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중동포 기자 평양방문기] ①선양서 30분 거리

중국 동포신문인 흑룡강신문 인터넷 판이 24일 ‘까치가 우는 평양의 아침’이라는 제목으로 평양방문기를 게재했다.

박일 부총편집장을 단장으로 한 흑룡강신문사 일행 5명은 자매결연한 평양신문사의 초청으로 지난 9월17일부터 5박6일간 방북해 평양시와 남포, 평양시 통일시장 등을 둘러 보았다.

조선족 기자의 눈으로 추석을 쇠는 평양시 모습과 주민들의 활기찬 모습, 대풍이 기대되는 올해 작황과 2002년 7.1 경제관리 개선조치에 따른 활성화 된 시장상황 등을 자세하게 전해 눈길을 끌었다.

신문은 2년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이루어지는 이번 교환방문 기간 “금수강산을 관광함과 아울러 특별기자단의 시각에서 여러 곳을 두루 돌며 ‘고난의 행군’과 강행군을 거쳐 ‘험난한 길 웃으며 가는’ 조선 인민들의 굳센 모습을 목격했으며 신(新) 경제개혁으로 새롭게 약동하고 나날이 변화 발전하는 평양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고 밝혔다.

조선족 기자의 평양방문기를 입국 과정과 추석 쇠는 모습, 평양 거리 모습, 경제 상황 등 4편으로 정리해 소개한다.

『9월17일 오후, 우리 일행은 심양(瀋陽) 도선공항에서 탑승수속을 하고 평양으로 가는 고려항공에 올랐다. 마침 이 무렵 평양에서 ‘아리랑’ 공연이 한창이라 심양에서 평양으로 가는 여객이 만원이어서 열차표, 비행기표를 모두 일주일전에 예약을 해야만 가능했다.

공항출구에서 비행기로 옮기느라 공항의 셔틀버스에 올랐는 데 우연히 올해 봄 연길(延吉)에 출장갔을 때 만났던 기업인 리모씨를 만났다. 알고보니 그도 몇몇 연길의 기업인들과 함께 평양에 아리랑 공연을 보러 떠난다는 것이었다.

버스안을 둘러보니 김일성 주석 마크를 단 조선인들 몇명을 제외하고 조선족, 한족을 포함해 중국인이 대부분이고 재일 조선동포인듯 하는 관광객 몇명도 보였다.

항공기 입구에 들어서는데 승무원이 평안도 말씨로 인사를 하는데 자주 들어오던 “안녕하세요”가 아닌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이다. 과연 억양과 단어 사용이 좀 다르다는 점을 귀로 확인한 셈이다.

조선에서는 걸상띠(안전벨트), 승강기(엘리베이터), 안내원(가이드) 식으로 될수록 고유의 우리 말을 사용하고 자주 쓴다는 것이다. 외국어 표기는 컴퓨터, 여행코스, 까까오(아이스크림 종류) 등 몇 개뿐인 것 같다.

기내에서는 손님들에게 홍보물로 최근 출간한 로동신문과 중국어, 영어, 조선어로 된 ‘조선’ 화보를 나누어 주고 음료수로 사이다, 커피, 생수 등을 제공하였는데 모두 조선산이라 기내서부터 조선에 들어선 느낌이다.

심양에서 평양까지의 비행은 반시간이 좀 넘었는데 비행기가 이륙한 지 얼마 안돼 바로 다시 착륙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 거리를 위해 준비되고 움직인 시간이 오히려 너무 길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참고로 항공을 이용해 조선으로 갈 때 1인당 흰 술 2병만 휴대가 가능하고 핸드폰은 휴대가 금지되어 있었다. 비행기에서 내려 곧바로 1층의 출구로 나오니 평양신문사 김 부주필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마중을 나왔다.

비행기에서 내리자 우리 대표단 일행은 함께 사진을 찍고 호텔로 가기 전 첫 순서로 조선혁명박물관을 찾았다.

평양의 젊은이들은 결혼을 할 때면 언제나 이곳을 찾아 김일성 주석 동상 앞에 꽃다발을 올린다는 것이었다. 시간이 해가 거의 저물어갈 무렵이었는데 광장에서 깨끗한 치마저고리 차림을 한 여성 두명이 광장의 바닥을 청결(청소)하는 모습이 보여 물으니 퇴근길에 자원봉사를 하는 시민이라고 한다.

벤츠 승용차와 도요다 승합차는 우리를 싣고 량강호텔에 도착했다. 17층짜리 호텔은 대동강과 보통강의 합수목에 위치했다고 해서 ’량강’이라 했으며 평양의 1급호텔이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