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사회 10년] ⑧”물고기 대신 낚시법을”

탈북자를 위한 정착지원금 제도의 효용성 논란 속에서 미국이나 영국에서처럼 정착금 지원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다소 극단적인 주장도 나온다.

북한이탈주민후원회의 한 관계자는 “탈북자들이 남한에 오면 자본주의로 의식을 바꿔야 하는데, 사회주의 방식처럼 지원금을 주다 보면 경쟁체제에서 살고자 하는 의욕이 안 생기지 않겠느냐는 비판이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탈북자를 포함해 난민들에게 특별한 정착금을 지급하지 않고 1주일에 60달러씩, 총 2개월간의 생활비와 8개월간의 의료지원비를 지급할 뿐이다. 지출 명목이 지정돼 있기 때문에 음주 등으로 낭비하는 게 어렵다. 미국으로 입국할 때는 항공료도 나중에 갚는다는 각서를 써야 한다.

영국에 입국한 탈북자도 난민 신청 단계에선 망명지원청(NASS)으로부터 받는 주당 5만5천∼7만원의 생활비를 받고, 난민으로 인정받더라도 취업권리를 얻고 영국인들과 똑같은 보조금 혜택을 볼 정도다.

미국에서 탈북자를 지원하는 인권단체의 한 관계자는 “한국의 프로그램은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기보다는 고기를 주는 식이어서 정신을 나태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며 “정착지원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자활 능력을 키우는 데 역점을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는 “탈북자들이 직업훈련 수당과 장려금을 임시방편적 생계 수단으로 인식하게 된다면 정부 대책은 고비용, 저효율 시책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착지원금 제도를 운영하더라도 재정적 지원보다는 취업이나 학업 등을 통해 생활인이 되도록 돕는 데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김영수 서강대 교수는 현행 정차지원금 제도에 대해 “하드웨어는 이제 어느 정도 갖춰졌으므로 소프트웨어를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그동안의 개선을 통해 탈북자 스스로 정착 노력을 해야만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방향으로 제도 자체는 비교적 정립된 셈이라는 것이다.

탈북자 문제에 관심을 가진 법무법인 태평양의 유욱 변호사도 “새터민관련 법률과 제도적 장치를 꾸준히 정비한 결과 부처간 협업구조와 하나원의 민간위탁, 북한이탈주민후원회와 사회복지관 및 정착도우미 활용 등제도화의 틀을 상당히 갖췄다”고 진단했다.

탈북자들은 하나원을 졸업하면 임대주택과 함께 3천여만원을 한꺼번에 지원하던 과거에 비해 초기 정착지원금이 줄어든 데 불만을 가질 수 있지만, 직업교육이나 취업과 연계하는 인센티브 방식이 이들의 국내정착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는 평가다.

문제는 다양한 경력을 가진 탈북자들이 전혀 생소한 사회에 연착륙하도록 돕는 방법.

유 변호사는 정부가 주도해온 교육과 취업 대책을 민간주도로 바꿀 것을 주장했다. 10년 역사의 탈북자 지원활동을 통해 전문성을 쌓은 민간단체가 여러 곳 있는 만큼 이들을 중심으로 ‘새터민 종합지원센터’를 구축해 정착지원 프로그램 공급자로 활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종합지원센터가 탈북자들에 대해 1대1 맞춤형 진로지도를 하고 적합한 기업체를 알선하는 것은 물론 취업 후 사후관리까지 도맡는 것이다.

북한이탈주민후원회의 안효덕 대외협력부장은 “경제 개념과 금융지식이 없는 탈북자들에게 돈을 줘봐야 그냥 ‘날릴’ 소지가 큰 만큼, 주거지나 생필품을 제외하고는 적응 정도에 연계해 지급하는 방식이 돼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탈북 대학생 한영진씨는 탈북자들의 취업지원엔 교육훈련뿐 아니라 정확한 취업정보 제공도 긴요하다며 온라인 종합소개소 등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현행 직업교육을 실질화할 필요성도 제기됐다. 안효덕 부장은 “3-6개월 교육을 받아 자격증을 땄다고 해서 정상적인 일자리를 찾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고 예산낭비일 뿐”이라며 더 장기간의 직업훈련 필요성을 주장했다.

특히 탈북자들의 기대치를 낮추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했다.

탈북자들이 ‘성공한 남쪽 사람’에 기대치를 맞추고 있는 만큼, 하나원 교육과정에서부터 개개 탈북자의 능력, 이력 등을 감안한 명확한 진로지도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김영수 교수의 안은 대학의 입학사정관제와 유사한 ‘새터민사정관제’를 운영하는 것. “새터민 개개인의 특성과 과거 경력, 선택 등을 고려해 사회에 배출된 이후 진로를 명시해주고, 그 방향에 잘 적응하는 사람들에게는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식”이다.

서울대학교 통일연구소의 박정란 박사도 “새터민에 대한 진로 상담 때 북한과 제3국에서 쌓은 인적 자원을 고려한 직종가운데 현재 나이와 건강 등의 여건을 고려해 진로 기대 수준을 조절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잠재능력을 적극 발굴하려는 상담도 병행해야 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김영수 교수는 “개개인의 특성을 간과하는 하나원 교육을 이제는 맞춤형으로 개선해야 하고, 과밀 교육을 해소하는 것도 급선무”라고 말했다.

탈북자들이 북한사회의 특성과 탈북 과정에서의 비정상적인 생활로 인해 정신건강이 피폐해진 것을 감안한 정신적 치료와 ‘정서적’ 직업능력의 향상도 필요하다.

박정란 박사는 “새터민들은 심신의 불안정, 자기효능감 저하, 대인관계의 어려움 등에 직면했는데 이들에 대한 교육은 직업기술 연마에만 국한”돼 있어, 취업 이후 가장 어려운 과제인 대인관계 등 직장생활에서 나타나는 현실적 문제에 대처하기 어렵게 된다는 것이다.

안효덕 부장은 “탈북자들이 중국 등에서 1년이상 쫓겨다니는 불안한 상황에서 정신적 질환이 생길 수 밖에 없다”며 “하나원에 있을 때 정신질환이 심각한 사람들을 찾아내고 이들을 지역사회에 배치했을 때 보호하고 치료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우리 사회 내부적으로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고경빈 하나원장은 국가가 모든 것을 해줘야 한다는 인식이나 직장.사회 생활에서 대충 하는 행태, 정치적 활동에 대한 집착 등은 사회주의 체제에 살면서 생긴 관성인 만큼 “시간을 가지고 지켜보면서 작은 실수나 문제점을 무조건 지적하기 보다는 스스로 고칠 수 있도록 하는 관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연합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