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사회 10년] ⑤南의 `오만과 편견’

“북한으로 돌아가라.”, “남남북녀라고 하는데 너는 왜 그렇게 생겼니.”, “너때문에 내가 군대에 가야 하느냐.”, “빨갱이”, “북한 애들은 싸움 잘 한다는데 한번 붙어볼까.”

남한에 입국해 일반 학교에 들어간 탈북 청소년들이 북한 출신임이 알려질 때 으레 듣는 소리들이다. 탈북 청소년들이 겪는 반감과 놀림, 편견의 언어 폭력이다.

5월 현재 국내에 있는 탈북자 1만3천700여명가운데 청소년은 1천300∼1천500명.

이영석 북한인권시민연합 교육훈련팀장은 “북한이나 중국에서 사춘기에 생계 곤란을 겪은 탈북 청소년들이 남한에서 왜곡된 인식과 문화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일탈하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말했다.

’공짜 돈’만 생각하는 일부 성인 탈북자들의 사회적응 실패에 대해선 본인의 ’의지 부족’이라는 질책도 가능하지만, 탈북 청소년들의 역정을 보면 그들의 의지를 탓하는 게 가혹하다.

먹을 것을 찾아 고향을 떠나는 부모를 따라 어린 나이에 사선을 넘어 제3국에 체류하다 입국한 탈북 청소년들은 제대로 학습할 기회를 상실하고, 북한에 잡혀갈 수 있다는 두려움 속에 숨어지내다 보니 인성교육도, 문화적응 교육도 전혀 받지 못했다.

서울 노원구에 사는 탈북 청소년 A군은 친구가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해 그 친구와 싸웠다가 며칠 뒤 그 친구의 친구들로부터 집단폭행을 당하면서 “다른 학교로 가라”는 협박을 받았다. 서울 양천구의 탈북 초등학생 B군은 임대아파트에 살며 학원에 다니지 않는다는 이유로 집단따돌림을 당했다.

교사들도 이런 탈북 청소년들에 대한 이해심없이 남한 학생들만 감싸는 경우가 적지 않아, 남한 학생들보다 더 따뜻한 손길을 필요로 하는 탈북 청소년들의 일탈행위를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 탈북 여고생은 “북한으로 돌아가라”는 휴대전화 메시지를 받는 등 친구들의 집단적인 언어폭력을 견디다 못해 담임교사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매번 “다 그런 것이니 참아라”라는 무성의한 답변만 듣다가 학교를 그만두기도 했다고 이영석 팀장은 최근 사례를 소개했다.

이영석 팀장은 “탈북 청소년과 남쪽 학생이 싸우면 교사가 남쪽 학생에게만 ’괜찮니’라고 물어볼 뿐 정작 탈북 청소년에게는 무관심하게 대하는 경우가 많다”며 “탈북 청소년들은 심리적으로 자기방어 본능이 강하다는 것을 교사들이 잘 이해하고 다독거려야 한다”고 당부했다.

반감과 비하, 불신을 견디지 못한 탈북 청소년들은 사회와 격리된 ’우리들만의 세상’에 빠지거나 ’폭주족’, ’일진회’를 만들어 남한 학생들과 패싸움을 벌이는 일이 잦다.

통일부에 따르면 대안학교가 아닌 일반 학교에 재학중인 탈북 청소년들의 중도 탈락률이 2006년 기준 초등학교는 3.5%, 중학교 12.9%, 고등학교 28.1%로 상급학교로 갈수록 급증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들의 ’낙오’엔 학업상의 어려움도 있겠지만, 남한에서 ’제2의 사춘기’를 맞으면서 정신.문화적 충격에 빠졌으나 주변의 돌봄을 받지 못한 채 벼랑 끝에 선 탈북 청소년들의 처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대안학교에 다니더라도 일부 무연고 탈북 청소년들은 낮에는 학교에서 친구들과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만 밤이면 PC방에서 게임에 빠져 살거나 친구 집에 모여 술을 마시면서 희망없이 살아가고 있다.

이들이 대학에 진학하더라도 자신이 탈북자라는 신분을 감춘 채, 나이 어린 선배가 자신에게 반말을 하거나 선배라는 이유로 복종을 강요하는 학교 문화, 수업 시간 잦은 발표와 조별 과제 등에 적응하지 못하고 끝내 졸업하지 못한 사례도 빈번하다.

지난 달 탈북자 대학생 논문발표회에서 한국외대 4학년 재학중인 오세혁씨가 탈북자 대학생들에 대한 면접조사 결과를 발표한 데 따르면, 탈북자 대학생들은 “여자 선배의 반말을 듣다 못해 말다툼을 했다”, “말투때문에 탈북자인 게 드러날 수도 있어 수업중에 발표를 하지 않는다”는 등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한 학생은 “아르바이트를 구할 때 ’북한에서 왔다’고 말하면 ’나중에 연락 드릴께요’ 하고는 다시는 연락이 안온다”고 밝히기도 했다.

남한 사회의 ’오만과 편견’에 시달리는 것은 탈북 청소년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탈북자 A씨는 입국 후 취업교육을 받고 중소기업에 입사한 뒤 각종 아이디어를 짜내며 열심히 일해 회사에 크게 기여한 공로로 팀장으로 승진했지만, 팀원들이 “탈북자를 상사로 모실 수 없다”며 한꺼번에 사표를 내는 바람에 결국 자신이 사표를 내야만 한 어처구니 없는 일을 당하고는 ‘이방인’임을 실감했다.

강도살인 미수죄로 10년간 복역한 탈북자가 출소후 일자리를 찾다 들른 식당에서 “어떻게 부모를 다 버리고 왔느냐”는 식당 주인의 말에 격분, 주인을 살해하고 시체를 버린 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일도 있다.

탈북자들이 많이 사는 지역의 주민들은 나쁜 일만 생기면 무조건 탈북자 탓으로 몰아가는 경우도 많다.

탈북자 정착지원 업무를 담당하는 대한적십자사 서울지사의 정유근씨는 “한 아파트에서 재활용 분리수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자 주민들이 ’탈북자가 그랬을 거야’라고 수군거리는 것을 듣고 상처받은 탈북자들의 호소를 들었다”고 말했다.

남한 사회 정착에 성공한 탈북자들은 “탈북자를 보는 ‘삐딱한’ 시선의 일차적인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탈북자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일하기 싫어하고 무능하고 무식하다고 색안경을 끼고 깔보는 일부 사람들의 배타적인 태도에도 문제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은 “북한에서의 굶주림과 통제, 특히 불법 체류자 신분의 탈북 과정에서 겪은 정신적 후유증이 크다는 점을 남한 사람들이 조금은 이해해주고 너그럽게 감싸주고 받아들인다면 상식있는 탈북자들은 정착에 더욱 힘을 낼 것”이라고 말한다.

이영석 팀장은 “탈북자들이 북한에서 노예노동을 강요당하던 근성때문에 열심히 일하지 않고 게으름 피우면서 잔머리만 굴린다고 생각하는 남한 사회의 편견과 오만이 탈북자들을 절망케 한다”며 탈북자에 대한 배려와 이해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우리 사회가 다문화 가정이니 뭐니 하면서 다양성을 외치는데, 실제론 내가 강자니까 도와주겠다는 의미의 다문화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면서 “진정으로 친구가 될 수 있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조성됐으면 좋겠다”고 포용성 함양의 필요성도 지적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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