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급회담] 쌀·비료, 6자회담 카드되나

제20차 남북 장관급 회담을 계기로 향후 대북 쌀.비료 제공 문제가 6자회담과 연계되는 양상이 굳어질지 관심을 모은다.

남북은 제20차 장관급 회담에서 대북 쌀.비료 지원의 재개시점을 명시하지 않았다. 다만 오는 4월18~21일 경제협력추진위원회(경협위) 회의를 갖기로 함에 따라 쌀 문제는 그 때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북측은 이번 회담에서 쌀과 비료 지원의 양과 시기에 대해 구체적인 요구사항을 제시하면서 인도적 지원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표시해달라고 요구했지만 남측은 쌀 지원 규모 등 세부사안은 경협위를 통해 논의하자는 입장을 고수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6자회담이 방코델타아시아(BDA) 금융제재 문제로 공전을 거듭하던 지난 해 7월 북한이 미사일 시험발사를 감행한 이래 유보됐던 대북 쌀.비료 제공이 이번 장관급 회담을 계기로 복원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경협위 개최 일정을 따져보면 북한이 영변 핵시설 폐쇄.봉인 및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 수용 등 `2.13 합의’상의 초기 조치를 제대로 이행하는지를 우선 지켜본 뒤 쌀.비료 지원을 재개하겠다는 우리 정부의 속내를 엿볼 수 있다.

2.13합의의 초기조치 이행 시한(60일내)이 4월 14일로, 경협위 일정은 그 후에 잡혔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번 장관급 회담을 계기로 대북 쌀.비료 제공이 6자회담의 진전과 연계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다시 말해 남북대화 채널이 복원되면서 쌀.비료 제공이 6자회담 틀 밖에서 6자회담 진전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일종의 카드가 됐다고 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애초 정부의 기본 입장은 남북 관계와 6자회담 트랙을 형식적으로나마 분리한다는 것이었다. 이재정 통일장관도 올 1월8일 연합뉴스와 가진 회견에서 `남북 간 협력사업이 6자회담 테이블에 오를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기본적으로 남북회담이라는 틀 자체가 6자회담에 종속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부, 그 중에서도 남북관계 주무부서인 통일부는 쌀.비료 제공을 복원하는 문제는 남북관계 복원의 맥락에서 `카드’로 사용되어야지 6자회담 협상 테이블에 직접 올라가는 것은 곤란하다는 입장이 강했던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북핵 2.13 합의가 도출된지 이틀 후인 지난 달 15일 장관급회담 개최에 합의하고 장관급회담에서는 쌀.비료 제공의 로드맵을 2.13 합의의 이행시간표에 연계시키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 종전 입장에 미묘한 변화가 생긴 것 아니냐는 시각이 제기됐다.

장관급 회담 개막일인 지난 달 27일 워싱턴을 방문 중이던 한 정부 고위관계자가 “남북간의 쌀.비료지원은 작년 7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10월 핵실험에 의해 중단된 것으로, 6자회담과 상호영향을 받는 가운데 이뤄질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 같은 시각을 뒷받침했다.

북핵 문제 진전이 우리 외교.안보의 최대 과제로 상정된 상황이란 점을 감안하면 이 같은 입장 변화는 필연적인 결과라는 분석도 있다.

시각을 약간 달리해 지난 해 이종석 통일장관의 낙마 이후 외교안보라인이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의 사실상 `원톱체제’로 재편되면서 남북관계를 국제적 시각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강한 외교부의 논리가 힘을 받고 있다는 하나의 증거가 아니냐는 분석을 하는 이들도 있다.

어찌됐건 쌀.비료의 6자회담 카드화 경향에 대해서는 긍정적 시각과 부정적 시각이 공존하고 있다.

긍정론자들은 쌀.비료 문제가 비록 6자회담 테이블에는 올라가지 않더라도 한국으로서는 6자회담의 진전 상황에 따라 북한을 설득하는데 쓸 `카드’를 회복한 셈이기에 비핵화라는 당면과제 해결의 측면에서 좋은 일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쌀.비료 제공과 같은 인도적 대북 지원이 6자회담 진전과 맞물려 가는 것이 옳지 않다고 보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남북관계 연구실장은 “쌀.비료 문제는 남북간 각종 대화를 가능하게 하는 토대인데 우리가 지난해 7월 미사일 발사 후 `제재’의 카테고리에 넣은 것 부터 문제였다”며 “남북관계의 독자성 없이 국제사회의 움직임에만 너무 보조를 맞추다보면 북핵 해결과정에서 우리 목소리는 실종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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