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사회 10년] ④브로커, ‘필요악’인가

중국에 체류하는 탈북자의 남한 입국을 도와준 뒤 그 탈북자가 국가로부터 받는 정착지원금 등에서 수백만원의 ‘비용’을 떼가는 이른바 ‘탈북 브로커’들을 어떻게 봐야 하나.

탈북자의 국내 입국을 도와주는 측면에 초점을 맞추면 탈북자의 `인권’을 위해 필요한 존재이지만, 탈북자에게 탈북 비용 명목으로 거액의 돈을 요구함으로써 탈북자가 그 돈을 갚느라 초기 정착에 큰 어려움을 겪거나 심지어 성매매 등의 유혹에 빠지는 일이 많은 사실에 접하면 ‘착취’의 이미지가 커진다.

현실적으론, 이 두 가지 상반된 평가가 합쳐져 탈북 브로커에 대해 ‘필요악’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다.

그러나 탈북자들의 원활한 국내 정착을 위해선 이 탈북 브로커의 부작용 문제가 어떻게든 해결돼야 한다는 게 탈북자 지원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탈북자 신변보호를 담당하는 한 경찰관은 “탈북자들이 하나원을 출소하면 브로커들이 먼저 탈북자의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초기 정착지원금 300만원을 거의 전부 가져간다”고 설명했고 중랑노원적십자봉사관에서 탈북자 지원 업무를 하는 이현숙 대리는 “탈북자가 입국 후 브로커에게 탈북비용을 주고는 자신은 겨울에도 냉골에서 사는 모습을 봤다”고 말했다.

탈북 브로커들은 탈북자를 태국 등 제3국을 경유해 입국시킬 경우는 300∼500만원, 중국에서 직접 입국시킬 때는 1천만원 정도의 `비용’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갓 입국한 탈북자들로선 감당하기 어려운 액수다.

이들 브로커는 중국에서 탈북자들를 빼내기 전에 비용지급 각서를 받아 놓음으로써 ‘채권-채무’ 관계로 탈북자들을 압박하는 동시에 자신들은 법적 규제를 피해간다.

작년 강원도 춘천시 스포츠마사지센터에서 성매매를 하다 경찰에 적발된 탈북 여성 3명중 한명은 제3국을 경유하는 과정에서 브로커로부터 500여만원을 탈북자금으로 지원받았다가 이 돈이 선불금 명목의 빚으로 둔갑해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을 견디다 못해 몸을 파는 처지가 됐다.

탈북 브로커가 탈북자 인권을 위한다는 탈북지원 활동의 이면에서 악덕 사채업자의 행태까지 보인 경우다.

특히 탈북자 본인들이 손쉽게 돈을 버는 수단으로 탈북 브로커로 나서거나, 탈북시켜주겠다고 속여 돈을 가로채는 사례도 적지 않다.

한 경찰관은 “과거엔 종교단체 등이 탈북 브로커 사업에 많이 관여했지만 이제는 탈북자들이 나서고 있다”며 “어느 가족은 어머니는 모집책, 아버지는 중국에서 행동대원, 아들은 남한에서 수금책으로 각각 활동하기도 한다”고 증언했다.

탈북자 A씨는 “적지 않은 탈북자들이 하나원을 나온 후 취업이 쉽지 않자 브로커로 돌았고, 아예 하나원을 출소하자마자 곧바로 브로커로 뛰어들기도 한다”며 “탈북 브로커의 상당수는 탈북자”라고 전했다.

90년대 후반 입국한 탈북자 B(48)씨는 “가족을 탈북시키려고 수년간 여러 탈북자 브로커에게 돈을 주느라 수천만원을 날렸다”고 말했다.

