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기자 스토리]식량난 시기…즉결처형 공포에 떨었다

▲ 2005년 회령에서 일어난 공개처형 장면

대량아사로 수백만 명의 북한주민들이 굶어 죽던 90년대 중반, 김정일은 합법적인 재판절차 없이 현장에서 즉결심판으로 범죄자들을 처형토록 했다.

필자는 1996년 3월 말 양강도 혜산역에서 벌어진 공포의 즉결심판 현장을 목격했다.

당시 구리장사로 혜산에 와있던 나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혜산-평양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만성적인 전기 부족으로 며칠에 한번씩 운행하던 열차는 장사 길에 오른 사람들로 발붙일 틈조차 없었다

언제 떠날지 모를 객차 안에서 선 채로 잠을 청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사람 살려” 하는 여인의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비명소리는 점점 “아저씨 한번만 봐주세요”라는 애원으로 변했고 여인은 주변사람들에게 미친듯이 도움을 요청했다. 잠시후 갑자기 ‘툭~탁’하는 소리와 함께 비명소리의 여인 옆에서 격투가 벌어졌다.

3분 정도 지난 후 “비켜라, 길을 열라”는 소리와 함께 도움을 요청하던 여인과 함께 2명의 남자가 강도로 보이는 두 명의 다른 괴한을 각각 한 명씩 잡고 객차에서 내렸다.

강도 용의자를 잡은 사람들은 키180Cm정도의 거구에 솜 바지, 솜 동복을 착용하고 스키모자를 쓴 젊은 청년이었다. 놀라운 것은 스키모자를 내려쓰고 두 눈만 노출한 두 명의 남자의 손에는 권총이 쥐어져 있었다.

“무릎 끓어” 하는 소리에 두 명의 괴한은 “용서해주십시오. 살려주십시오” 하고 매달렸다. 열차 주위에는 삽시에 수백 명의 놀란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권총을 쥔 사내 한 명이 도움을 청하던 여인에게 사유를 물었다. 사연인즉 양강도 혜산에 장사 온 이 여인은 시장에서 당시 북한 돈 1만 원(한화 5만원) 상당의 중국상품(의류)을 구입하고 돌아가던 길이었다.

그러나 시장에서부터 이 여인을 주시하던 두 남자가 붐비는 객차의 혼잡을 이용해 접근한 것이다. 그들이 노린 것은 그 여인의 짐이었다.

이들은 면도칼로 여인의 배낭을 째어 물건을 꺼내려 했고, 기미를 눈치챈 여인이 소리를 지른 것이다. 여인이 배낭을 포기하지 않자, 괴한들은 면도칼로 위협했다.

여인의 설명이 끝나자 총을 쥔 한 사내가 두 괴한에게 사실 여부를 확인했다. 괴한들은 사실을 인정했고, 용서를 빌었다.

김정일의 특별지시…즉결처형으로 북 전역이 공포

권총을 든 두 남자는 모여선 주민들에게 자신들은 김정일의 방침을 받고 중앙에서 파견됐다고 소개했다. 이어 주민들을 향해 “여러분, 이 자들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라고 물었다. 놀랍게도 주민들은 “죽여야 한다”며 앵무새처럼 외쳤다.

권총을 든 남자들은 김정일의 ‘무질서한 사회질서를 바로잡을 데 대한 지시’를 받고 내려온 특별조(그루빠=그룹)였다.

특별조는 괴한들의 나이와 이름, 거주지를 확인했다. 이어 무릎을 끓은 괴한의 이마에 권총을 대고 “사회질서를 혼란 시키고, 부녀자의 생명을 위협하고 강도행위를 한 너를 인민의 이름으로 처단한다”고 말했다.

‘땅’ 하는 총소리와 함께 무릎 끓고 앉아 있던 괴한은 열차 레일로 튕겨 엎어졌고, 바닥은 피가 낭자했다. 옆의 동료가 즉사하자, 다른 괴한은 얼이 나갔다.

총소리가 울리자 곧 손전등을 번뜩이며, 역 안전원과 경무원(남한 헌병에 해당), 보위소대(남한 기무부대에 해당) 소속 군인들이 몰려왔다. 특별조의 두 사내는 몰려든 안전원과 군인들에게 자신의 신분증을 보여주고 유유히 사라졌다.

안전원과 군인들은 특별조에게 아무 소리도 못하고 여인과 살아남은 괴한을 넘겨받고 현장을 정리했다. 모든 광경을 현장에서 목격한 나는 소름이 끼쳤다.

적법한 조사나 재판도 없이 현장에서 즉결 처형하는 이런 사건은 오직 북한밖에 없을 것이다. 90년대 중반 식량난으로 전국이 혼란에 빠지자 김정일은 즉결처형 등 극도의 공포정치로 독재정권을 지켰다. 심지어 각 도(道)에 ‘올해 몇 명을 처형하라’는 할당량까지 내려보낼 정도였다.

이 때문에 옥수수 한 자루를 훔치다 즉결처형 되는 일도 빈번했다. 평양에서는 서관히 농업담당 비서를 ‘미제 간첩’으로 몰아 공개처형했다. 물론 김정일이 식량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서관히에게 덮어씌운 것이었다.

지금은 10년 전보다는 좀 나아졌지만 외부세계의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북한의 어디에선가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