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부 최우수상]12월의 북한인권

12월의 북한인권

김금주(숭실대 09학번 입학예정)

어느덧 연말이 되었다. 12월은 나에게 북한 인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바로 10여 년 전 김정일의 독재체제에서 억울하게 아빠가 돌아가신 달이기 때문이다. 현재는 한국에서 북한의 인권에 대해 사고하고 말하고 글도 쓰고 하지만 만약 아직도 북한에 있다면 상상조차 못했을 것이다. 북한인권이라는 생각을 하면 ‘정말 그 사람들에게 인권이라는 것이 존재할까?’ 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대부분 북한사람들이 그렇듯이 나도 북한을 떠나기 전까지 학교와 가정에서 세뇌교육을 통해 무조건적으로 김일성, 김정일에 대한 숭배를 했었다. 중국으로 오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이 김일성이었을 만큼 무의식적으로 그들을 숭배했다. 9살 때 아빠가 돌아가시는 사건이 있었음에도 정치를 하는 간부들이 나빠서 그렇지 김정일은 절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사실을 김정일이 알면 마치 해결해주는 것처럼 생각했고 신격화된 하나의 김정일이라는 인간이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다 중국에 들어와 김정일에 대한 비방을 들으면서 조금씩 북한의 현실을 알아가게 되었고 그런 사회에서 살고 있는 북한 사람들의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들이 무엇을 잘못하였기에 북한이라는 땅에서 태어났으며 그 체제에서 생활을 하는지 신에게라도 묻고 싶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들은 북한이라는 나라에서 태어나고 싶어서 선택한 것도 아니고 세상에 나와 보니 그 사회였던 것이다. 모든 생명체가 그렇듯이 그 사람들도 똑같이 세상에 태어났는데 살아가는 삶은 너무나 차이가 난다. 북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인권이란 법적인 권리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대우를 받느냐 동물의 취급을 당하느냐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로 봐야 된다고 생각한다.

8살 초등학교 2학년 때 난 끔찍한 사건을 목격한 적이 있다. 바로 공개사형하는 장면이었다. 큰 대로변에서 방송차가 다니면서 사형수의 죄를 공개하고 있었다. 죄는 바로 김일성이 현지 시찰한 기계의 동(구리)을 뜯어내어 팔았다는 것이었다. 그때 당시 아무 것도 몰랐던 난 동생과 사형장소에 가보았다. 거기엔 많은 사람들이 웅성웅성 거리면서 모여 있었고 머리를 깍은 세 명의 사형수들이 기둥에 묶인 채 서있었다. 내가 그 장소로 가서 몇 분후 바로 총살이 이어졌다. 거의 15명이 되는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그 세 명을 쏘았다. 총은 커다란 기관총이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나는 너무 끔찍한 사실에 놀랐고 집에 와서 그때의 장면을 빼놓지 않고 엄마에게 말했었다. 엄마는 왜 갔냐면서 꾸짖으셨지만 난 그저 ‘죄 지으면 벌 받게 되는구나, 절대 죄 지으면 안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누구의 강요도 없이 스스로 그렇게 받아 들였다.

한국에 와서 그 사실이 생각났을 때 현지 시찰한 기계의 부품이 뭐라고 과연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형을 당한 분들은 할머니 친구의 큰아들과 며느리와 친척이었다. 그리고 그 아들에겐 3살짜리 아들이 있었다. 그 끔찍한 사건이 있은 후 할머니의 친구 분은 손자를 입양 보내야 했다. 장손이었던 3살짜리를 남에게 보내는 할머니의 가슴은 얼마나 찢어지게 아팠을까…그리고 그 후 그 아이의 장래는 어떻게 되는 것일지…내가 한국 오기 전까지 그 할머니는 마음고생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지금은 아마 어떻게 사실지 궁금하면서 가슴이 아프다. 그 할머니는 어이없이 아들의 죽음을 보았음에도 묵묵히 받아들여야만 했다.

