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증언] 이것이 北 산업스파이 ‘문익점 사업’ 실체

▲『평양 변주곡』저자 이상옥씨

하늘에 계신 문익점(文益漸, 1329~139
8) 선생이 땅을 치고 통곡할 일이 하나 있다.

알다시피 문익점 선생은 고려 말기 학자이자 문신으로 원(元)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붓대 속에 목화씨를 감추어 가져온 것으로 유명하다.

북한에 ‘문익점 사업’이라는 것이 있다. 북한 당국이 해외동포들에게 외국의 발전된 기술과 서적, 부품을 몰래 들여오도록 강요하는 사업이다. 문익점 선생의 이름을 갖다 붙였지만, 지적재산권 등이 강조되는 현대사회에선 국가가 나서서 ‘산업 스파이’ 활동을 지시하는 범죄행위인 것이다.

이런 ‘문익점 사업’을 직접 목격하고 경험한 인물이 있다. 그러한 북한 정권이 신물이 나, 이제는 그 범죄행위를 세계만방에 알려 중단시켜야겠다고 마음먹은 인물이 있다. 데일리NK를 통해 소개한 바 있는 호주 동포 이상옥 씨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 씨는 처음에는 ‘동포애’에 이끌려, 한편으로는 북한에 있는 아버지 때문에, 북한 당국과 가깝게 지냈다. 호주에 북한 영사관이 없는 탓에 ‘명예 호주(濠洲) 영사부장’이라는 직함까지 얻었다. 그러다 차츰 기만 당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어, 2003년에는 북한 정권의 생리를 고발한 책 『평양변주곡』(관동출판사)을 출간했다.

이상옥 씨가 자신이 목격하고 경험한 ‘문익점 사업’의 구체적 사례 몇 가지를 데일리NK에 보내왔다.

특명 1> 고등채소로 인민의 영양 결핍을 해결하라!
대신 농장은 무조건 평양에!!

1998년 12월 1일 북한 농업전문인 5명이 수경(水耕)농법을 습득하기 위해 호주를 방문했다.

손영인 농림성 남새(채소)국장, 조성관 아태 ‘월드비전’ 담당참사, 리용구, 정경하, 홍채업 농림성 직원 등이 참여했다. 이들은 기술을 배운다며 호주에서 수경재배농사로 성공한 교포 김은각 씨의 농장에서 숙식제공을 받으면서 15일간 체류했다.

북한 당국이 이들을 파견한 이유는 “고등채소 생산성을 높여, 채소 결핍을 해결하기 위해서” 였다. ‘고등채소’는 오이, 상추, 토마토, 딸기 등 넝쿨에 열린 모든 과일과 뿌리가 깊지 않고 가벼운 시금치 등을 말한다. “수경농법은 겨울철에도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고 연중 싱싱한 고등채소를 섭취 할 수 있다”는 월드비젼(前 국제선명회)의 권고를 받아들여 간부들을 파견했다.

수경농법은 이런 장점이 있음에도 북한에서 대중화가 되지 못했다. 수경재배는 태양열이 강한 계절에는 옅은 그늘로 채소를 보호하고 겨울에는 파이프 속 물의 온도를 유지시켜줘야 한다. 그런데 북한의 기후조건에서 이런 시설을 하려면 막대한 경비가 들어가기 때문에 애당초 힘든 사업이었다.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김은각 씨는 개인 돈에 월드비전의 지원금을 합쳐 막대한 경비를 들여 평양 대동강 쑥섬에 수경재배 농장 천여 평을 조성했다. 월드비전과 호주 동포들은 “인민의 열악한 식단을 개선하기 위해 시골에 농장을 세우자”고 제안 했으나 북한 당국은 “평양 아니면 실시하지 않겠다”며 극구 반대해 결국 평양에 농장이 조성했다.

