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기자스토리]돼지우리에서 숨진 상등병 아시나요?

▲도시 주택에서 집 안에 돼지를 키우는 모습 ⓒ아사히TV

“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듯이 군대는 인민을 떠나 살 수 없다.”

북한 주민들이 귀에 박히도록 들어온 이 말은 김일성이 항일 빨치산 활동을 거치면서 체득한 교훈을 인민군대에 강조한 말이다. 그만큼 군대가 주민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아야 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북한은 올해 신년 공동사설에서도 “세상에 없는 우리의 군민대단결을 철통같이 다져야 한다. 인민은 원군을 하고 군대는 원민을 하며 군민의 사상의 일치, 투쟁기풍의 일치를 강화하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 군대는 주민들에게 갈취와 공포의 대상이자 생존을 위해 식량 쟁탈전을 벌이는 경쟁상대일 뿐이다.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민가를 약탈하고 거리에서 강제로 차를 세워 탑승하고, 이를 거부하면 폭력을 행사하기 일쑤다.

과거에는 자식들이 대부분 군대에 가 있어 군인을 보면 자식처럼 대하는 풍토가 많았다. 실제 군대도 각종 건설사업에 동원돼 힘든 일을 처리했고, 거리에 나선 군인들의 행실도 모범적이었다. 당국이 아무리 선군정치를 강조해도 이렇게 뒤바뀐 군대를 인민들이 좋아할 리가 만무하다.

당국이 강조하는 군민일치에 대한 말만 들어도 끔찍한 기억이 되살아 나곤 한다. 18년 전 군복무시절 함께 입대했던 동기생이 민가에서 쇠몽둥이에 맞아 비참하게 죽어간 장면이다.

80년대부터 공급 원활치 않아 고기 못먹어

북한 경제는 8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미 내리막을 걷기 시작했다. 이것은 주민 배급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때부터 밥이나 겨우 먹고 육류나 과일, 사탕이나 과자 같은 가공식품은 거의 구경하지 못했다.

군인들도 마찬가지로 돼지고기를 비롯한 육류 공급이 되지 않아 명절 외에는 고기를 구경하기가 힘들었다. 89년 12월 중순이 지나 신정을 앞둔 중대는 상급부대에 며칠 전부터 육류공급을 건의했다. 그러나 답변이 없었다.

며칠 후 대대에서 육류 공급이 없으니 자체로 해결하라는 통보가 내려왔다. 평소 먹는 것도 부실한데 명절까지 강냉이밥만 먹게되면 군인들 사기는 땅에 떨어진다. 중대장은 사관장(보급관)에게 무슨 수를 써서든지 1월 1일 중대 군인들에게 돼지고기를 공급하라고 명령했다.

이틀 동안 고민하던 사관장은 하루 종일 보이지 않더니 저녁시간에 나타났다. 중대에서 입대 1, 2년 밖에 안되는 병사들을 모두 집결시켰다. 그리고는 “오늘밤 여기 모인 인원들은 직일병(당직병)이 깨우면 조용히 일어나 마당에 모이라”고 지시했다.

병사들은 무슨 일인지 몰라 궁금했지만, 취침 구령에 따라 잠을 청했다. 새벽 1시 직일병이 깨워 마당이 나오니 열명 정도가 모여 있었다. 사관장은 우리에게 해야 할 일을 구체적으로 지시했다.

우리는 부대에서 1시간 정도 걸어 나가 한 마을에 들어섰다. 사관장은 우리에게 은밀하게 행동하도록 주의를 주었다. 마을에서 10m 정도 걸어 들어가 맨 입구 쪽에 위치한 민가 앞에 멈춰섰다. 주민들에게 들키지 않고 빠르게 이탈하기 위해서였다.

사관장 “무슨 일이 있는가” 재촉

먼저 병사들이 집 울타리를 넘었다. 그러자 갑자기 개가 짖어댔다. 사관장이 준비한 생선 덩어리를 던져주니 바로 조용해졌다. 재빨리 집 뒤쪽에 있는 돼지우리로 갔다. 사관장은 집안 동정을 살폈다. 병사 2명이 먼저 돼지우리 안쪽으로 들어갔다.

안에 들어간 병사들이 쪽문으로 돼지를 몰면 돼지가 밖으로 나올 때 밖에 있는 병사가 쇠몽둥이(해머)로 돼지의 머리를 내려치기로 돼있었다. 그리고 필자가 돼지를 묶기로 했다.

사관장은 돼지우리에 들어가는 병사들에게 “돼지를 몰라”고 지시했다. 북한은 겨울 추위가 매서워서 돼지우리를 모두 천으로 막아 버리고 작은 쪽문을 통해서 먹이를 주거나 돼지를 밖으로 내보냈다. 사람이 출입하자면 돼지처럼 네 발로 기어야 했다.

돼지 우리 안에서 사관장의 신호를 받았지만 별 기척이 없었다. 무슨 일인지 1분이 지나도록 발자국 소리만 들릴 뿐 별 반응이 없자 사관장이 “무슨 일을 하는가”라며 재촉했다.

몇 분이 지나서 쪽문 안쪽에서 뭐가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밖에 대기하고 있던 병사가 쇠망치(해머)로 돼지가 나오는 쪽문을 향해 힘껏 내리 쳤다.

순간 “악” 소리와 함께 나오던 물체가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우리는 사람 비명 소리가 나자 너무 놀랐다. 필자는 순간적으로 일이 잘못됐구나 하는 생각에 간담이 서늘해졌다. 돼지를 묶으려던 줄을 내버리고 쓰러진 물체로 다가갔다.

쇠망치에 즉사한 동료 상등병

물체를 확인하는 순간 쏟아져 나오는 비명 소리를 참기 위해 손으로 입을 막았다. 나의 동기생 김욱철 상등병(일병)이었다. 머리에 피가 낭자한 채 얼굴을 땅에 묻고 있는 몸을 뒤집으니 입도 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동기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욱철이가 돼지 우리에 들어가 살폈으나 돼지가 발견되지 않았다. 어두워서 안 보여서 그런가 해서 발로 헤집고 다녔지만 보이지 않자 말도 없이 그냥 쪽문으로 나오려고 했던 것이다. 돼지가 빠르니 소란을 피우지 않기 위해 한 번에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병사가 물체가 나오자 마자 내려친 것이다. 내려친 병사도 계급이 상등병이었다.

욱철이를 내려친 동료 병사는 연신 “돼지인줄 알았습니다. 어찌 사람이…돼지인 줄 알았습니다”며 반쯤 넋이 나가 있었다. 사관장은 “시끄럽다. 조용히 하라”며 분위기를 잡았다. 그리고 “1분 내로 정리하고 부대로 복귀한다”고 말했다.

그날 돼지가 있어야 할 자루 안에는 내 동료 욱철이가 들어있었다.

사관장은 중대장에게 이 사실을 보고하고 우리 병사들에게 절대 발설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중대장은 상급 부대에 훈련 중 민가의 돼지 우리에서 돼지가 튀어 나오자 잡아서 되돌려 주려다 넘어져 사망한 것으로 보고했다. 돼지를 훔치려다 동료의 손에 죽은 병사의 사인이 순식간에 뒤바뀐 것이다.

며칠 후 상급 부대에서는 ‘인민의 재산을 보호하려다 사망한 김욱철 상등병에게 군민일치의 모범을 기려 전사영예훈장 3급을 수여한다’는 포상이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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