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의 추석] 봉분없는 묘지라도 술 한잔 올렸으면…

▲ 성묘하고 있는 북한 주민

추석을 맞는 탈북자들의 심정은 착잡하다. 명절이 오면 더 외로움을 느끼지만 추석을 맞아 부모님 묘를 찾지 못하는 심정은 어디에 비길 데가 없다.

탈북자 중에는 극심한 식량난 시기 제 명을 못 다 사신 부모님을 관도 없이 거적에 말아 언 땅에 묻고 남한으로 내려온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래서 탈북자들은 통일되면 고향에 돌아가 양지바른 곳에 묘를 다시 쓰겠다는 소망을 가진다.

그러나 이 작은 소망마저 물거품이 될 것 같다.

북한당국이 2000년 들어 군인들을 동원해 도로와 가까운 야산의 묘지는 평토(平土:봉문을 없애고 땅과 평평하게 함)했기 때문에 고향에 돌아가도 부모의 묘를 찾을지가 걱정인 것이다.

현재 남한거주 탈북자들은 90년대 중반 식량난 때 부모를 잃고 묘비도 못 세우고 나온 사람들이 태반이다.

“외국인 보기에 창피” 군대 동원 봉분 깎아

당시에 굶어죽은 사람들은 대부분 산에 묻혔다. 북한의 산은 모두 국유지여서 묘자리를 먼저 잡는 사람이 임자였던 것이다.

북한에는 나무 한 그루 없는 민둥산이 많다. 민둥산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묘지는 커다란 공동묘원을 형성해 멀리서도 쉽게 눈에 띠었다.

특히 평양-향산 고속도로, 평양-개성 고속도로 주변 야산의 묘지들은 외국인들의 눈에도 쉽게 드러났다.

김정일은 95년과 98년 두차례 평안북도 구장군 용문대굴을 시찰하면서 “묘지가 너무 많으니 보이지 않게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북한을 찾은 외국인들이 보기에 창피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각 시군 인민위원회는 묘지의 봉분을 깎고, 묘비를 땅에 눕히라고 주민들을 찾아 다니며 지시했다. 일부 봉분을 낮추지 않는 묘지들은 도시경영사업소의 건장한 사람들을 동원해 봉분을 깎았다.

2006년 3월 입국한 함흥출신 탈북자 김옥순(가명)씨는 “김정일이 함흥과 낙원에 있는 군부대를 방문하게 되자, 그 지역 군인들을 동원해 봉분을 다 깎았다”며 “남편의 묘도 그때 깎였다”고 말했다.

묘지를 낮추라는 공시가 거리 곳곳에 나붙고 함흥시 인민위원회에서 들볶았지만, 장사로 먹고 살기에 바쁜 주민들이 시간을 내지 못하자 군대를 동원해 깎아 버렸다고 김씨는 말했다.

봉분 윗부분을 평평하게 깎고 땅에서 약 30~50cm가량만 남겼다. 묘비는 앞에 놓거나, 깎인 묘지 위에 얹어놓도록 했다.

지금 남한에서는 장묘문화가 많이 바뀌고 있다. 묘지 쓰는 경우가 즐어들고 화장이 늘어나는 추세다. 물론 남한의 장묘문화는 발전된 것이다. 그리고 각자 알아서 장묘문화를 선택한다. 그러나 탈북자들에게는 고향에 돌아가 맨먼저 부모님 묘에 술 한잔 올리는 것이 가슴에 한이 되어 있다. 그 다음 평토하든 화장하든 알아서 결정할 일이다.

더욱 말이 안되는 것은 김정일이 김일성 시신궁전을 새로 건설하는데 무려 8억9천만 달러가 들었고, 이 돈이면 3년간 옥수수를 사서 인민들이 굶어죽지 않았다는 것이다.

게다가 만경대에는 김형직(김정일 할아버지), 강반석(김정일 할머니), 김보현(김정일 증조할아버지), 이보익(김정일 증조할머니)의 묘는 왕릉처럼 꾸며져 있다. 이것이 김정일 정권의 실체인 것이다.

봉분 없는 묘지라도 부모님 묘지에 술 한잔 올릴 수 있으면 더 소망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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