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 3일저녁부터 마라톤 조율 거쳐 10.4선언 탄생

‘2007남북정상회담’ 결과를 담은 10.4 공동선언은 3일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간 오후 회담이 끝난 직후 시작돼 심야 협의를 거쳐 4일 발표 직전까지 남북 양측 실무자간 마라톤 조율을 통해 만들어졌다.

2000년 정상회담을 비롯해 7.4 공동성명에서부터 지금까지 남북간 각종 합의문은 단어 하나에 이르기까지 일반적인 국가간 관계에서보다 한층 예민한 사안이기때문에 늘 진통을 겪어야 했다.

합의문의 뼈대는 3일 오전과 오후 두 차례 총 4시간가량 나눈 노 대통령과 김 위원장간 회담 내용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서 도출된 ‘6.15공동선언’도 김대중 당시 대통령과 김 위원장간 대화 내용을 골자로 이뤄졌다.

특히 양 정상이 회담 시간의 절반이상 할애했던 통일문제에 대한 논의는 공동선언 2항의 ‘낮은 단계 연방제’로 구체화됐다.

이번에도 남북 양측의 실무자들은 3일 오후 회담을 마치고 곧바로 합의 문안의 조율작업에 나섰다.

합의문 조율에 1차 정상회담 때는 우리측에서 서훈 국정원 3차장과 이봉조 청와대 통일비서관, 김형기 통일부 정책실장 등이 참여했다. 정상회담 내용에 대한 정확한 파악을 위해 당시 통일부 김천식 정책총괄과장이 회담장 후열에 배석했었다.

특히 회담에 배석했던 임동원(林東源) 당시 국정원장은 실무자들의 합의문 협의 작업을 돕기 위해 회담장에서 수시로 메모를 밖으로 전달했었다.

북측에서는 림동옥 통일전선부 제1부부장과 현재 장관급회담 북측 단장인 권호웅 내각 책임참사 등이 협의에 참가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회담도 2000년 정상회담과 유사한 과정을 거쳐 선언문이 만들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기록을 위해 회담에 배석한 조명균 청와대 안보정책비서관이 직접 들은 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회담 내용을 바탕으로 합의문 조율이 시작됐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서훈 3차장과 고경빈 통일부 정책홍보본부장 등이 조 비서관과 함께 합의문 조율을 위한 북측과 협의에 참여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이번 정상회담을 만든 김만복 국가정보원장과 김양건 북한 통일전선부장이 각각 남북 조율팀을 지휘하면서 남북간 최종 조율 책임도 졌을 것으로 보인다.

김만복 원장은 3일 노 대통령 주최 만찬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청와대 관계자는 “노 대통령과 김 위원장간 서명할 합의문 작성때문에 불참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북측에서는 유일한 배석자인 김양건 통일전선부장과 함께 최승철 통전부 부부장 등이 합의문안 조율에 참여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3일밤 평양 현지 기자간담회에서 “오늘 아마 저녁부터 본격적인 선언 문안에 대한 협상이 시작될 것”이라며 “이는 장관급에서 할 수도 있고 그것보다 좀 낮은 급에서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천 대변인은 이번 “합의를 크게 볼 때는, 여태껏 남북간에 합의된 것 중에서 이행되지 않았던 것들의 실행력을 더 높이고 그것을 좀더 구체화하는 그런 결과라고 말하는 것이 정확하지 않은가 생각한다”고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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