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 D-1] 추진 과정 결산

정부가 지난 8월 초 남북정상회담 개최 합의사실을 발표한 이후 약 2개월이 지난 1일 현재 남북은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 구체적인 회담 일정을 제외하고 대표단의 오.만찬 일정, 참관지, 환영행사, 특별수행원 간담회 일정 등 세세한 부분까지 합의했다.

한반도 평화정착를 위한 또 하나의 중요한 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되는 2007년 남북정상회담의 추진과정을 되짚어본다.

◇ 정상회담 개최 합의까지 = 북한의 핵실험 등으로 한동안 잠잠하던 남북정상회담 필요성이 정치권과 사회 일각에서 다시 불거지기 시작한 것은 북핵 6자회담에서 ‘2.13합의’가 도출되면서 부터다.

지난해 7월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 후 정체됐던 남북관계가 2.13 합의로 다시 활기를 찾기 시작하자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남북관계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이러한 주장의 저변에는 한반도 문제가 북.미 협상과 6자회담에 끌려가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남북, 더 엄밀히 말하자면 남측이 나름의 주도권을 가져와야 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지난 5월 말 열린 21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김만복 국정원장을 통해 권호웅 북측 단장에게 2차 정상회담 의사를 타진했고 이어 지난 7월 초 북측에 남북 고위급 접촉을 전격 제안한 후 극도의 보안 속에 정상회담을 추진했다.

정부가 고위급 접촉을 제안한 시점은 2.13 합의 이후 난관에 봉착했던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가 해결된 직후였다.

6월말 BDA 문제 타결→7월초 김만복 국정원장과 김양건 북한 통일전선부장 간 접촉 제안→7월29일 북측의 김 원장 방북 초청 등 프로세스를 통해 정상회담 추진을 위한 ‘은밀한’ 논의가 진행된 것이다.

김 원장은 지난 8월 8일 정상회담 개최 사실을 발표한 기자회견에서 “북측의 초청으로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방북해 정상회담 개최 합의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김 원장이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8월 2∼3일에 이어 4∼5일 2차례에 걸쳐 비공개로 북한을 방문, 북측과 남북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했다는 게 정부의 공식 발표다.

김 원장은 1차 방북에서 김 통전부장으로부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위임에 따른 중대 제안 형식으로 ‘8월 하순 평양에서 수뇌상봉을 개최하자’는 제의를 받았고 2차 방북에서 노 대통령의 친서 전달과 함께 북측과 남북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공식 발표에도 불구하고 김 원장이 방북하기 전부터 북측과의 ‘물밑접촉’을 통해 남북정상회담이 은밀히 추진됐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남측이 2005년 정동영 당시 통일부 장관의 방북을 계기로 남북정상회담 개최문제를 논의한데 이어 지난해 7월 북한의 미사일 실험발사 직후 북한의 핵실험을 막고 6자회담 복귀를 촉구하기 위해 다시 정상회담을 추진했다고 공개했다.

◇ 합의 발표 후 회담 성사까지 = 대선을 4개월여 앞둔 시점에서 정상회담 개최가 전격 발표되자 한나라당을 비롯한 보수 정치권은 정상회담이 대선에 활용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일각에서는 정상회담을 차기 정권에 넘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고 정상회담을 열더라도 북핵문제 해결에 중점을 둬야한다는 요구도 끊이지 않았다.

특히 서해 북방한계선(NLL) 재설정 문제가 정상회담 의제의 하나로 논의될 가능성이 대두되면서 국민들 사이에 보혁 갈등이 초래되는 양상을 보였고 정부 내에서도 NLL이 ‘안보 개념’이냐 ‘영토 개념’이냐를 두고 통일부와 국방부, 국정원 등이 미묘한 입장 차이를 보이는 등 혼선이 빚어지기도 했다.

아울러 이번 정상회담의 중요한 의제로 다뤄질 남북경협이 대규모 대북투자 합의로 이어질 경우 차기정권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런 지적에 대해 정부는 ‘경협을 통한 평화’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노 대통령은 9월 초 “차기정권에 부담을 주는 합의는 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이렇게 정상회담의 시기와 의제를 두고 공방전이 벌어지는 동안 정상회담 준비는 착실히 진행됐다.

남북은 지난 8월 14일 준비접촉과 분야별 실무접촉을 통해 경의선 도로를 이용한 노 대통령의 육로방북, 대표단 규모 등 대부분의 협의사항에 합의했다.

그러나 북한에 내린 집중 호우로 당초 8월 28일부터 열릴 예정이던 정상회담이 한달 이상 연기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이를 두고 정상회담을 통해 대선에 영향력을 미치려는 북한의 의도가 드러났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지난달 18일 평양을 방문한 1차 선발대는 남측 대표단의 숙소와 참관지, 회담장 등을 둘러보고 북측과 대표단의 일정과 동선 등을 조율한 끝에 대강의 정상회담 그림을 그려왔다.

뒤이어 27일 방북한 2차 선발대는 아리랑 공연을 직접본 후 ‘민감한 내용이 없다’는 보고를 해왔으며 노 대통령의 군사분계선(MDL) 도보 월경 등 마지막 미합의사항을 최종적으로 마무리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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