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총련학교 견학기] “김부자 초상화보니 가슴이 섬뜩해져”

‘박치기!’라는 영화가 있다. 2003년 일본에서 개봉해 대 히트한 이 작품에는 남다른 캐릭터가 있다. 바로 재일조선인 2세들이다. 영화에서 이들의 주 무대가 된 곳은 교토의 조선고등학교였다.

일본에는 현재 11개의 조선학교(북한계 학교)가 있다. 이들 학교는 북한 정부로부터는 전폭적인 지원을 받지만 일본 정부로부터는 냉대를 받고 있다. 열 살의 어린 나이부터 주체사상을 배우며 여학생들은 북한에서처럼 치마저고리를 교복으로 입는다.

지난 9월 중순 오사카에 위치한 ‘오사까 조선고급학교(고등학교로 풀이됨)’를 방문했다. 학교에서는 한국인 대학생의 방문 요구에 선뜻 응해줬다.

색이 바랜 흰색 건물과 운동장. 여느 일본 학교와 달라보이지 않았으나 한글로 ‘오사까 조선고급학교’ 라고 쓰인 문패가 눈에 띄었다.

강화정 부교장 선생님이 반갑게 필자를 맞이해 응접실로 안내했다. 실내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초상화가 눈에 들어왔다. 말로만 듣던 김부자의 초상화를 보니 순간 기분이 섬뜩했다.

오사까 조선고급학교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에 세워졌다. 55년 동안 이 학교를 졸업한 학생 수가 1만 3천명이나 된다. 지금은 전교생의 숫자가 약 450명으로 규모가 크게 줄었다.

북한 국적과 남한 국적 학생의 비율이 각각 절반씩이라고 한다. 대부분이 북한 국적일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의외였다. 전국 고등학교 운동대회에서 매년 순위권에 드는 이 학교는 특히 축구와 권투에 능하다.

북한과 같이 태양절(김일성 생일, 4월 15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건국일(9월 9일), 김정일 생일(2월 16일)에는 학교를 쉬거나 조국통일 등에 대한 웅변 대회를 연다. 또한 추석 아침에 차례를 지내는 학생에게는 지각이 허용된다.

북한 학생들의 차림처럼 여학생들의 봄·가을 교복은 치마저고리이다. 이날 본 여교사들도 각각 무늬는 다르지만 같은 모양의 한복을 입고 있었다. 정말 일본 속에 북한 학교를 옮겨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 조선학교 학생들이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있다.

조선학교의 가장 큰 후원자는 북한 정부다. 북한 당국은 북한 내에서 만든 교과서를 무료로 제공하고, 인건비 및 장학금을 보낸다. 같은 계통의 대학으로 도쿄에 위치한 조선대학에는 매년 2~3억 엔(약 17~25억원)씩을 후원한다. 약 10년 전부터 북한의 경제가 급속도로 나빠져 왔음에도 매년 지원이 계속된다며 부교장 선생님은 어깨를 으쓱해 했다.

또한 이 학교만의 특이한 행사가 있는데 바로 고3 학생들의 북한 수학여행이다. 이것 역시 북한정부의 지원 하에 관광 및 숙박비가 무료이다. 학생들은 북한 현지 학생들과 교류도 하고 10여 일간 평양, 판문점, 사리원, 백두산 등을 관광한다.

이 학교 졸업생 최미호(19세, 대학생) 씨에게 북한에서 어떤 인상을 받았냐고 물어보았다. 그녀는 “일본에 알려진 것처럼 비관적인 이미지만은 아니다”면서 “고생하는 인민들도 있지만, 밝고 웃음이 있는 사회라고 모두들 느끼고 돌아온다”고 답했다.

그러나 조선학교는 일본 정부로부터 냉대를 받고 있다. 핵 개발, 납치문제 등으로 북한을 보는 일본의 시선이 따갑기 때문이다. 몇 년 전까지는 북한 수학여행을 갈 때 일본에서 배로 원산까지 갔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일본이 북한 선박의 입항을 금지시켜 비행기로 중국을 거쳐 평양으로 가야한다.

일본이 북한을 ‘못 생긴 나라’로 취급하게 한 핵무기·납치에 대해 선생님의 의견을 여쭤보았다.

“일본에서는 원폭피해의 아픈 역사가 있기에 핵무기의 장점을 대놓고 말하기 어렵지요. 하지만 핵은 북한이 정치적으로 유리한 입장에 서는 데 도움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이 미국과 대등한 입장이 된다면, 그 때 가서 핵이 없어져도 될 겁니다.”

일본인 납치문제에 대해선 “북한의 잘못”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일본도 과거 조선인 납치·강제연행에 대한 사죄를 잊어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긴 인터뷰가 끝난 뒤 학내를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다. 곳곳에 “모두 다 주체위업의 계승자로 준비하자”라는 문구나 북한의 풍경화가 눈에 들어왔다. 일본어 수업을 제외하고는 모든 과목이 한국어로 진행되고 있었다. 교실을 지나갈 때마다 학생들의 호기심 어린 눈과 내 눈이 마주쳤다.

다음으로 이번 주에 있을 예술제 연습 현장에 들렀다. 한국무용, 국악기 연습이 한창이었다. 해금을 연주하는 한 여학생에게 ‘아리랑’을 켜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그녀는 미소 짓더니 능숙한 솜씨로 아리랑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활 끝에서 퍼져 나오는 곡조가 반가우면서도 슬프게 들리는 것은 왜일까. 아리랑을 듣고 이토록 콧등이 시큰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견학을 마치고 떠날 시간이 되었다. 학교 전경을 찍으려고 운동장 가운데에 서니, 나를 본 남학생들이 삼삼오오 창가로 모여들었다. 장난스러운 웃음을 가득 머금고 사진을 찍어달라는 듯 손짓하고 있었다. 통일된 나라에서, 이념의 갈등 없이 이들을 만나는 게 언제쯤일까. 가슴을 울렸던 아리랑의 해금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맴돈다. ·

▲ 조선학교 교실 전경

▲ 학생들이 배구연습을 하는 체육관에 북한 체제 선전 문구가 크게 적혀있다.

▲ 예술제를 위해 부채춤을 연습하고 있는 학생들

▲ 김일성, 김정일이 보낸 편지와 상장

▲ 북한에 수학여행을 다녀와 찍은 사진들

▲ 3학년 교실에 붙어있는 표어

▲ 북한 건국일을 기념해 학생들이 만든 선전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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