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되기까지 남측에서는 김만복 국가정보원장이, 북측에서는 김양건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이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공개됐다.
김 원장은 8일 청와대에서 남북정상회담 개최 사실을 발표하면서 이달 초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두차례 방북,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하는 등 북측과 협의를 통해 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우리 측은 지난 달초 김 원장과 김 통일전선부장간 고위급 접촉을 북측에 먼저 제안한 것으로 발표됐다.
이렇 듯 지금까지 공개된 2차 정상회담 추진경과를 보면 국정원이 주도적으로 북측과 접촉을 통해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것으로 보인다. 2000년 1차 정상회담 당시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이 특사 역할을 했을 때와 비교되는 대목이다.
김 원장은 지난 5월말 서울에서 개최된 21차 남북장관급회담 당시 회담장을 비공개로 방문한 후 청와대를 찾은 행적이 언론에 포착돼 정상회담 추진을 위한 행보가 아니냐는 관측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김 원장은 2006년 11월 45년 만에 첫 공채 출신 국정원장에 오른 인물이다. 그동안 국정원장은 군 출신이 주류였고 검찰이나 정치인 출신도 적지 않은 상황에서 내부 출신 원장 기용은 당시부터 주목을 받았다.
김 원장은 정통 PK 출신으로 이력에서는 엘리트 냄새가 강하게 풍겨나온다. 부산 기장에서 태어나 지역 명문인 부산고를 거쳐 서울대 법대를 졸업, 1974년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에 발을 들여놨다.
그는 국정원 내에서 국내, 해외, 북한 분야를 거친 만큼 정무적 감각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실제 1998∼1999년 남북한과 미국, 중국이 참여한 가운데 긴장완화와 평화체제 문제를 논의한 3∼6차 4자회담에 우리측 대표로 뛰었고 2000년 6월에는 남북정상회담 준비를 위해 평양을 다녀온 경력이 있다.
세종연구소 파견 시절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과 연을 맺은 그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의 정보관리실장으로 당시 이종석 NSC 사무차장과 호흡을 맞추면서 노무현 대통령의 눈에 든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라크 파병을 놓고 논란이 이어지던 가운데 남들이 기피하던 이라크 파병안 수립을 위한 제2차 정부합동조사단장을 맡은 게 그에겐 오히려 행운이었다. 2003년 11월 대통령에게 올린 관련 보고서가 객관적이고 공정했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그가 2004년 2월 국정원 기조실장으로 복귀하는 과정에서도 대통령이 직접 그를 적임자로 찍었다는 후문이 있었다.
김 원장 이외에 국정원 내에서는 서훈 대북 담당 3차장이 일정 부분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서훈 차장은 2000년 1차 정상회담 추진과정에서도 박지원 특사와 통행, 북측 인사들과 접촉했으며 이후에도 꾸준히 대북 접촉선을 유지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남측의 김만복 원장과 회담을 갖고 이번 정상회담에 합의한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최측근 실세다.
2000년 정상회담 때는 김 위원장의 총애를 받던 김용순 당 비서가 막후에서 지휘를 하고 송호경 당시 부부장이 전면에 나섰지만 이번에는 김양건 부장이 직접 나서 정상회담을 합의함으로써 앞으로 북한권부내에서 위상이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 권력구조의 특성상 김 위원장에게 직보를 할 수 있느냐의 여부가 성패를 좌우하는 만큼 김양건 부장은 김 위원장의 신임을 바탕으로 ‘김-김 라인’을 구축해 남북문제에서 실시간으로 최고통치자의 결심을 받아낸 것으로 보인다.
김 부장이 통일전선부장에 임명된 이후 남북연결열차 시험운행이 이뤄졌고 2.13합의 미이행을 이유로 남측에 식량지원 보류입장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장관급회담이 열리는 등 비교적 남북관계가 순항함에 따라 ‘김양건 효과’에 따른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기도 했다.
김 부장은 노동당 국제부에서 일을 시작해 국제부 부부장, 국제부장, 국방위 참사 등을 거치면서 대 중국 외교와 6자회담에도 깊숙이 간여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고 국제정세 및 북미관계와 조율된 남북관계를 추진해 나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는 김정일 위원장과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남북정상회담 개최에 원칙적으로 합의한 2005년 6.17면담에도 배석했고 지난 3월에는 김 위원장의 중국 대사관 방문에도 동행했으며 국방위 참사 자격으로 6자회담과 관련된 사안을 실시간으로 챙겨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김양건 부장은 김용순 전 부장 등과는 달리 외향적이라기 보다는 전문 외교관료 출신으로 조용하면서도 업무를 꼼꼼히 챙기는 학자 스타일로 알려졌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