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 D-5] ‘깜짝 일정은 내 습관’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에서 ‘깜짝 등장’으로 남측을 놀라게 했던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3일간의 일정중에 불시 등장하는 경우가 몇차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여느 사회주의 국가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김 위원장의 일정은 철저하게 ‘대외비’에 부쳐져 있는데다 북한이 조지 부시 미 대통령에 의해 ‘악의 축’으로 내몰린 뒤엔 그의 동선이 더욱 비밀스러워졌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2000년 6월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습관처럼 굳어진 이런 행보를 여실히 보여줬다.

김 위원장은 김 전 대통령이 특별기로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6월 13일 사전 예고없이 공항에 나타나 김 전 대통령을 맞은 뒤 함께 승용차에 탑승해 백화원초대소까지 가서 첫 정상회담을 갖는 ‘파격’을 연출했다.

공항 출영 자체에 대해선 남측 당국자들도 가능성을 예상하고 있었지만, 사전에 양측간 합의됐거나 통보된 의전은 아니었다.

이튿날에는 김 전 대통령이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만난 뒤 옥류관에서 점심을 먹던 중에야 북측이 두번째 정상회담 시간과 장소를 “오후 2시 백화원초대소”라고 통보하는 바람에 남측이 “촉박하다”며 오후 3시로 연기시키는 일도 벌어졌다.

김 위원장은 마지막날에도 예정에 없던 고별 오찬을 마련하는가 하면 김 전 대통령을 환송하기 위해 순안공항까지 배웅하는 ‘깜짝 일정’으로 일관했다.

김 위원장은 둘쨋날 정상회담이 장시간 이어지는 사이 김 대통령과 담소하면서 자신이 너무 말을 많이 한 데 대해 “경거망동한 것 같습니다”라고 예의를 차리기도 했으나 일방적인 일정 진행에 대해서는 사과 등의 언급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도 노무현 대통령의 특사자격으로 2005년 6월17일 평양에서 김 위원장을 만나던 날 오전 7시30분께 숙소인 백화원초대소 구내에서 조깅을 하다 “오전 11시 대동강초대소”라는 면담 시간과 장소를 통보받고 황급히 이동해야 했던 경험을 최근 발간한 ‘개성역에서 파리행 기차표를’이라는 자신의 책에서 소개하기도 했다.

이런 김 위원장의 예측 불허 행보는 2차 정상회담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1차 선발대장인 이관세 통일부 차관이 지난 21일 정상회담 일정과 의제 조율을 위한 방북 결과에 대해 “80% 정도는 대략 정리됐다”고 밝혀 20%를 남겨둔 점도 이런 관측을 뒷받침한다.

노 대통령은 내달 2일 평양에 도착한 직후 김영남 상임위원장이 주최하는 환영식과 만찬에 참석하는 데 이어 릉라도 5.1경기장에서 아리랑공연을 관람하고 이튿날에는 김 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하고, 마지막 날 참관지 방문과 김 위원장이 주최하는 오찬을 각각 가질 예정이라고 이 차관은 설명했다.

그러나 남북 정상간 첫 대면 장소나 정상회담 횟수, 아리랑공연 관람이나 참관지 방문시 김 위원장의 동행 여부, 김 위원장의 환송식 참석 여부 등은 알려지지 않았다. 김 위원장의 깜짝 등장이 이뤄질 수 있는 대목들이다.

이 때문에 김 위원장의 깜짝 등장 횟수가 노 대통령에 대한 대접 정도의 가늠자로, 또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 대통령에 대한 대접의 비교 잣대로 여론의 관심사가 될 수도 있다.

청와대 관계자가 26일 기자들과 만나 “2000년 정상회담 때는 만남 자체가 처음이었다”며 “그때 기준을 갖고 북측의 성의를 판단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고 주문한 것도 ‘접대 비교’가 회담 본안을 가릴 가능성을 경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정상회담 역시 북핵 6자회담과 맞물려 북핵문제나 한반도 평화체제의 앞날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때문에 세계 언론이 주목하는 ‘빅 이벤트’라는 점에서, 김 위원장이 1차 정상회담 때 못지 않게 극적으로 자신을 ‘노출’시킬 기회로 삼을 가능성이 크다.

국책연구기관의 한 북한전문가는 “김 위원장이 정상회담에 나서겠다고 결정한 것은 대외적으로 적극 드러내겠다는 결심이 선 것”이라며 “김 위원장은 이미지 조작에 능한 만큼 ‘불량국가 지도자’가 아닌 ‘평화 이미지’를 심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그러나 “북한-시리아간 핵협력 의혹과 베이징 6자회담 진전 등 주변 상황에 따라 김 위원장이 노출의 정도를 조절하려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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