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부 장려상] 북한인권

북한인권

김지혜(마산제일여중 3학년)

아무것도 모르던 초등학교 시절.

난 같은 민족의 분단을 이상하게 느끼지 못하였다.

우리도 친구들과 싸우는 경우가 있다. 그때의 유행어는 ‘너랑 이제 절교야.’이였다. 하지만 며칠 가지 못하고 다시 서로 팔짱을 끼고 다니는 일이 대부분 이였다.

이것이 내 일상이었기 때문에 우리 한반도가 북과 남으로 갈라져 있는 것이 특별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냥 지금은 잠시 싸워서 ‘우리 절교야’를 말하며 토라져 있지만 나중에는 어짜피 다시 하나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나는 ‘우리는 같은 민족이고 같은 동족인데 3.8선을 두고 서로 갈라져 있다’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와서 얼마안가 화해할 것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 시절, 나는 무조건 통일을 지향했다. 아니 이 시절에는 누구나 통일을 지향했다고 말하는 것이 확실할 것이다. 아직 정치, 사회, 군사 등 이런 복잡한 관계를 자세히 할지 못할 분더러 초등학교 시절은 누구나 바른생활 어린이가 되기를 소망한다. 왠지 통일을 반대하면 나는 나쁜 어린이라는 생각을 한번쯤은 들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 마음 그대로 중학교에 올라왔다. 난 그 때 통일을 바라지 않는 사람이 통일을 바라는 사람보다 많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처음에는 너무 황당했다. 아니 도대체 왜?

모든 것이 의문점이었다. 그런데 이유를 듣는 순간 뒤통수를 맞는 기분이었다. ‘우리가 손해잖아요.’ 딱 이 한마디가 다였다. 어떤 다른 이유들도 그 속에 내포하고 있는 것들은 똑같았다. 북한은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기에 우리가 많은 것을 도와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간과하고 고개를 돌리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나는 통일 지향이었다. 그러나 이 나이에는 동화가 잘 된다. 내 의견이 다수의 의견과 다르다면 내가 틀린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다. 나도 이에 포함되어버렸다. 나는 그렇게 동화되어 가고 있었다.

‘우리가 더 많은 것을 감싸 안아야 하는데 이건 생각을 많이 해보아야 한다. 무조건 통일은 안 된다.’

이 시점 나는 교회에서 비전 트립을 가게 되었다. 우리 한반도, 아니 정확하게 말해 남한만을 전부다 돌아보는 것이었다. 일주일 동안 한 비전 트립은 서울을 시작으로 땅 끝 마을까지 가는 것으로 종료되었다. 며칠째 인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추운 겨울 우리는 판문점이라는 곳을 갔다. 차는 거의 다니지 않는 도로에 우리 버스만 덩그러니 있었다. 도로 양 옆에는 철조망이 쳐져 있었다. 바로 앞에는 군인 몇이 서있었다. 우리는 들어가 보려고 했지만 미리 말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에 앞에서 사진만 찍은 채 돌아왔다. 양 옆 철조망 안으로 북한이라는 소리를 듣고 억지로 고개를 내밀어 보았었다. 지금은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밭이였는지, 황무지였는지.

하지만 짧은 시간이였기 때문일까, 내 관심사와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일까. 이곳은 내 머릿속에 몇 분 되지 않아 사라졌다. 모든 일정이 다 끝나고 집에 오는 길에 내 머릿속에는 피곤하다는 생각 뿐 그 어떤 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렇게 내 생활 속에 우리나라의 반은 잊혀진 체 존재 했다.

1년 뒤, 바로 그해 겨울 나는 이번에는 중국으로 갈 기회가 생겼다.

난 꿈에 부풀었다. 비행기도 처음 타보는 것이었고 다른 나라로 일주일씩이나 가는 것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꿈이었다. 목사님은 연변을 선택했고 북한을 바라보는 시점으로 이루어진다고 했다.

아! 중국 가서 만리장성 못 보면 중국 갔다는 소리를 하지 말라고 했는데…

하지만 이미 간다고 한 것을 이제야 미룰 수는 없는 법, 탐탁치 않은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생각보다 괜찮은 경험을 했지만, 안타까운 마음은 비전 트립을 하는 동안 문뜩 떠올랐다.

세 번째 날 이였던가, 백두산에 가게 되었다.

이 때 선생님이 열을 내며 한 말씀이 생각났다. 중국이 북한을 흡수할 수도 있다는, 지금 우리 백두산을 장백산이라 부르면서 우리 역사를 자기들 역사로 만들어 간다면서. 그 때는 그냥 흘려들었던 말이였는데 막상 백두산 입구에 도착하였을 때, 장백산이라고 떡 하니 적혀있는 그 표지판을 보았을 때는 정말 기분이 나빴다. 난 이때까지 백두산이라고 배우고 우리 교과서에는 분명 백두산이라고 적혀 있는데, 왜 여기는 장백산이라고 부르며 왜 사람들은 이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 하지 않는가.

