학교를 졸업하고 줄곳 바다일만 해왔던 저는 1998년 5월, 평생 저축해 두었던 부모님의 돈까지 모두 합쳐서 배와 엔진을 구입하였으며 북한 정부에 등록을 하고 개인어업을 시작했었습니다. 개인어업이라고 해 보아야 해삼, 전복, 소라, 그리고 미역과 같은 바다풀을 뜯어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었지만, 누가 보기에도 우리 가정은 개인 배까지 소유한 행복한 가정이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행복”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바닷가 마을들에 국가등록을 빙자한 개인 배들이 생겨나는 현상을 북한당국이 방치해 둘 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1999년 9월, “이러한 현상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나 있을 수 있는 현상”이라는 노동당의 방침이 떨어지고 곧이어 인민군 보위사령부의 대대적인 검열단이 우리 마을에 들이 닥쳤습니다.

저를 포함한 룡연군의 적지 않은 사람들이 배를 회수당했고, 검열을 피하여 배와 엔진을 산이나, 강냉이 밭에 숨겨두었던 사람들은 바다에 나갈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숨죽인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바다에 명줄을 걸고 사는 사람들인지라 이듬해 4월말부터는 감춰 두었던 배들이 하나둘 바다출입을 하기 시작했고, 또 다시 배를 뭇는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었습니다.

바다에 나가지 않으면 살아갈 길이 없었던 저도 다시 용기를 내어 가산을 몽땅 판 돈과 맞바꾼 자그마한 배 한척을 장만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마련한 작은 배 한척을 바다에 띄워놓고 늙으신 부모님들과 온 밤을 지새며 행복한 삶을 설계하던 그 순간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2003년 3월 또다시 북한에서는 이른바 “비사회주의 숙청”을 목적으로 한 노동당 중앙위 집중검열이 시작되었습니다. 갑자기 들이닥친 검열단 성원들에 의하여 항변 한번 제대로 해 보지 못하고, 목숨과 같은 배를 잃고 말았습니다. 죽고 싶었습니다. 국가에서는 식량공급과 노임을 주지 못하고, 그나마 개인들이 영업하던 배마저 빼앗아 가면 힘없는 백성들은 무엇을 먹고 살아간단 말입니까.

하지만 늙으신 부모님들 앞에서 맥을 놓고 있을 수만 없어 다시 용기를 내어 살아갈 길을 모색했었습니다. 애써 마련한 돈을 사기당하기도 하고, 남의 배를 타면서 죽을 고비도 넘기면서 죽기 살기로 노력한 결과 2004년 5월에는 또 한척의 작은 배를 바다에 띄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존경하는 대통령님, 저를 포함한 우리 북한 사람들은 그렇게 어렵게 자신과 가정을 위한 소중한 희망을 쌓아 왔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에게 들이닥치는 것은 언제나 순간에 찾아오는 치명적 불행이었습니다. 배를 무은 지 1년도 채 안되던 2005년 3월, 이번에는 황해남도 룡연군당 책임비서가 직접 나서서 일체의 개인 배들을 몰수, 군당에서 직접 관리한다는 통보를 내렸던 것입니다.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보안원(경찰)들을 위시한 50여명의 상무성원들이 마을로 들이닥쳤으며 빼앗기지 않겠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나와 아내를 뿌리치고 끝끝내 배를 회수한다는 붉은 딱지를 저의 배에 붙여 놓았습니다. 그러면서 한다는 소리가 “노동당의 지시를 받지 않고 살려거든 남조선에나 가서 살라”고 뇌까리는 것이었습니다.

폭풍처럼 짧은 순간에 배를 빼앗기고,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 있었지만, 사람들이 가고난 후에 나의 머리에 남은 생각은 분하고, 억울하고, 원통한 생각보다도 “그래, 남조선에 간다. 가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남조선으로 가고야 만다”는 것이였습니다.

배를 가지고 남조선에 가면,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그곳에서 노동당의 통제도 받지 않고, 나의 노력으로 열심히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몇일 후 군당 책임비서의 지휘하에 개인 소유의 배들에 대한 최종 회수작전이 진행되었으며 배를 실어가겠다고 차량들까지 마을에 들이닥치게 되었습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고 피땀으로 마련했던 소중한 배를 세 번이나 무상으로 몰수당하는 수모를 더 이상 참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우리 가정은 정든 고향을 떠났고, 사랑하는 부모형제들을 뒤에 남기게 되었습니다.

올해 76세의 병약한 아버님, 74살의 노인병을 앓고 계시는 어머니…그분들에게 이제 남조선으로 가서, 마음껏 바다 농사를 지으며 행복해지는 것으로, 그래서 어느 날엔가 부모님께도 효도하겠다는 무언의 약속을 남기고 정든 고향을 떠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대한민국으로 찾아왔는데, 그 목숨 같은 배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제가 한국에 와서 국정원 조사를 받는 과정에 배를 파기해 버렸다고 합니다. 이곳 실정을 모르고, 불안에 떨면서 국정원 조사를 받는 과정에 벌어진 일이지만, 아내와 저를 담당했던 담당관들이 “배가 항구에 있어서 다른 배가 들어오지 못 한다” “지금 남한에서는 고철 값도 받지 못할 배다”고 하면서 폐기 수속을 밟았던 것입니다.

영문도 모르면서 조사관들이 내미는 종이에 싸인을 했고, 그 결과 조사과정을 마치고 배를 찾으니 북에서부터 목숨처럼 지켜온 저의 배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어찌한단 말입니까. 목숨을 버릴지언정 우리 가족의 운명이 달려있는 생명줄과도 같은 배였기에, 그 억만금과도 바꿀 수 없는 배를 기둥으로 탈북까지 단행했던 저희들인데 말입니다.

존경하는 대통령님, 이제 배도 없어졌고, 희망도 없어진 저희들이기에 마지막 소원처럼 이 글을 올립니다. 저희들에게 희망을 찾아 주십시오. 제가 북에서 생활할 때 남조선으로부터 떨어지는 그 무수한 삐라들에는 비행기며 배를 몰고 남조선으로 오는 사람들에게 상금과 보상금이 차례진다는 내용들이 적혀 있었습니다.

상금과 보상금까지는 바랄 생각도 없으며 형편도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해당 부서에서 배 값 만큼이라도 돌려주어야 한다는 것은 평범한 백성인 제가 아는 상식입니다. 하지만 국정원에서는 통일부로 가서 해결을 받으라 하고 통일부에서는 국정원에 가서 해결을 받아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습니다.

엊그제는 관련부분에서 종사하는 공무원이 기껏해서 한다는 이야기가 좀 억울한것 같으니 변호사를 사서 소송을 해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합니다. 희망도 잃고, 당장 살아갈것이 문제인 사람에게 어디서 돈이 나서 변호사를 사며, 무슨 용기를 가지고 소송을 한단 말입니까.

15년 동안 어부로 생활한 저는 한국에 대한 희망만 있었을 뿐, 현실에 대한 이해는 너무나 부족한 사람입니다. 그 때문에 이처럼 무엄하고 버릇없는 글 까지 드리게 됨을 용서해 주십사, 머리 숙여 사죄드리며 안타까운 이 사연 꼭 해결해 주십사,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늘 건강하시고, 훌륭한 대통령으로 남기를 기원드립니다.
2006년 2월 23일, 탈북자 홍만수 올립니다.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