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 D-4] 北, 6.15이래 南대통령 비난 자제

2004년 정부가 김일성 주석 10주기 추모대표단의 북한 방문을 불허하자 북한의 평양방송은 7월19일 “누가 북으로의 길을 막았는가, 그것은 노무현이라고” 모두 입을 모으고 있다며 노 대통령의 이름을 들고 “천륜을 거스른 자는 천벌을 면할 수 없다”고 맹비난했다.

당시 정부는 통일부 당국자의 논평을 통해 “그동안 정부가 여러차례 납득할 만한 입장을 밝혀왔음에도 북측이 조문방북 문제를 다시 거론하면서 정부를 비난하고 대통령까지 거론하고 있는 데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강하게 대응했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의 집권 이래 지금까지 북한의 언론매체가 노 대통령의 실명을 거론하며 직접 비난한 사례는 이때가 유일하다.

노무현 정부 출범 초기 대북송금 특검 때도 북한 매체들은 특검법을 발의한 한나라당에 비난의 초점을 맞췄으며, 노 대통령에 대해선 “남조선 현 당국자는 내외의 압력에 눌리워서 특검의 실시를 허용했다”는 정도의 언급에 그쳤다.

평양방송이 2004년 7월19일 조문단 방북의 불허를 비난할 때도 “노무현 정부가 6.15 공동선언에 도전하는 특검소동으로 못되게 굴더니”라며 특검에 대한 북한측의 ‘유감’을 다시 한번 드러내기는 했으나 노 대통령을 직접 가리키지는 않고 ‘노무현 정부’로 통칭했다.

남한 대통령에 대한 실명 비난이 북한 매체의 보도에서 거의 사라진 것은 2000년 6월 김대중 당시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간 정상회담이 계기가 됐다.

김대중 대통령 취임 초기 김 대통령을 ‘현 당국자’ 등으로 표현하던 북한은 98년 중반 들어서면서 ‘괴뢰 통치배’, ‘괴뢰 대통령’, “국민의 정부라고 곧잘 광고해 나서는 파쇼 광신자”, “김대중은 김영삼과 더불어 죄악의 쌍둥이로 기억될 것”이라는 등으로 험한 비난을 서슴치 않았다.

김 전 대통령의 대북 ‘햇볕정책’에 대해서도 북한 체제를 흔들고 시장경제를 강요하려는 의도로 민감하게 받아들이면서 2000년 3월까지만 해도 여러차례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었다.

노동신문은 99년 6월 ‘남조선 당국의 포용정책을 해부한다’는 제목의 논평에서 “포용정책의 실상은 한마디로 남조선의 썩어빠진 반인민적 식민지 제도를 공화국 북반부에까지 연장하겠다는 것”이라며 “망상”, “얼빠진 짓”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이러한 비난은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을 기점으로 거의 사라졌다.

북한은 남북간 각종 갈등 사안에 대해 김 전 대통령을 거론하지 않고 남한 당국 일반으로 돌려 비난했으며, 2002년 6월 서해교전 때도 비난 대상을 ‘남조선 군부’, ‘군 당국자’ 등으로 한정하고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인 비난을 삼갔다.

북한의 이러한 태도 변화는 2003년 2월25일과 26일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이 노 대통령의 취임식을 보도하는 것으로까지 이어졌다.

“북측 언론이 남측의 대통령 선거 결과를 보도한 적은 있지만, 취임식을 보도한 것은 처음”이라고 당시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특기했다.

조선신보는 “북한 주민들은 노 대통령의 향후 행보와 새로운 정권 출범에 큰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는 말로 노 대통령의 대북정책에 대한 북측의 기대를 간접 전달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북송금 특검법 공포를 계기로 노무현 정부에 대한 북측의 기대에 찬 시선은 싸늘해졌고, 2004년 김일성 주석 10주기 조문단의 방북 불허, 한총련 관련자 구속 등의 사건이 발생하면서 노 대통령에 대한 불만이 커져가, 북측 관계자들은 남측 관계자들과 비공개 자리에서 불만을 털어놓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노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북 발언과 정책을 비교해보면 북한 입장에선 노 대통령에게 더 많은 불만이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북한 언론매체들은 지금까지 평양방송 보도 한차례를 제외하곤, 불만 표시 때 ‘참여정부’, ‘남조선 당국’, ‘남조선 당국자들’, ‘남조선 현 정권’이라고 두루뭉술하게 표현했고, 극렬해봤자 ‘남조선 파쇼당국’ 수준에 그쳤다.

범민련 남측본부 전 의장에 대한 간첩혐의 적용에 “남조선 당국이 참여정부라는 명패와는 달리 보안법을 도구로 파쇼화의 길로 나가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라고 비난하는 식이다.

최근 을지포커스 한.미 합동군사연습에 대한 비난 때도 “남조선 군부 호전광들”이라거나 “남조선 당국”이라는 표현만 썼지, 김정일과 회담을 앞둔 노 대통령에 대한 직접 언급은 피했다.

북한은 2004년 노 대통령에 대한 탄핵사태가 벌어졌을 때 장문의 ‘조국통일연구원 진상공개장’을 발표, 경위와 배경을 상세히 분석하면서 “이번 탄핵 사태는 자주.민주.통일로 나가는 대세의 흐름을 차단하고 역사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려 잔명을 부지해보려는 수구세력들의 극히 시대착오적인 반란극”이라고 주장했었다.

2002년 12월 대선 결과에 대해서도 북한은 “6.15공동선언을 반대하고 반공화국 대결을 고취하는 세력은 참패를 면치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했다.

북한이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래, 남북간 갈등 사안이 생겨도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직접 비난을 피하는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