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하는 조총련①]…“납치문제로 反北정서 커져


재일조선인총연합회(이하 조총련)가 내년에 출범 55주년을 맞는다. 그동안 조총련은 음으로 양으로 북한을 지원함과 동시에 대남전략의 해외 거점 역할을 해왔다.


전성기였던 1960년대 재일동포 대부분이 조총련계였다. 당시 50만명 가까이 총련계였으며, 조총련 중앙조직과 48개의 지방본부 및 260개의 지부가 있었다. 지방분회는 1300여개가 넘을 정도로 방대한 조직으로 성장하기도 했다. 또한 조총련계 금융기관의 지원을 받은 조총련계 상공인들은 빠징코(슬롯머신) 등의 사업을 벌여 조총련은 풍부한 재원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조총련은 재일 동포들의 권익 보호보다는 북한의 대남, 대외 전략에 충실했다. 또한 민족교육이라는 명목이였지만 시대착오적인 김일성, 김정일 우상화 교육을 벌이면서 동포들이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북한의 실체가 알려지고, 북한의 해외 공작활동 지원, 대북 불법송금, 테러행위 등으로 많은 동포들이 조총련을 떠났다.


이와함께 최근 북한의 핵실험과 일본인 납치자 문제로 조총련은 사실상 존폐위기에 놓이게 됐다. 일본정부의 조총련에 대한 압박과 대북 무역 제재, 동포들의 외면 심화, 일본 내 여론악화 등으로 사면초가에 빠져버린 것이다. 


데일리엔케이는 조총련의 그동안의 활동 평가와 쇠퇴원인, 동포들의 이탈 형태 등에 대해 짚어본다.


◆재일동포 조총련 외면 갈수록 심화…존폐 위기





조총련이 출범한 1955년 이후 조총련계 재일동포는 계속해서 늘어 1960년대 재일동포 60만명중 50만명 가까이 조총련계였다. 그러나 60년대 이후 급격히 감소해 현재는 10% 미만으로 파악되고 있다. 게다가 조총련에 가입만 하고 활동은 거의 하지 않는 동포들이 적지 않아 실제 활동하는 조총련계 동포의 수는 더욱 적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가 1994년 공식적으로 재일본대한민국민단(이하 민단)과 조총련의 세력 분포를 공개했다. 당시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공안조사청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재일동포의 총수는 68만 8천명이고 민단계열이 54%인 36만9천명, 조총련계가 36%인 24만7천명으로 발표했다. 여기서 조총련에 가입해 실제 활동하는 숫자는 5만6천명으로 전체동포의 8%이다. 그밖에 민단도 조총련도 아닌 중립이 6만3천명인 9%로 파악됐다.


조총련에 확실하게 가입한 동포 숫자5만6천명이라는 공안조사청의 조사는 조총련에 일정하게 돈을 출자하고 있는 동포들을 기준으로 작성한 것이다. 조총련 소속이였다가 탈퇴한 동포들에 의하면 당시 상당수가 반 강제적으로 돈을 각출당했다고 한다.


경제형편이 어려워지면서 동포들은 계속해서 조총련을 떠났다. 또한 조총련에 남아있는 동포들 상당수가 귀국사업에 가족이 북한에 끌려가면서 탈퇴시 이들을 만나기 어렵고 피해를 줄 우려 때문에 남아있는 경우도 많다.


정세적으로는 1993, 1994년 1차 북핵위기와 1998년 북한의 미사일 발사 등으로 동포들의 조총련에 대한 외면은 심화됐다.


결국 1950년대 이후 현재까지 조총련계 재일 동포 숫자는 계속해서 줄어 현재는 10%미만인 4, 5만 명까지 줄어 든 것이다.


