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기자] 北 6자회담 복귀…내부사정도 있나?

북한이 6자회담 복귀를 밝힌 가운데, 그 배경으로 북한의 내부 사정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북한의 핵문제는 이번이 두번째다. 94년에는 ‘제네바 합의’의 극적 타결로 1차 고비를 무사히 넘겼지만, 이번에는 그때와 상황이 다르다.

90년대 초만 해도 북한내부 상황은 지금보다 안정적이었다. IAEA의 핵사찰 요구에 북한이 불응하자, 미국이 ‘영변핵단지 폭격’을 준비할 때, 북한당국은 준전시 상태를 선포하고 주민들의 결사각오를 부추기며 전시태세에 돌입했다.

또 당∙군∙민이 ‘일심단결’의 구호 아래 조직적으로 결속되어 있었다. 주민동원에 별 어려움도 없었다. 더욱이 김일성 사망 이전이어서 정치적으로 안정되어 있었다.

민심이반에 주민들 자율 생존방식

그러나 지난 1차 때와 달리 지금은 주민들이 ‘김정일을 믿다가는 다 죽는다’는 불신이 사회에 팽배해지면서 제각기 자율적인 생존방식을 택하고 있다.

당국이 주민들의 무너진 기강을 잡기 위해 노동당 창건절(10.10)을 맞아 핵실험을 했지만, 제반 현실은 민심이반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또 식량난이 가중되면 주민들의 대량 국경탈출도 배제할 수 없다. 1차 식량난을 한번 겪어봤기 때문이다.

최근 주민들의 삶의 대처방법도 달라졌다. 한번 죽을 고비를 넘겨본 주민들은 이제 내년에 악화될 식량사정에 대비해 쌀을 사재기 하는 등 물가 혼란을 가져오고 있다.

장마당에서 1kg당 1,000원씩 하던 쌀이 핵실험 이후 1,500원으로 뛰었고, 인민폐 환율도 갑자기 올랐다.

올해 곡물생산도 홍수 등 재해로 한 해 필요량에 크게 못 미치는 데다 미사일 도발 후 한국의 식량지원 중단, 중국의 식량지원도 전년에 비해 줄어들 전망이어서 내년도 전망이 더욱 불투명하다.

1차 핵위기 때는 ‘제네바 합의’로 성공했지만, 부시 행정부의 정책이 1차와 같은 ‘운’을 선사할지 불투명하다. 만약 국제사회의 제재가 주민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칠 경우, 내부에 혼란을 가져올 수도 있다.

북한의 6자회담 복귀와 관련하여 당간부 출신 탈북자 김명준(59. 가명)씨는 “북한정권이 지금처럼 고립을 자초할 경우, 주민들의 불신은 더 커질 수 있다”며 “회담에 나와 시간도 벌고, 외부 지원도 받아 주민들의 불신도 가라앉히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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