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6.15 = 김정일은 핵무기 + 北주민은 전쟁준비

▲ 평양 백화원 영빈관 오찬에서 마주앉은 남북 정상

내가 30년 넘게 북에서 살면서 온나라가 크게 떠들썩 했던 일로 두 가지를 기억한다.

하나는 1989년 세계청년학생 축전에 남한 대학생 임수경이 왔던 일이고, 두번째는 2000년 6월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에 왔을 때였다.

북한은 ‘5년’ ’10년’ 등을 ‘꺾이는 해’라며 크게 경축하는 관례가 있다. 내일은 6.15공동선언 5주년이 되는 날이다. 아마도 지금쯤 북한에서는 대대적인 축하행사를 준비하며 주민교양에 열을 올리고 있을 것이다.

더구나 북한에서는 김정일의 가장 큰 업적으로 ‘김대중 대통령의 평양 방문’을 꼽고 있기 때문에 6.15 행사에 대한 선전교양이 어느 때보다 고조되고 있을 것이다.

“김대중이 온다니 통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5년 전, 남한사람들도 마찬가지였겠지만 특히 북한주민들은 몹시 흥분되고 들떠 있었다. 2000년 3월 어느 날, 갑자기 TV와 라디오에서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장군님의 초청에 의하여 남조선 대통령이 공화국을 방문하게 되었다”는 특별 보도가 나왔다.

이 소리를 듣고 모든 사람들의 입에서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전쟁준비와 생활고에 찌들대로 찌든 주민들은 “이제 통일이 눈앞에 왔는가 보다”며 흥분했다.

주민들은 “남조선과 우리가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서로 합쳐지면 강국이 될 수 있겠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올랐고, 간부들도 “남조선의 경제지원을 받아 강성대국을 건설하는 것이 장군님의 의도”라고 의기양양 했다.

그러나 5월이 되자 분위기가 조금씪 바뀌어 갔다. 신문, 방송들은 ‘외세를 몰아내고 민족의 자주, 평화통일을 이룩하자’고강조했고, 당비서들은 내부 강연제강을 한묶음씩 들고 와서 ‘김대중의 우리나라 방문의 배경’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시작했다.

“햇볕정책은 공화국을 말려 죽이려는 의도”

강연 내용은 “김대중이가 장군님의 인덕과 영도술에 감동되어 찾아온다” “미국의 식민지인 남조선과 통일을 지나치게 기대하지 말고 평화적인 회담 뒤에 숨은 적들의 책동을 꿰들어 보고 계급의 무기를 더욱 튼튼히 틀어쥐어야 한다”는 것 등이었다.

당비서들은 ‘남조선 집권자들이 떠드는 햇볕정책의 반동성’에 대해 강연했다. “햇볕정책은 독일식으로 공화국을 흡수하려는 적들의 간계”라는 둥, “햇볕정책은 공화국을 말려 죽이기 위한 위장술”이라는 둥 목청을 돋구었다.

5월이 넘어서부터 주민들의 흥분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김대중이 오면 통일이 되겠지”라며 수다떠는 사람들도 줄어갔다.

당시 호기심 많던 필자는 매일 남한의 라디오 방송을 들었다. KBS라디오 방송을 듣던 나는 ‘통일열차’ ‘시사초점’ 같은 프로그램에서 “남북관계에서 자유민주주의 원칙을 고수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말을 듣게 되었다. 나도 ‘과연 제도가 다른데 쉽게 통일이 되겠는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날은 KBS 방송에서 “우리는 햇볕정책을 유지해 가야 한다. 우리가 꾸준히 지원하면 언젠가는 북한이 개혁개방으로 유도될 것이다”는 김대중 대통령의 연설을 듣고 ‘김대중이가 우리 공화국을 흡수하려 한다’고 한 당 간부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가지 의아스러웠던 점은 본래 국가의 외교라는 것이 비밀리에 하는 것인데, 김대중은 세상이 다 들으라고 속마음을 공개해 ‘너를 개방시키려고 하니 준비하라’는 듯이 북한에 미리 알려주는 것이었다. 나는 남한에 와서야 김정일의 ‘비밀외교’와 김대중의 ‘공개외교’의 차이를 깨닫게 되었다.

수렁에 빠진 6.15공동선언

어쨌거나 6.15선언 직후 북한주민들은 김정일에 대한 믿음이 커졌다. 오래지 않아 남과 북의 왕래가 시작되면 지겨운 전쟁준비와 생활고에서 해방될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대중이 돌아가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다시 미국에 대한 적개심을 요구하는 정치강연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전에는 1년에 한번이나 될까 말까 했던 비(非)사회주의 그루빠의 검열이 수시로 진행되었다.

중국에 가서 자본주의 바람에 물들어 왔다며 붙잡혀 가는 사람들도 늘어갔다. 6월을 달구었던 통일 열기가 식어갈 때 쯤 북한주민들은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도 나는 그때 북한땅을 떠나온 것을 천 백번 잘했다고 생각한다. 만약 내가 김정일이 진심으로 인민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믿었다면 지금도 그 땅에서 일일천추(一日千秋)로 통일을 바라며 근근히 살아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김대중이 평양을 왔다가도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다는 내 생각은 옳았다.

결국 6.15는 ‘누이 좋고(죽어가는 김정일이 살려주고), 매부 좋은(DJ는 노벨상 받고)’ 두 김씨의 잔치판으로 끝났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김정일은 핵무기를 손에 쥐게 되었고, 북한 주민들은 전쟁준비와 물가폭등으로 사는 것이 더욱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6.15는 7천만 민족을 속인 두 김씨의 잔치판

남한 사람들은 부지런히 햇볕을 쪼이기만 하면 북한을 개혁과 개방으로 유도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남한사람들은 김정일을 몰라도 한참 모른다.

나는 남한에서 ‘6.15선언’에 대해 왜 크게 떠드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6.15선언을 남북관계의 ‘큰 진전’이라고 떠드는데 도대체 어떤 ‘진전’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나는 6.15 정상회담 이후 살기 좋아진 ‘북한사람’을 본 적이 없다. 남한에 와서도 6.15 이후 더 살기 좋아졌다는 남한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렇다면 지금 들려오는 평양의 호들갑스런 소리는 누구를 위한 ‘축배’인가?

김정운(가명, 2001년 탈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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