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기고] 북송 장기수 이인모에 대한 기억

▲ 북송당시 진행된 이인모 환영행사

북한 내에서 ‘신념과 의지의 화신’으로 떠받들어 졌던 북송 장기수 이인모의 사망 40일을 맞아 그의 딸 이현옥이 김정일에게 올린 감사의 편지가 노동신문 6일자에 실렸다.

이 씨는 편지에서 “34년간의 모진옥고를 치르고 살아서 조국으로 돌아온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죽은자’로 판문점을 넘은 아버지가 90장수를 누린 14년은 기적과 기적으로 이어진 나날이었다”고 말했다.

이 씨는 “남조선 감옥에서 폐인이 되어 ‘숨쉬는 화석’, ‘시체 아닌 시체’로 판문점을 넘은 아버지가 14년간이나 더 산 것은 오로지 김정일장군님의 사랑의 덕분”이라며 아버지 보다 김정일 찬양에 더 열을 올렸다.

이미 고인이 된 가족에게 쓰는 편지조차 김정일에 대한 숭배가 우선인 것은 북한에서는 당연한 이치다. 망자가 죽을 때 말 한마디 잘못해서 가족 전체가 풍비박산 난 일이 한 두 번이 아닐 정도니 이 정도 편지는 약과라고 해두자.

1993년 3월 이인모가 북송 될 당시 북한 주민들의 반응은 ‘신념과 의지’ 보다는 “남조선 감옥은 대체 어떤 곳이기에 34년 동안 감옥살이 한 사람이 살아나올 수 있나?”는 의아심 이었다.

‘이인모 효과’ 선전 극대화 배경

북한에서는 일반 경제범을 다루는 감옥에서도 죄수들이 웬만해서는 십년을 버텨내기가 쉽지 않다고 말한다. 통 강냉이로 하루를 연명하고, 새벽부터 이어지는 강제노동과 열악한 생활환경에서는 살아남는 것도 전투가 된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40년 이상 감옥생활을 했다는 비전향 장기수들이 줄줄이 살아 돌아오자, 북한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남조선 감옥은 살만한 곳이다”는 인식이 생기게 됐다.

북한은 이인모 북송 당시 그 효과를 극대화 시켰다. 개성-평양을 잇는 연도에 수만 명의 인파를 동원시키고, 전국에 ‘신념의 화신 이인모를 따라 배우자’는 운동이 이어졌다.

당시 1차 핵위기로 영변원자로에 대한 미군의 폭격설이 파다하게 퍼져 주민들에게 대한 사상교육이 어느 때보다 강조됐던 시기였다.

이러한 때 ‘이인모 효과’가 제대로 빛을 발했던 것이다. 감옥에서 34년간 살면서도 전향서를 쓰지 않고 다시 북한으로 돌아왔으니, 주민들에게 ‘충성심의 표상’으로 선전하기가 딱 좋았다. 그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까지 제작되었다.

지금도 북한 전역에 널린 정치범수용소에는 술자리에서 김정일을 욕했다는 이유로 체포영장도 없이 끌려오고 영장실질 심사도 거치지 않고 완전통제구역과 혁명화 구역에 갇혀 재판도 없이 죽어가고 있는 정치범들이 수두룩하다.

공민권이 박탈된 그들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조차 기억하는 사람조차 없다. 21세기 개명천지에 이러한 암흑의 인간 생지옥이 있다는 사실을 이인모의 딸 이현옥이 알고나 있는지 궁금할 뿐이다.

이찬복(가명) / 탈북자(2003년 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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