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수기] 두만강가에 내 인생을 묻었다③

지켜주는 나라도 없고 죽어도 돌아볼 이 없는 내가 거리를 헤매다 폭풍이 울부짖는 바닷가에서 세찬 파도를 바라보며 생각했던 것은 저 속엔 과연 내가 있을 자리가 있을까, 이렇게 살려고 죽음의 고비를 넘기며 예(중국)까지 오진 않았다는 것이었다.

두만강가에 묻어버린 지나온 나의 삶, 비록 아프고 힘든 추억들도 많았지만 그래도 그것들은 언젠가는 다시 꺼내어 내 마음속에 품어야 할 소중한 것들이었다.

철없던 시절 내가 부모님의 품에서 아무 걱정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행복한 날들이 다시 오게 되면 제일 먼저 묻어둔 나의 엣 추억들을 조금씩 꺼내 보려 했지만 과연 그런 날이 올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했었다.

또다시 1년 반이라는 피 말리는 기다림, 그리고 마침내 이(한국) 땅에 왔다. 다시 한번 목숨을 걸고 중국에서 삼국으로의 탈출이라는 극적인 인생의 포물선을 새로이 그리며 대한민국으로 왔고 여기서 나는 지금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다. 고통스러웠던 그 모든 추억을 뒤로 한 채.

가까이 있어도 멀었던 이 곳, 분명히 하나인 우리 땅이지만 60년의 분단이 안겨준 이질감으로 힘들고 어려운 순간도 많다. 그래도 나는 이 땅에서 내 인생에 가장 즐겁고 행복한 시절을 보낸다.

대한민국에 온 내게 처음으로 새 생활에 대한 희망과 소중한 꿈을 품게 해주었던 하나원과 살뜰했던 선생님들은 오랫동안 슬픔과 고통의 미궁 속에서 헤매던 나의 넋을 안정시켜 주었다.

하나원을 수료하고 나온 내게 아담하고 자그마한, 내 인생에 처음으로 내 이름 석자로 차례진 임대주택은 새로운 내 삶의 소중한 보금자리로 자리 잡게 되었다.

가끔 힘들 때마다 나는 그 날의 두만강가를 떠올린다. 암흑과 광명의 가운데 서서 뒤돌아보며 버릴 수밖에 없었던 내 삶의 슬픈 추억들과 오늘을 위해 맞바꾸려 했던 귀중한 내 목숨, 그리고 목숨을 건 대가로 얻어진 오늘의 소중한 자유와 행복을 생각해 본다.

그러면서 ‘요만한 게 무슨 고생인데, 이 대한민국에 오려고 목숨도 걸었었는데 이건 아무것도 아니지, 오늘의 내 삶이 얼마나 행복한데…’라고 나 스스로에게 말한다. 그렇게 비우고 또 비워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새 삶을 만들어 가며 마음속에 아름답고 즐거운 추억거리를 하나씩 하나씩 채워간다.

처음 먹어보는 생문어회를 보고 질겁해 비명을 질러 주변 분들이 깜짝 놀라던 일, 지하철을 잘못 타 30분이면 갈 곳을 2시간이나 돌고 돌던 일, 집을 배정받은 첫 날 밖에 나갔다가 꼭 같이 생긴 아파트들을 보고 집을 찾을 수 없어 몇 시간을 헤맨 끝에 간신히 찾은 내 집 현관 앞에서 혼자 배를 잡고 웃던 일..

몸도 약한 내가 한국에서의 어려운 생활을 이겨낼 수 있을지 스스로 걱정일 때 내게도 면접이라는 행운이 차려졌고 부족한 나와 함께 일하자며 선뜻 손 내밀어주던 사람들, 아무 것도 모르는 내게 차근차근 가르쳐 주며 오늘의 내가 있게 해준 직장의 동료들, 익숙되지 않은 한국 생활의 부적응으로 몸살을 앓아누운 내게 다정히 대해주던 고마운 사람들…

그리고 지금은 두만강 가에서 소중하면서도 버릴 수밖에 없었던 그 모든 것들을 파내어 내 마음속 깊은 곳에 담아 소중히 담아 안고 남북이 하나 될 통일의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살고 있다. 그 날이 오면 내 고향의 그리웠던 이들에게 나의 마음속에 가득 채워진 대한민국에서의 아름다운 삶의 갈피들을 모두 퍼내 보여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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