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수기] 두만강가에 나의 인생을 묻었다①

끊임없이 이어지며 대한민국으로 찾아오는 탈북자 수는 올해로 2만을 채워가고 있다. 고향과 부모, 형제를 등지고 죽음의 고비를 넘어 이곳에 이르기까지 2만 여명의 탈북자들이 걸어온 인생행로는 저마다 각이하다.

누구는 배고픔을 참을 수 없어 누구는 감옥행을 가기 싫어 또 누구는 자유를 찾아서 각 자 서로 다른 이유로 이 길을 택했지만 우리들 모두에게는 꼭 같은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즐겁게 웃고 떠드는 순간에도, 행복으로 가슴 벅차는 순간에도 마음 한구석에 깊숙이 자리 잡힌 채 결코 지워지지 않고 끊임없이 자아를 괴롭히는, 사랑하는 고향땅에 대한 그리움과 추억들이다.

탈북자 누구나 그렇듯 나 또한 떠나고 싶어 떠난 땅이 아니며 넘고 싶어 넘은 두만강이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있으려 해도  더는 견딜 수 없어 그 땅을 떠나올 수밖에 없었던 나이고 우리들이다.

암담한 마음으로 삭막한 두만강 가에 서서 뒤편에 펼쳐진, 칠 흙 같은 어둠속에 묻혀 불빛 한 점 보이지 않는 내 고향을 뒤 돌아볼 때 내 마음속에도 음산한 어둠만 가득 찼고 눈앞에 펼쳐진 두만강 건너 중국 땅에서는 온갖 미련 다 버리고 어서 오라 수천 수 만개의 아름다운 불빛들이 손짓하며 명멸하고 있었다.

그 날 나는 뒤에 남겨지는 그 땅에 지나온 내 인생의 모든 것을 묻어 버렸다. 순진하고 행복하기만 했던 어린 시절과 처녀 시절, 불행과 슬픈 상처만을 가슴속에 남겼던 결혼생활, 또 다른 고통의 연속이었던 10년간의 독신생활, 결핵병원의 사체실 옆 지옥 같은 방에서 목구멍을 넘어 수돗물처럼 쏟아져 플라스틱용기에 가득 차던 피를 볼 때마다 전율하며 삶과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던 그 순간들…

고통에 몸부림치며 차라리 그냥 죽게 내버려 달라고 눈물 흘리던 내 손을 잡고 죽으면 안 된다고, 용기를 내라고 힘을 주던 고마운 의사선생님과 운신도 못하던 내 몸을 엄마처럼 닦아주고 지켜주던 21살의 간호사 처녀들, 죽음의 고비를 넘어 일어섰을 때 그럴 줄 알았다고, 의지가 강한 사람은 쉽게 죽지 않는다며 격려해주던 고마운 분들…

함께 기뻐하고 함께 아파하며 고통과 슬픔의 바다를 헤쳐온 내 어머니와 형제들, 고마운 분들 그 모든 것을 다 잊고 싶었다. 아니 잊으려 하고 지우려 해도 뜻대로만 되지 않는 그 모든 것들을 두만강 가에 선 그 순간에만은 지워버렸었다.

달빛이 어린 두만강 물에 섞여 엄마에게 울부짖던 내 말소리가 들린다. ‘혼자서 죽도록 고생했어도 견뎌 냈는데 내 엄마, 내 형제한테 와서 이렇게 병에 걸렸어. 이럴 줄 알았으면 집에 오지 말것을…’ 한 달간의 줄 기침 끝에 결핵이라는 진단을 받고 통곡하며 뱉는 내 말에 억이 막힌 엄마는 미처 말도 못했다.

홀몸으로 온기 한점 없는 한산한 숙소에서 추위에 온 몸을 떨다가 얼음같은 몸을 이끌고 직장으로 출근하느라 정신없이 살던 그 때 이미 병이 온 것을, 기댈 곳이 없어 아파도 쓰러지지 못했던 육체가 엄마랑 혈육에게 왔으니 맥이 놓여 그리된 것을 엄마 탓, 형제 탓 하다니… 생각하면 내 병 치료 때문에 고생하던 엄마와 동생, 조카들 생각에 미안하고 안쓰럽다.

이가 다 빠져 간신히 옥수수밥 잡수시던 늙으신 어머니와 좋아지지 않는 세간 살이 하며  병 든 누이 돌보느라 세대주 대접 한번 제대로 못 받아 보고 부대끼던 동생, 옥수수밥 앞에 놓고 고모 앞에 놓인 이밥 그릇만 뚫어져라 건네다 보던 어린 두 조카들, 가냘픈 몸매에 병든 시누이 시중까지 들라 웃음 한번 제대로 찾아보기 힘들던 올케의 모습…

숟가락에 담아 입에 떠 넣는 것이 밥 같지가 않아 돌을 씹는 것 같고 목구멍으로 넘어 가는 음식은 깔깔한 모래알 같아 끼니마다 수저를 들지 못하는 내 모습이 민망해 올케는 어린 조카들을 윽박질러 밖으로 내어쫒기도 했었다.

병 치료는 끝났으나 식구들에게 짐 되는 것이 미안해 혼자 밥벌이라도 해보려고 애쓰다 재발된 병세로 죽을 고비를 넘기고 몸이 완쾌되기 시작될 무렵, 나 때문에 지칠 대로 지친 어머니는 큰 언니의 집으로 떠나갔고 출근하는 동생과 아직 몸이 추서지 못한 내게 어린 조카들을 맡겨두고 본가에 다녀온다며 떠난 올케는 한 달이 되어 오도록 소식조차 없고, 속이 타 술 한잔 마시며 ‘두 번이나 살려줬으니 인젠 누이 혼자 알아서 살아가라’고 사정하듯 말하던 동생의 목소리..(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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