박두진 전 조선대(조총련계) 교수는 데일리엔케이와의 통화에서 “상당수의 조총련계 동포들은 생활이 어려워지면서 조총련을 떠났다”면서 “동포들은 조총련에 헌신적으로 봉사 했지만 실제 생활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아 많은 수의 동포들이 조총련을 떠났고 지금도 이러한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특히 동포들은 김정일 독재정권의 실체가 들어나면서 조총련을 외면하기 시작했다”며 “결정적으로 일본인 납치문제가 김정일의 소행이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동포들의 조총련 외면은 더욱 가속화됐다”고 덧붙였다.


◆ 조선학교 학생수 5만6천→1만여명으로 급감








▲ 일본 오사카에 있는 ‘오사까 조선고급학교’ 체육관에서 학생들이 배구연습을 하고 있다.
체육관 내부에 북한 김일성 우상화문구가 적힌 선전판이 눈에 띈다.ⓒ데일리NK


재일동포들의 조총련 탈퇴 현상이 심화되면서 조총련계 조선학교도 존폐위기에 놓여있다. 조총련계 조선학교는 일본에서 자란 세대들의 사고와 괴리된 북한 이데올로기 주입에 치중하면서 동포들의 신뢰를 상실했다.


특히 조총련은 조선학교를 통해 대남전략을 수행할 수 있는 요원을 양성하는 데 힘을 쏟아왔다. 이렇게 양성된 회원들은 조총련 본부와 산하조직 및 조총련계 기업에 포진해 조직원으로 활동하면서 재일동포 포섭, 대북송금, 공작 활동 등에 나서게 된다. 


그동안 조총련과 북한은 민족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해 조선인학교에 재정적으로 막대한 지원을 해왔다. 실제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8년 4월 조총련 소속 재일동포 자녀들에게 2억500만엔(약 32억원)의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보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바 있다. 김정일이 조총련에 보낸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은 154회에 걸쳐 462억1천122만3천엔에 달한다.


이러한 북한 당국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학생수는 계속해서 감소하고 있다. 1980년대 도도부현(都道府縣)에 초급학교 83개, 중급학교 56개, 고급학교 12개 등 학교수가 151개였고 조총련계 유치원도 67개였다.


그러나 학생수가 계속해서 줄어들어 조선학교가 현재는 100여개로 감소했다. 도쿄 내 조선학교 같은 경우, 계속해서 학교 통폐합이 진행돼 중급학교는 3개로 줄어든 상태다.


학교 수보다 학생수의 감소는 더욱 두드러진다. 조총련이 전성기였던 1960년대 각급 학교의 학생총수는 5만6천여명에 달했다. 그러나 2005년 기준 1만 2000여명까지 줄었고 현재는 1만명을 밑돌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게다가 북한의 핵문제와 일본인 납치자 문제가 이슈화 되면서 이와 같은 현상은 더욱 가속화 되고 있다. 조총련계 조선학교를 대표하는 조선대학교의 경우도 최소 학생수인 1천명도 못미치는 800여명으로 줄었다.


이와 함께 조총련의 재정난으로 민족학교에 대한 재정적인 지원을 줄이거나 중단하면서 각 조선학교는 통폐합을 서두르고 있다. 2005년 세타가야에 있던 ‘도쿄 제8 초급 학교’가 압류를 피하기 위해 매각되기도 했다.


조선대학교도 43억엔의 부채를 해결하지 못해 곤경에 빠져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뿐만 아니라 기부금을 통한 자금조달도 어려워지고, 교원들의 수당 등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조총련계 조은(朝銀), 무리한 대북송금으로 파산








▲2007년 4월 일본 경시청 공안부 무장
  경찰들이 납치문제와 관련해 도쿄 조
  선출판회관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조총련 실무자들과 충돌한 바 있다. ⓒ연합


조선학교가 조총련의 인적 기반역할을 해왔다면 조총련 산하 사업체는 재정적인 기반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조총련계 은행의 파산과 산하 사업체의 경영난으로 조총련도 자금난을 겪고 있다. 동포들의 외면과 더불어 재정난으로 조총련이 총체적인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다.


