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부시의 변덕, 김정일에게 ‘보약’ 됐다

이번 주 뉴욕에서 열린 미국과 북한의 관계정상화 실무회담은 마치 2∙13 합의 축하연 비슷한 자리였다.

양국이 베를린에서 약속한대로 북한이 6자회담에서 초기조치 이행을 약속하자, 미국이 테러지원국 해제 등의 관계정상화 논의라는 선물을 안겨준 것이다. 이틀 동안 주판알을 튕겨본 양국은 만족할만한 거래였다고 생각했는지 모두 흡족한 반응을 보였다.

김 부상은 귀국하는 길에 일본에 잠시 들른 자리에서 “미국이 테러지원국 해제를 약속했다”고 말했다. 김 부상의 말이 100% 사실이라면, 이는 미국이 북한을 ‘악의 축’에서 보통국가 후보군으로 개명(改名)시킨 중대한 사건이다.

현재 미국의 한반도 정책 변화는 일부에서 언급하는 협상전술이나 국내외 정치환경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미국의 대테러전쟁에 어떤 형태로든 북한의 협조를 이끌어낸 모종의 거래가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적과의 담판에 공짜가 있을 리 만무하다.

미-북간 거래는 북한과 미사일 거래가 활발했던 이란이 대상일 공산이 크다. 북한과 이란의 핵무기 커넥션(천연우라늄 및 탄도미사일, 완성 핵무기 거래)을 원천봉쇄 하는 것은 미국에게는 발등에 떨어진 불인 셈이다. 미국이 선물 보따리를 가득 안기면서 원자로 폐쇄와 불능화에 힘을 쏟은 것도 북한이 다량의 핵무기를 보유할 경우 이전 유혹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 핵무기는 제 3국이나 테러리스트에게 판매하지 않을 경우 미국을 직접 위협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미국은 중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핵을 가진 북한과 대결하기 보다는 친구가 돼버리는 전략을 선택할 것일까? 물론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다. 아직도 미국민의 절대다수는 북한을 극도로 불신하는 데다, 북한의 핵 보유가 단순히 한반도 문제로 끝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북핵, 한미 신(新)정권 숙제 될 가능성 높아

미 국무부는 2008년 회계연도 업무보고서에서 1년 내 북한과 협상을 종료하고, 핵무기 해체를 개시하겠다고 밝혔다. 부시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2009년 1월 전에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 2년 가까이 미국과 북한의 핑크빛 스캔들을 지켜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미국의 희망대로 될지는 지극히 회의감이 든다.

이번 방미에서 김계관 부상은 이미 만들어진 핵무기는 협상 대상이 아니라고 했다. 강석주 제1부상도 핵을 폐기하려면 왜 만들었겠냐고 말한 적이 있다. 외교관들이 이런 말을 할 정도다. 북한은 스스로 핵무기를 놓는 순간 국제사회의 요리대상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지금의 협상국면은 2009년 들어 큰 위기를 맞게 될 가능성이 크다. 핵을 없애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가 맞붙은 조건에서는 필연적인 결과이다. 한반도는 다시 요동치고 제재와 대결의 시나리오가 귓전을 강타할 것이다.

부시 대통령의 역할은 여기까지다. 그는 2009년 1월 30일 백악관을 떠나야 한다. 부시 대통령은 김정일에게 당했다며 분개할 수도 있지만, 김정일은 노동당 청사 집무실에서 부시 임기 8년을 버틴 자신의 외교술을 자축하고 있을 것이다. 결국 북한 핵 문제는 한국과 미국의 신(新)정권의 숙제로 넘어가게 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향후 사실상 핵 보유국이 된 북한을 상대해야 한다. 북한은 핵무기를 지렛대로 경제∙외교적 실익을 챙겨갈 것이다. 북한 선전매체의 대남 비방 및 경고 문구에는 핵무기 관련 언급이 점차 증가할 것이다. 이러한 대남 경고는 과거 공갈포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 된다. 우리 국민이 북핵 노이로제에 빠져들 시간이 점차 다가오고 있는 셈이다.

북한 핵무기는 김정일 정권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핵개발 사령관’은 다름아닌 김정일이다. 핵을 김정일에게서 떼어내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은 지난 역사가 증명해준다. 부시 대통령의 변덕은 김정일에게 좋은 보약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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