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사회 10년] ③’덫’에 걸린 탈북 여성들

“나쁜 줄은 알지만 제게는 마지막 선택이었습니다.”

지난해 1월 입국한 지 5개월만에 강원도 춘천시 스포츠마사지 업소에서 성매매를 하다 7월 다른 탈북 여성 2명과 함께 경찰에 적발된 탈북 여성 A(27)씨.

당시 그는 “하나원 교육 수료 후 곧바로 브로커에게 돈을 줘야 했으나 줄 돈이 없었고, 게다가 북에 둔 가족이 결핵에 걸렸다는 연락이 와서 당장 돈을 벌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담당 경찰관은 “이들의 한달 수입은 200만-300만원이어서 식당 등에서 일하는 것보다 훨씬 많았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출발을 꿈꾸며 남한에 온 일부 탈북 여성들이 손쉬운 돈벌이를 위해 유흥업소로 빠져들고, 성매매에 나서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것은 이제 ‘공공연한 비밀’도 아니다.

입국 탈북자들의 성비를 보면, 여성이 2002년 처음으로 남성보다 많아진 이래 매년 여성 비율이 급증해 지난 6월 현재 탈북자 1만4천명 중 65%(9천100여명)를 차지한다.

북방문제연구소 김태석 박사는 “제3국에 머무는 탈북자 5만여명 중 70%인 3만5천여명이 여성이고, 이중 절반가량은 인신매매 등 성폭력에 노출됐던 것으로 추정된다”며 “이들은 새 인생을 시작하려고 남한에 들어오지만 브로커 비용 문제와 구직난, 문화적 충격에 직면하면서 점점 좌절감을 느끼게 되고, 상대적으로 벌이가 좋은 유흥업소로 눈을 돌리게 된다”고 지적했다.

탈북 여성들 자신이 한꺼번에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이나 편한 일자리를 선호하는 면도 있고, 회사측에서 탈북자의 고용을 꺼리는 면도 있다.

2002년 입국한 K(32)씨는 “하나원 퇴소후 식당 수십 군데를 돌았지만 받아주는 곳은 없는데, 정착 지원금은 통장에 들어오자마자 브로커 비용으로 떼이는 바람에 당장 내일 먹을 쌀을 싸기 위해 노래방 도우미로 나가야 했다”고 말했다.

국책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하나원이나 직업훈련기관에서 미용기술 등을 가르쳐도 탈북 여성들이 별로 관심을 안가진다고 한다”며 “북한의 ‘시간 때우기’식 작업 행태에 익숙한 사람들이 남한의 강도 높은 노동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손쉬운 돈벌이 수단을 찾다가 유흥업에 빠지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10여년간 탈북 여성들의 정착을 도운 한 관계자는 “많은 탈북 여성이 중국에서 인신매매를 당한 일이 있는 데다, 100만원 받으면서 힘들게 직장 일을 하느니 200만원 이상 벌 수 있는 유흥업소가 훨씬 낫다는 인식을 갖고 있어 35세 미만의 젊은 여성들이 쉽게 유흥업소로 빠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20대 후반의 한 탈북 여성은 3년간 한번도 취업하지 않은 채 유흥업소를 전전하며 성매매로 돈을 벌었고, 2006년에 온 20대 후반의 한 탈북 여성은 술집을 돌아다니며 성매매로 숙식을 해결하고 용돈을 마련한 것으로 안다”며 “아무리 타일러도 소용이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탈북자인 강수진 탈북여성인권연대 대표는 “탈북 여성들이 식당에서 저임금에 비정규직으로 일하려 해도 업주가 선입견과 언어 차이를 이유로 고용을 꺼리고, 고용된다고 해도 손님과 의사소통이 어려워 한두달만에 그만두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탈북 여성들의 일탈에 대한 정확한 현황은 파악되지 않고 있다.

한 연구기관 관계자는 “유흥업소에서는 조선족인지 탈북자인지 구분하기 힘든 데다 탈북자 스스로도 조선족이라고 얘기하고 다녀서 추정만 할 뿐 실태 파악이 안 된다”고 말했다.