조총련 산하에는 상공연합회, 신용조합협회, 청년동맹, 여성동맹, 교직원동맹, 중앙교육회, 기타 문화단체 등이 있고 사업체로는 조선신보사, 조선통신사 등 22여개의 산하 단체가 있다.


이중 상공연합회와 신용조합협회 산하 조선신용조합 등은 조총련의 실질적인 재정적 기반 역할을 해왔다. 상공인연합회 소속의 상공인들과 신용조합인 조은신용조합(朝銀信用組合, 이하 조은)  등은 대북 송금을 위해 다양한 사업을 벌였으나 1980-1990년대 일본 경제 불황으로 인한 사업실패로 경영난을 겪게 된다.


특히 불법 대북송금 등으로 일본 정부의 압박과 제재를 받으면서 조총련의 자금난은 더욱 심해졌다. 일본 언론의 보도에 의하면 조총련이 애국사업 명목으로 1994년까지 매년 6억-8억달러를 북한에 송금해 북한의 주요 외화획득 수단이 되었으나 조총련계 기업의 부실로 대북 송금이 대폭 줄은 것으로 알려졌다.


1990년 조선신용조합의 발표에 의하면 38개의 조합, 176개 점포 등에 총 예금고 2조37,503엔에 달했다. 이러한 자산으로 조총련계 상공인들은 조총련의 금융기관 역할을 하면서 막후에서는 조총련의 활동자금의 공급원으로서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는 것이다.


특히 조총련은 조은 이라는 금융기관을 설립해 재일동포들의 저축권장을 통해 자본을 축적했다. 이런 자금원으로 조총련은 수익성 좋은 빠찡코(슬롯머신) 사업경영과 토지의 매입매각 사업 등으로 재정사업에 전력을 다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자금난에 빠지게 된다. 당시 북한의 경제가 파탄지경에 이르면서 북한은 조총련에게 자금지원을 요청했으나 일본 경제에 불황으로 대북 송금이 여의치 않았다. 조선신용조합은 주된 수입원이던 토지거래의 실패와 빠징고 사업의 불황으로 재정적인 어려움이 발생했다. 이러한 재정적인 어려움에도 조총련은 계속해서 대북송금을 실시해 재정난을 더욱 악화시켰다.


결국 일본의 불황과 무리한 대북송금으로 조은은 파산하기에 이른다. 조은은 전성기 때는 일본 전국에 38개의 지점을 보유했다. 그러나 방만한 경영과 더불어 일본의 버블경제 붕괴 및 장기적 경기 침체로 1990년대 말부터 각지에서 합병 및 파산을 거듭했다.


2000년 초 18개 신용조합 중 15개 신용조합이 파산했고, 다시 이 중 9개 신용조합의 사업 양도가 결정됐다. 현재는 조선신용조합은 해산했고 조은 계열 은행들은 통폐합되어 현존하는 조합은 이오신용조합 등 3개이며, 새롭게 설립된 효고히마와리신용조합를 포함해 4개가 존재한다. 


이와 함께 조총련의 자금난으로 조총련 반세기 역사의 상징인 중앙본부 회관이 강제매각위기에 처해있다. 조은이 부채 627억엔을 변제하지 못하고 결국 파산함에 따라 이 조합의 채권을 인수한 일본 정리회수기구(RCC)가 도쿄 조총련 중앙본부의 건물과 토지 경매를 추진하고 있다. 현재 해당 건물과 토지는 조총련과는 별도의 합자회사 명의로 되어 있어 정리회수기구는 이와 관련 소송을 준비중이다. 


도쿄를 비롯해 오사카 등 주요 도시의 총련 지방본부와 학교 등 29개 시설 가운데 9개 시설이 정리회수기구에 압류 또는 가압류됐다. 도쿄도, 서도쿄, 지바현, 아이치현, 사가현, 오사카부의 각 본부가 압류된 상태이며,  미야기현 본부, 아이치현 조선중고급학교, 규슈 조선중고급학교 등도 가압류된 바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