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수기]두만강가에 나의 인생을 묻었다②

병 치료는 끝났으나 식구들에게 짐 되는 것이 미안해 혼자 밥벌이라도 해보려고 애쓰다 재발된 병세로 죽을 고비를 넘기고 몸이 완쾌되기 시작될 무렵, 나 때문에 지칠 대로 지친 어머니는 큰 언니의 집으로 떠나갔고 출근하는 동생과 아직 몸이 추서지 못한 내게 어린 조카들을 맡겨두고 본가에 다녀온다며 떠난 올케는 한 달이 되어 오도록 소식조차 없고, 속이 타 술 한잔 마시며 ‘두 번이나 살려줬으니 인젠 누이 혼자 알아서 살아가라’고 사정하듯 말하던 동생의 목소리..

내가 힘든 만큼 그들도 힘들었으리라. 내가 아픈 만큼 그들도 아팠으리라. 그래도 병든 나는 그들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을 어찌하랴. 내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지, 그들의 곁을 떠나주는 것이었다.

그 몸으로 괜찮겠냐고 걱정하는 동생에게 하직 인사 나누고 길을 떠났으나 갈 곳 없어 이 곳 저 곳 헤맨 끝에 마침내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두만강 가에 섰을 때의 내 모습은 틀림없이 허울만 남은 ‘산송장’의 모습이었으리라.

 그 곳에서 소중한 것들을 모두 버렸었다. 버리면 안 될 것을 알면서도, 그대로 안고 가면 무거운 짐이 되어 두만강으로 들어서는 나의 두 발목을 잡을까 두려워 그 순간만은 버렸다.

‘내게는 아무도 없어. 부모도 형제도 친척, 친우도 없어. 세상천지 아무도 없는 나야. 그래, 나는 기댈 곳도 의지할 곳도 아무것도 없어서, 고아여서, 홀몸이어서 가는 거야…’ 두만강의 저편에서 이편으로 넘어서던, 내 인생을 완전히 바꾼 그 2분간 나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되뇌었던 것은 오직 이 말 뿐이었다.

함께 손잡고 두만강 물에 들어선 19살내기 연이가 무섭다고 훌쩍인다. 무섭다니, 뭐가 무서운데, 다 버리고 가는 이가 무서울 것이 뭐가 있는데…

“너 이만한 것도 생각하지 못하고 왔어? 울지 마.” 독이 밴 나의 조용한 목소리에 연이가 울음을 그쳤다. 그랬다. 아무 미련도 두려움도 없었다.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그 순간만큼은 소중한 내 목숨도 생각지 않았다. 

그렇게 넘어왔다. 내 고향의 끝인 두만강을… 다 버리고 텅 빈 가슴엔 ‘죽지 않고 살아야 한다’는 한마디만 달랑 품은 채…꽉 꽉 채워진 얼음에 간신히 남아 있는 그 한마디가 강가에 선 내게는 인생의 목표였다.

한번 묻어버린 소중한 추억을 다시 꺼낼 기회는 북송의 위험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던 중국 땅에서는 단 한 번도 오지 않았다. 열심히 일하고 싶어도 일할 곳 없고 어딜 가나 탈북자에게 보내지는 불신과 위험의 눈총에 견디기 어려웠던 나날들…

더러운 수욕을 채우려다 말을 듣지 않으면 고발하겠다고 위협하던 사람들을 피하며 조선족이라 속이고 간신히 취직한 회사생활, 열심히 일해서 사장할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한 내가 아니꼬워 북한여자라고 저희들끼리 수군대며 공안에 고발하라 추겨대던 조선족들, 그래도  나는 어찌 할 수 없어 그냥 혼자 화장실에서 얼굴이 퉁퉁 붓게 울었다.

갈 곳이 없는 것을 어찌하랴. 내가 이제 어디로 더 갈 것인지, 더는 피하고 싶지 않고 도망치고 싶지도 않았다. 이 구차한 목숨 부질없이 유지하려 발버둥치지 말고 그냥 이 곳에서 끝을 내고 말자. 그러나 하늘이 보기에도 나의 운명이 너무 가혹해 보였는지 생각지도 않게 목사분이 오셔서 사람 잡이에 미친 그들의 마음을 진정시켜 주었다. 영문 모르는 목사님의 두 손을 꼭 잡고 “와주셔서 감사하다”고 끊임없이 속삭이는 내 두볼로는 하염없는 눈물만 흘렀다.

그것이 중국에서 나의 생활이었다. 절망 끝에 한국으로 갈 수 있다는 친구의 소개를 듣고 1박 2일을 기차에 몸을 싣고 천방지축 찾아갔으나 그 곳서 나를 기다린 것은 또 다른 북송의 위험과 끝이 보이지 않는 기다림이었다.

살점이라도 떼줄 듯이 살뜰하던 사람이 자신의 수욕을 채울 수 없게 되자 공안에 고발하겠다고 위협하던 순간에 참고 참았던 분노와 원한이 터져 그 자리를 뛰쳐 나왔으나 갈 곳은 없었다.

지켜주는 나라도 없고 죽어도 돌아볼 이 없는 내가 거리를 헤매다 폭풍이 울부짖는 바닷가에서 세찬 파도를 바라보며 생각했던 것은 저 속엔 과연 내가 있을 자리가 있을까, 이렇게 살려고 죽음의 고비를 넘기며 예까지 오진 않았다는 것이었다.

두만강가에 묻어버린 지나온 나의 삶, 비록 아프고 힘든 추억들도 많았지만 그래도 그것들은 언젠가는 다시 꺼내어 내 마음속에 품어야 할 소중한 것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