우리 가족과 내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그러했듯이…

그 후 우리 군(시)에서만 2번의 사형이 더 이루어졌다. 그땐 철저한 아빠, 엄마의 감시로 그곳으로 가보지 못했다. 하지만 집에서 그 총성은 들렸다. 나는 그들이 사형당하는 것이 합당한지에 대해 생각하기 보다는 죄목이 무엇인지 궁금했고 당연하다고 받아들였다. 그의 가족들도 억울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또한 가족들의 출세는 이미 끝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국가와 수령과 당을 비난하지 못한다. 그만큼 북한의 체제는 엄격하고 인민들에게 저항해서는 안 되는 존재로 인식되어있다. 처음에는 북한 사람들이 왜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는지 이해가 안 갔다. 하지만 반란을 일으키는 것도 어느 정도의 지식이 있어야 하고 북한만이 아닌 외부의 정세를 파악해야 가능한 일이다. 철저한 체제 속에 일반인들은 전화도 없고 교통도 불편하고 인터넷도 없고 텔레비전도 국가에서 관리하는 채널 하나로 생활이 이루어지는 그들의 시야는 당연히 좁을 수밖에 없다. 고위층 간부들이나 중국과 인접한 지역에서는 그나마 외부소식을 접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몰래 듣고 조심스럽게 말하거나 아예 못 들은 거로 해버린다. 내가 한국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일부 북한 사람들은 아래동네(한국)의 제품이 중국의 것보다 좋고 잘 산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하지만 나는 중국에 들어오기 전까지 무슨 말인지 잘 몰랐고 중국이 제일 잘사는 나라라고 알고 있었다. 남조선(한국)은 학교에서 가르쳐준 대로 못 사는 나라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여기서 초등학교 때 한국에 대해 배웠던 글을 하나 소개한다.

뛰뛰빵빵 내 동생
어디로 가느냐고 물어봤더니
헐벗고 굶주리고 있는
남조선 어린이들에게
흰쌀과 비단을 싣고 간대요.

또 하나의 글은 가난한 학생이 공부를 하고 싶지만 돈이 없다.

하지만 공부를 하고 싶어 학교로 찾아간다. 학생은 학교에 가 “교장선생님 저 공부하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하지만 교장은 눈을 부릅뜨며 큰소리로“월사금을 내란 말이야!”라면서 교실에서 내 쫓는다.

한국은 자본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돈 없으면 공부도 못하고 길거리에서 구두닦이로 생활하면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가난한 사회로 묘사하는 만화도 많았다.

이러한 학교에서의 교육과 인쇄매체를 통해 나는 한국은 잘사는 나라라는 것을 상상도 못했다.

모든 것이 닫힌 사회에서 생활하면서도 그런 줄 모르고 있는 그들에게 인권이란 생각도 못하게 하는 것이 바로 북한체제이다. 이러한 체제에서 생활한 그들과 어느 날 통일이 된다고 가정을 하면 어마어마한 차이가 생길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북한에서는 노래가사로 부르듯이 한국과 북한은 민족, 핏줄, 언어, 역사, 문화 등 모든 것이 하나고 같다고 가르치고 통일에 대한 염원은 표면적으로 한국보다 더 크게 비춰진다.

한국에 왔을 때 처음 난 북한에서 받은 교육의 비중이 컸기 때문에 글짓기에서 북한과 남한은 이 모든 것이 같기에 통일만 되면 문제가 없을 거라는 생각으로 썼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 청소년들이 통일에 관심이 없을 뿐만 아니라 차라리 차이가 많기 때문에 통일이 안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나 또한 차이가 많다는 것을 알아갔다. 북한은 우리가 하나가 되는 통일에 대한 생각도 다르게 만든다.

앞으로 북한인권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하고 통일은 꼭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적어도 50년 전 6.25가 발생하기 전에는 생활방식이 어느 정도 같았다고 생각한다. 북한 인권을 위해 국내, 국외 NGO단체들이 활동하는 것은 통일을 위한 준비단계라고 본다. 정부에서 거론하지 못하는 인권문제를 다루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어떠한 책에서 동물 옹호론에 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 글을 읽고 나는 동물의 생명까지 옹호할 정도로 생각하는 지성인이라면 북한인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당위성을 지녀야 한다고 생각했다. 현재 외국에선 한국인들의 북한에 대한 무관심을 비판하는 정도이다.

앞으로 보다 큰 미래를 생각하고 잠시라도 북한 사람들이 처해있는 현실을 역지사지로 생각하면 좋겠다. 그들에게 직접적이고 가장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곳이 한국이고 한민족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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