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급회담] 시험대 선 이재정 장관

제21차 남북장관급회담이 1일 쌀 차관 제공 문제에 막혀 아무런 성과없이 종료되면서 이재정(李在禎) 통일부 장관도 시험대에 서게 됐다.

작년 12월11일 취임한 이 장관은 북핵 `2.13합의’라는 국제정세의 `훈풍’을 타고 지난 5개월여 간 북한 핵실험 이후 단절됐던 남북관계를 복원하고 지난달 17일에는 경의선.동해선 열차 시험운행을 성사시키면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등 비교적 순탄한 길을 걸어왔다.

하지만 열차 시험운행의 성과를 발판으로 남북관계를 한 단계 더 끌어올리겠다는 포부를 갖고 임한 이번 회담에서 이 장관은 `쌀 제공 약속을 지켜야 회담에 임할 수 있다’는 북측의 고집을 꺾지 못한 채 `빈손’으로 회담을 마쳐야 했다.

후속 회담 일정을 잡지 못했고 현재로선 쌀 지원을 가능하게 할 북핵문제의 진전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남북관계가 경색국면에 접어들 가능성이 있는 `위기’에 몰린 셈이다.

회담이 이처럼 성과없이 종료된 데는 이 장관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정부가 국민여론과 미국 등 국제사회와의 관계를 고려해 `대북 쌀 지원을 2.13합의와 사실상 연계한다’는 방침을 세운 상황에서 이 장관이 쌀 지원과 관련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극히 좁았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대북 쌀 지원의 첫 항차는 `합의’대로 이달 말에 보낸 뒤 나머지 물량은 북송을 늦추자는 의견을 내기도 했지만 정부 내 협의 과정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한반도 문제는 결국 남북의 문제이지 다른 사람이 풀어줄 문제가 아니다”(지난 7일 통일교육포럼 특강)는 소신을 펴 온 이 장관이지만 남북관계를 북핵문제와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결국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동정론’이 나온다.

하지만 북측의 반발이 충분히 예견됐음에도 이에 대한 준비가 소홀했던 것 아니냐는 질타는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정 장관은 회담 전 북측의 반발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쌀 지원에 합의한 지금과 (북한이 정부의 쌀 지원 보류 방침에 반발해 회담이 파행을 겪었던) 작년 장관급회담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며 회담에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밝히는 등 시종 낙관론을 폈다.

그러나 `쌀 차관을 제공하겠다. 다만 여러 사정상 유보되고 있다’는 논리만으로는 이 장관이 회담장에서 북측 권호웅 단장을 당해낼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남북 간에 합의한 것은 합의한대로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해 온 이 장관으로서는 `5월 하순 첫 항차를 출항시킨다’고 박혀있는 쌀 차관합의서가 발효된 상황에서 “약속을 지켜라”는 북측을 설득할 명분이 아무래도 부족했기 때문이다.

우리측이 지난달 쌀 차관에 합의하면서 북측에 “2.13합의 이행 여부에 따라 쌀 제공의 속도와 시기를 조절할 수 있다”고 강조하기는 했지만 합의서에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북측에 `남측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주장할 빌미를 줬다는 이 같은 선례는 향후 북측과의 협상에 나서는 통일부의 입지를 더욱 위축시킬 가능성이 있고 남북관계와 북핵문제를 사실상 연계시키고 있는 정부 기조까지 겹쳐 향후 이 장관의 입지를 더욱 좁아지게 할 여지도 있다.

정부 소식통은 “통일부 장관의 운명은 북한이 좌우한다는 말이 있는데 지금은 북한 못지않게 6자회담으로 대변되는 국제사회의 눈치도 봐야해 더욱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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