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급회담] ‘평화 논의’ 불 당기나

제21차 남북장관급회담이 29일 개막함에 따라 이번 회담을 계기로 남북이 한반도 평화정착 문제를 주도적이고 본격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는 정부가 `평화정착’을 이번 회담의 최우선 의제로 잡은데 따른 것으로, 이재정 통일부장관도 지난 16일 “한반도평화란 최고가치를 형성하기 위한 새롭고 구체적인 의제를 다루길 기대한다”고 밝힌데 이어 29일에도 “평화정착을 위해 한 단계 발전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물론 평화정착이 화두로 등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금까지 남북회담에서 항상 제1목표는 평화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1992년 발효한 남북기본합의서의 핵심도 평화였고 6.15공동선언 이후 확대된 경제협력도 평화를 염두에 두고 진행된 것이다.

나아가 제1~2차 남북장성급회담에서 `서해상 우발적 충돌 방지와 군사분계선 지역의 선전활동 중지 및 선전수단 제거 합의서’를 만들어 2005년에는 선전물 철거를 끝내고 서해 군사핫라인을 가동한 것은 대표적 사례다.

하지만 이번 회담에 임하는 정부의 각오는 종전과는 달라 보인다.

우선 평화정착을 최우선 의제로 잡은 것도 과거와는 달라진 모습이다.

이는 그 동안 산발적이었던 평화담론을 본격화해 남북회담은 물론 남북관계 차원에서 집중적으로 다루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이런 움직임은 국내외 정세로 봐도 더이상 남북 사이의 평화 논의를 늦출 수 없다는 판단에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

6자회담에서 합의한 별도의 평화포럼이 출범하면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인 가운데 남북 간에도 가만히 기다리기보다는 보조를 맞춰야 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셈이다.

이를 통해 북측의 해상 경계선 재설정 주장으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에도 힘을 실어주겠다는 의도도 엿보인다.

통일부가 올해 업무계획에서 남북 군사당국 간 대화의 정례화를 통해 `군비통제’의 토대를 마련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도 같은 맥락이다.

또 그동안 남북관계가 경협 일변도로 전개되면서 상대적으로 미미했던 정치.군사 분야의 평화 논의와 불균형을 초래한 점도 감안된 것으로 보인다.

경협이 군사적 긴장 완화를 이끌어낸 측면이 있지만 경협 현안들이 정치.군사 분야의 뒷받침을 받지 못하면서 일종의 병목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정부가 검토 중인 평화 정착을 위한 각론도 무르익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각론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상주대표부 설치 ▲국방장관회담 개최 ▲군사력 운용통제 및 상호검증 등 군비통제 ▲남북 국방장관 간 핫라인 개통 ▲대규모 부대이동과 군사연습의 상호통보 및 참관 ▲우발적 무력충돌 방지조치 등 긴장완화 장치 마련 ▲군 인사 교류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이들 방안은 대부분 남북기본합의서 제2장을 구체화한 `불가침 부속합의서’에 나와 있는 것들이다. 이 부속서는 무력불사용, 분쟁의 평화적 해결 및 우발적 무력충돌 방지, 불가침 경계선 및 구역, 군사직통전화 설치.운영, 남북군사공동위원회 운영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정부는 특히 해상 북방한계선(NLL) 충돌을 막기 위한 방안으로 NLL 해역에 바다목장 조성을 검토하는 것은 물론 금강산.설악산 연계관광, 비무장지대내 경제공동구역 및 평화시(市) 건설 등도 연구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지향점은 일단 평화체제에 맞춰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평화체제를 위한 동북아 차원의 논의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법적 평화 확립에 있다면, 남북 간에는 상대를 향한 총을 내려 실질적 평화체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당위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의 이런 입장에 북측이 호응할 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특히 이번 회담의 경우 쌀 차관 북송작업이 사실상 유보되면서 북측의 강한 반발이 우려되는 상황이어서 `거대 담론’에 속하는 평화정착 논의를 제대로 꺼낼 수 있을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북측은 2005년 12월 제17차 장관급회담 때부터 한미 합동군사연습 중지, 참관지 제한 및 국가보안법 철폐 등을 매번 내세우며 우리측을 압박해온 점에 비춰 우리측 제의에 회의적인 반응을 내비칠 공산이 크다.

오히려 남북 간 평화논의의 선결 요건으로 한미군사연습 중단과 주한미군 철수 등을 주장하거나 서해 해상경계선 재설정 문제부터 매듭짓고 넘어가자고 맞설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런 상황을 잘 아는 정부로서도 북한의 호의적 반응이나 당장의 성과를 기대하는 것 같지는 않다.

평화정착이 갖는 상징성이나 무게가 최고 지도자의 `통 큰’ 결단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일단 이번 회담을 통해 `멍석’을 깔아놓고 향후 남북 정상회담때 결단의 기회를 엿보는 게 아니냐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런 전반적인 흐름에 비춰 이번에는 평화정착 문제를 향후 남북회담에서 다룰 화두로 던져 공론화하는 것만 해도 소기의 목표치를 달성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게 정부 안팎의 분위기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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