이러한 일탈은 결국 결혼 후에도 계속돼 잦은 가출과 가정파탄을 가져오고 심지어 살인사건의 피해자가 되는 후유증을 낳기도 한다.

한 경찰관은 “한 탈북여성은 남한 남자와 결혼해 아이까지 낳았으나 시댁에 부대끼고 생활도 넉넉치 않자 ‘미련두지 말라’는 편지 한장 남기고 가출해 버렸다”고 전했다.

이모씨는 2004년 입국 후 여자 아이스하키 국가대표로 선발됐던 유망주였으나 결혼 후 두달만에 가출을 시도하는 등 순탄치 않은 결혼생활 끝에 작년 남편의 손에 살해됐다. 이씨의 남편은 부인이 술집에 일하러 다니면서 가정에 충실하지 않는다며 다투다 살해했다.

특히 탈북 여성들이 급증하면서 중국에서 동거하다 국내로 함께 들어온 조선족이나 한족 남자와의 갈등은 서로 가해자이자 피해자가 돼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하는 상황이다.

국내로 들어오는 탈북 여성 가운데 상당수가 중국에서 인신매매 등을 통해 조선족 남자 등과 5~10년 정도 함께 지냈으나, 남한 입국 후에는 중국에서의 인신매매와 동거남에게 당했던 고통을 떠올리며 재결합을 외면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며 이는 가정폭력과 살인까지 부른다.

신모(23)씨는 지난해 11월 인천 자택에서 불륜을 의심하며 추궁하던 조선족 남편(34)과 말다툼끝에 남편이 휘두른 흉기에 숨졌다.

지난해 2월에는 조선족 남편인 황모(37)씨가 탈북자인 부인(34)이 바람을 피운다는 이유로 살해한 뒤 암매장하고 범행 현장을 목격한 아들까지 살해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던졌다.

탈북자 지원기관의 한 관계자는 “탈북 여성들은 국내 정착 후 조선족 동거남과 혼인신고를 하지 않으려 하고, 일부 조선족은 동거녀의 ‘과거’를 안다는 이유로 협박해 정착금과 수입을 가로채는 사례도 빈번하다”고 말했다.

그는 “반대로 일부 탈북여성은 혼인신고를 미끼로 조선족 남자가 한국내에서 번 돈을 가로채기도 한다”며 “한 탈북여성은 혼인을 미끼로 조선족이 4년간 농공단지에서 일해 모은 3천만원을 받은 뒤 잠적해버렸다”고 전했다.

조선족 동거남이 방문취업 복수비자로 입국해 체류하며 취업할 수 있지만, 국내에서 혼인신고를 통해 국적을 취득하지 못하면 결국 중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탈북자를 돕는 한 경찰관은 “대부분 탈북여성은 중국에서 불법 신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인신매매를 당하고 조선족 남자로부터 온갖 천대를 받으면서 살았지만 일단 한국에 들어온 뒤에는 같이 살 생각이 없어진다”며 “입국 후 뒤바뀐 입장에서 조선족 남자에 대한 복수 심리가 강하게 작동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하지만 조선족 남성이 어렵게 탈북여성과 결혼할 경우 상황은 또 다시 반전된다”며 “결혼으로 한국 국적을 취득한 조선족 남성은 그때부터 가정폭력을 일삼고 아내를 부려먹는 상황이 재연돼 탈북여성들은 더욱 그들을 기피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2004년 입국한 20대 후반의 한 탈북여성은 조선족 남편과 아들을 서울로 데려와 새 보금자리를 꾸리고 남편을 대신해 공장에서 일하며 가장 역할을 했지만 의처증 증세를 보인 남편의 잦은 폭행에 시달리다 결국 가출해 여성단체가 후원하는 쉼터에서 지내야 했다.

탈북 여성들은 탈북자에다 여성이라는 처지 때문에 탈북부터 국내 정착까지 과정에서 인신매매, 성매매, 가정폭력 등 남성 탈북자들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들의 피해자이자 당사자가 되고 있지만, 이들의 고민을 상담하고 자활을 도울 수 있는 대안은 현재 마련돼 있지 않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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