그러나 투자액을 한 푼도 건지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계속되는 경비의 출혈을 감당하지 못하고 김은각 씨는 이 사업을 포기하고 말았다. 기술만 북한 간부들에게 전수시켜주고 인민들에게는 신기루만 보여주게 됐다.

특명 2> 첨단과학 기술서적을 닥치는 대로 가져오라!
이왕이면 도면까지 그려오라!!

북한은 알다시피 첨단과학기술이 전무하다. 한국의 IT산업을 따라 잡을 수 있을 만큼의 잠재적 두뇌능력은 있으나 실재하는 기술과 지식의 부재로 고뇌하는 나라다. 따라서 해외동포들이나 해외출장요원들에게 과학서적을 구입해 입국하도록 강요한다.

한 해외 동포는 “북한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알고 있으나 그들의 학문적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려 해도 자존심 때문에 알려주지 않아 초급, 중급, 고급에 해당하는 서적을 모두 사야 한다”는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북한의 해외출장요원들은 외국에 나가 필요한 책을 사려고 해도 영어구사능력이 떨어져 해외동포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2000년 호주 시드니 올림픽 당시 북한의 <조선해외동포원호위원회>에서 파견된 김문일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과학기술 관련 책자 40여 권을 북한으로 가져갔다. 그는 컴퓨터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책자를 구입해 달라고 떼를 쓰는가 하면 소양강 댐 공법과 콘크리트 댐 공법책자, 지하광물탐사기능책자, 농업책자, 동력장치를 포함한 기계공학책자, 화학공학책자 등 닥치는 대로 구매해 줄 것을 요구한다. 이런 요구를 거절할 수 없는 동포들의 고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김문일과 함께 파견된 일행 중 어떤 사람은 교포가 운영하는 정육점을 방문해 부분별 육류 분리 기계를 사진으로 촬영했고, 일일이 내부 기능을 보면서 도면까지 만들어 북한으로 가져갔다.

북한은 2000년~2003년 사이 호주에서 폐기 처리 직전에 있는 4만여 대의 컴퓨터를 헐값에 사서 북한으로 가져갔다.

특명 3> ‘개량형 씨앗’을 구해오라!
그런데 특허권은 난 몰라!!

북한의 배추는 해방 이후 재래종 이상으로 발전하지 못한 실정이다. 따라서 2000년 당시 가장 시급하게 필요했던 것이 ‘개량종 씨앗’이었다. 개량종 씨앗을 입수하기 위해 해외출장요원이 종자회사를 접촉했으나 그들의 무지로 인해 무산된 일이 있다.

북한의 의도인즉 아무리 많은 종자를 제공받는다 해도 일회용 파종은 그 해로 끝나는 것이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제공받을 수 있는 종자회사를 접촉한 것이다.

북한이 소개받은 종자회사는 한국으로부터 중국 현지에 진출하여 품종별 특허권을 갖고 판매하는 회사였다. 그러나 농산물 특허권이란 개념을 전혀 모르는 북한 간부는 막부가내로 종자를 지원받으려고만 했지 ‘특허권’이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 간부는 떼쓰면 다 되는 줄 알고 버텼지만 종자회사의 거절로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北 생리 정확히 알고 대북지원 해야”

이상옥씨에 따르면 이러한 ‘문익점 사업’은 과거에 비해 많이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암암리에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문익점 사업’을 내세워 해외 동포들의 참여를 강요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 소련이 붕괴한 이후 경제난이 심해지자 해외 각국의 동포들에게 “조국의 발전과 인민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스파이 행위를 강요한 것이다.

그러나 이 씨는 “해외동포들이 도움의 손길이 정작 필요한 인민들에게는 돌아가지 않는다”면서 “북한 권력층의 배만 불리는 지원은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그는 “북한의 생리를 정확히 알고 대북지원을 해야 진정한 의미의 지원이 될 수 있다”고 십여 년간 북한을 상대로 ‘산전 수전 공중전’을 다 겪어본 교훈을 요약했다.

김용훈 기자 kyh@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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