정부는 탈북 브로커 문제가 심각해지자 초기 정착 지원금을 줄이고 특히 국방부는 귀환 국군포로에 대한 보수와 연금 등 정착지원금을 월정액으로 나눠주기로 하기도 하지만, 브로커의 부작용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탈북 비용’을 받아내는 과정에서 폭력을 사용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2003년 입국한 탈북 여성 C씨는 약속한 경비를 지불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매일 같이 폭언과 협박에 시달리다가 1천200만원을 주고서야 브로커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C씨는 “브로커들이 매일 같이 찾아와 돈을 안갚으면 유흥가에 팔아넘기겠다고 협박해 2개월간 친구집에 숨어지내기도 했지만 친구의 집까지 찾아오는 바람에 결국 주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고, D씨도 “탈북자 출신 브로커를 포함해 4∼5명의 건장한 남자가 찾아와 방에 가두고 ‘곱게 돈을 내놓고 얌전하게 살거냐, 아니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것이냐’고 협박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탈북 브로커나 인권단체쪽에서는 그나마 브로커의 역할이 있기 때문에 인권의 볼모지에 있는 탈북자들이 국내에 들어올 수 있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한 단체 관계자는 “정부가 탈북자의 입국 지원에 적극적이지 않기 때문에 브로커가 활동하게 되는 것”이라며 “정부가 브로커 문제를 이유로 정착금 지급을 축소한다거나 브로커를 근절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은 탈북자의 한국행을 조절, 통제하겠다는 발상”이라고 말했다.

북한인권시민연합 윤현 이사장은 “중국에 있는 탈북자를 받아들이는 데 정부가 더 적극적이었으면 좋겠다”며 “정부가 나서지 않으니 그 빈 공간에서 브로커가 폭리를 취하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선 탈북 브로커들이 중국에서 조선족이나 한족과 결혼해 비교적 안정되게 살고 있는 탈북자들에게까지 접근해 남한 정부가 주는 정착금이 줄어들기 전에 남한으로 가자고 유도하는 일마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2003년 입국한 여성탈북자 E(34)씨는 “동남아의 한 국가에서 안정된 직업을 갖고 있었는데 브로커들이 찾아와 정착금이 줄어들기 전에 빨리 남한에 가야 한다고 해서 서둘러 입국했다”고 털어놓았고 탈북자 F(40)씨는 “내가 아는 한 탈북자는 중국에서 조선족 등이 사는 집을 찾아다니며 탈북자를 물색하고 남한행을 설득해 돈을 벌고 있다고 자랑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한 지원단체 관계자는 “요즘 들어오는 탈북자가운데 다수가 `브로커에게 속아서 왔다’는 이야기를 한다”며 “브로커들이 ‘남쪽에 가면 국가에서 정착금도 많이 주고 국가가 주는 돈으로 충분히 살 수 있다’고 남한행을 권유했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앞서의 탈북자 신변보호 담당 경찰관은 “내가 돌봐온 탈북자 대부분이 중국에서 돈벌이를 하고 있을 때 접근한 브로커로부터 `남한에 가면 돈도 받고 잘 살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한국행을 결심했다고 말한다”며 “탈북자들이 적극적인 의지를 갖고 들어오기 보다는 브로커의 달콤한 권유를 받아 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탈북 브로커에서 파생한 신종 브로커도 등장해 기승을 부리고 있다. 국내에 이미 정착한 탈북자를 미국이나 캐나다, 영국 등 유럽국가로 보내 난민신청을 하게 하고 그 비용 명목으로 거액을 받는 사람들이다.

작년 7월 서울경찰청 외사과는 탈북자에게 서류를 위조해 미국 비자를 발급받도록 해주겠다던 브로커 최모씨 등 3명을 구속했다.

국내 정착 후 미국으로 건너가 `망명’을 시도하다가 돌아온 탈북자 J씨는 미국에 가는 것을 도와주는 브로커 비용이 “500만원부터”라며 “영국이나 캐나다에 간 친구들도 있는데, 일가족 3명의 브로커 비용으로 보통 500만원이 나간다”고 설명하고 “나가게 되면 집이나 국적 모두 없애버리고 가는 만큼 끝내 현지에서 실패헤 돌아오면 아무 것도 남지 않은 허무한 상태가 된다”고 지적했다.

탈북자 김성희(가명.41.여)씨는 “유럽행을 중개하는 브로커들은 현지 국가의 복지 혜택과 생활상을 부풀려 말하기 때문에 정작 현지에 갔다가도 언어장벽에 인간관계도 원활치 않아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며 “사실 안정적인 탈북루트 유지에 실패한 브로커가 해외로 눈을 돌리는 것인데, 현지 사정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일종의 사기”라고 말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