정말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라면 아무도 백두산이라 부를 것 같지 않았다. 나의 안타까운 마음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다음날 우리는 압록강, 두만강이 있는 곳으로 내려갔다. 날씨가 추워서 강은 모두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이 강 바로 건너편은 북한이라고 했다. 나무에 가려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북한 땡이 눈앞에 그려져 있었다. 그 잠깐 보았던 북한의 모습은 흑백 사진 같았다. 중간 중간 작은 집이 보였고 지나다니는 사람도 몇 보였다.

그렇게 이번에도 나는 북한을 보았다. 다른 곳으로 이동하면서 북한을 보았다. 이번에는 예전에 비해 생각이 남 달랐다. 우리 땅 바로 위에 있는 북한을 비행기 타과 와서 건너 건너 봐야한다니, 안타까운 마음이 앞섰다. 아, 정말 이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누어져 있다는 것이 이런 슬픔이였다니.

우리 민족, 우리 동포가 사는 나라인데 왜 남의 나라에 와서 구경 밖에 할 수 없는가, 우리 백두산이 왜 장백산 이라 불려 지며 중국인들 에게 돈을 내면서 산을 올라야 하는가.

이 모든 일은 분단국가라는 단어를 우리 한반도가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분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우리는 영원한 분단국가로 서로 존재한다는 것도 있고 살아갈 것이다. 북한 땡 한번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등질지도 모른다.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아니 더 이상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 한반도는 통일이 이루어져야 한다. 여기 저기 사람들이 말하는 말에 나처럼 자신의 의견을 버리지 마라. 통일의 단점, 많은 것이다. 우리가 많은 손해를 떠안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단점들만 가지고 통일을 반대하는 것은 안 된다. 단점이 있다면 이것을 바꾸도록 노력해야 한다. 사람들 말처럼 우리가 모든 것을 떠안을 수는 없다. 조금씩 변화해 나가야 한다. 이제 서로를 껴안을 준비를 해야 한다.

우선 우리는 너무 많은 시간을 떨어져 있었다.

그것도 다른 정치 체계 안에서 반 세월이 넘는 시간을 지내왔다.

당연히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경지, 정치, 사회 문제 등 모든 것이 우리와 다를 것이다.

경제 문제를 예로 들어보자. 우리는 급속한 경제 개발로 급격한 성장을 했다. 급속한 경제 성장으로 문제점도 있지만 우리는 식량걱정을 한 시대는 이미 떠났다. 많은 기술과 지식을 필요로 하는 시대가 남한에 와 있다. 하지만 북한은 당장의 식량이 없어 굶는 사람, 탈북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특히 중국과 미국으로 탈북하는 숫자가 증가하여 문제가 되고 있다. 서로 너무 다른 경제 속에 살고 있는 남과 북, 이 문제는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이런 식량 문제로 인해 노무현 대통령 정부일 때 햇볕 정책을 펼쳤었다. 하지만 이 정책은 일방적인 퍼 주기에 불과하다. 서로 주고받기가 되지 않고 일방적으로 주기만 하는 것은 제대로 된 성과를 나타 내지 못한다. 우리가 주는 것이 정말 북한 국민에게 가는지 다른 곳으로 가는지 우리는 알 턱이 없다. 결국 핵무기를 만드는데 도움만 줘버린 셈이 되었다. 이런 실수를 다시 저지르지 않기 위해 우리는 일방적으로 북한에 식량을 주는게 아니라 우리가 필요한 부분을 받는 형식이 되어야 한다. 손해가 있다하여도 주고받기를 통해서 북한 경제를 우리와 조금씩 맞춰가야 할 것이다.

그다움 정치적 문제를 보자. 북한과 남한은 서로 다른 정치적 이념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민주주의, 북한은 공산주의, 북한만의 공산주의가 정치적 이념이다.

서로 다른 정치 체제로는 통일이 불가능 하다. 합친다 하더라도 이건 분단 되어있을 때 보다 더 혼란스러울 것이다. 그렇다고 둘 중 한 가지 체제를 선택하여 서로의 국가에 강요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둘 중 한 가지 체제를 선택하여 서로의 국가에 강요할 수는 없다. 이 문제는 남북의 많은 만남과 협상, 국민들의 의견 등을 반영하여 해결해야 할 것이다.

세 번째는 교육 문제이다. 남과 북은 서로 다른 교육과정을 밟고 있다. 하지만 북한의 경우 사람들의 사는 형편에 따라 교육을 못 받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물론 남한도 의무 교욱만 하고 넘어가는 경우도 있지만 요즘에는 거의 이런 경우가 없다.

남과 북의 다른 교육 방식으로 서로간의 생각도 다르게 된다. 이것은 정치적 이념이 통일 되면 자연적으로 통일 될 것이라고 믿는다. 서로의 좋은 것은 수용하고 나쁜 것은 서로 보완하면 더 높은 교육열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의 나라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서로 잦은 만남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서로 많이 달라진 이유는 교류 없이 너무나 많은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잦은 만남과 서로에 대한 이해는 통일을 만날 수 있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이민 많은 국가들이 힘든 과정을 밟고 일어내 통일을 이륙했다.

유일한 분단국가, 우리 한반도.

이제 서로 손을 잡을 때 인 것 같다. 이제 서로 너무 미워하지 말고 너무 자신만 내세우지 말고 서로에게 수용적인 자세를 가지고 여러 가지 방안을 모색하여 우리가 다시 손을 잡고 서로를 껴안을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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