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상봉] 이모저모

사흘간 짧은 만남의 끝은 또 기약없는 이별이었다.

28일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추석계기 이산가족 상봉행사의 ‘작별상봉’은 눈물 바다였다. 60여년 만에 다시 만난 2박3일은 꿈처럼 지나가고 다시 ‘이산’이란 현실이 닥쳐왔다.

=작별상봉 시작=
0…작별상봉은 오전 9시5분 남측 가족들이 금강산호텔에 도착하면서 시작됐다.

북측 가족들은 15분정도 먼저 도착해 번호표가 세워진 둥근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기다렸다.

호텔 로비에서는 형형색색의 한복을 입은 북한 여성 20여명이 줄지어 서서 ‘반갑습니다’ ‘어서 오십시오’라며 남측 가족을 맞았다.

대한적십자사와 현대아산측은 전날 남측 가족이 계단에서 넘어져 머리를 다친 사고 때문에 이날은 계단 곳곳에 직원들을 배치해 고령 이산가족과 보행이 불편한 가족들을 도왔다.

=납북어부 남매 “이런 기회가 또 있는 것도 아닌데…”=
0…남측 노순호(50)씨는 작별상봉 자리에서 22년전 동진 27호를 탔다가 납북된 동생 성호(48)씨를 부둥켜안고 떨어질 줄 몰랐다.

아무 말도 못하고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던 누나가 안긴 채 가슴에 얼굴을 비비자 “이제는 눈물도 안 나온다”고 말하던 남동생도 눈물을 훔쳤다.

누나 순호씨는 “남매가 떨어져 살아야 하는 게 가슴이 아프다”며 “이런 기회가 또 있는 것도 아닌데”라며 울음을 쏟았고 동생 성호씨는 “누이는 통일이 오래 걸릴 것 같으냐, 통일은 이제 머지 않았다”고 달랬다.

남행 버스를 탄 누나 순호씨는 올케인 윤정화(44)씨와 조카 노충심(21)씨의 손을 잡고 “아버지 잘 모셔라. 올케만 믿고 간다”고 당부했다.

동생 성호씨 가족들은 누나를 보낸 자리를 한동안 떠나지 못했다.

=’타향살이’ `우리의 소원은 통일’ 목놓아 불러=
0…김영자(83)씨는 북쪽의 두 여동생과 조카를 끌어안고 흐느끼며 타향살이를 불렀다.

김씨는 “타향도 내 고향이 됐으니까 이제 내 사는 곳도 괜찮다”고 말했다.

큰 언니의 타향살이 노래가 끝나자 막내 동생 월선(66)씨가 ‘우리의 소원’을 부르기 시작했다.

어깨동무를 한 자매들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을 목 놓아 불렀다.

=80대 아버지, 60대 아들에 “나 업어달라”며 달래=
0…김기성(82)씨는 1.4후퇴 때 북한에 두고 온 아들 정현(63)씨에게 “어렸을 때 내가 업어줬으니까 오늘은 나를 업어줘 봐”라고 농담을 건네며 이별이 아쉬워 우울한 아들을 달랬다.

김씨는 검고 거칠어진 아들 손에 자신의 손을 대보며 안타까운 마음에 다시 한번 고개를 떨궜다.

김씨는 기자에게 “이 놈 코 위에 곰보 생긴 게 어렸을 때 마마 왔는데 이 놈 엄마가 코 위의 딱지를 떼서 생긴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김씨는 딸 정애(61)씨와는 볼을 비비며 작별의 아쉬움을 달랬다.

부녀는 한 손으로 서로 과자를 먹여주기도 했다.

=상봉 종료 안내에 금세 눈물바다=
0…9시50분 장내방송으로 ‘상봉을 곧 종료하겠습니다’라는 안내가 나오자 행사장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가족들이 서로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고, 남북 양측의 취재진과 행사진행 요원들이 부산하게 움직였다.

상봉을 마친 남측 가족들은 차례로 자리에서 일어나 계단을 이용해 1층 입구에 기다리던 현대아산의 버스에 올랐다.

10시5분 남측 가족이 출발준비를 마치자 북측 가족들은 호텔 입구에 한 줄로 늘어서 배웅 채비를 했다.

=북측 가족들, 버스에 매달려 오열=
0…작별 상봉장에서는 북측 가족중 젊은 편인 아들, 딸 등이 고령의 북측 가족들에게 “버스에 탄 가족 만나러 절대 앞으로 다가가지 마시라요”라고 당부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이는 북측 당국이 사전에 작별 상봉과 배웅 과정에서 통제에 따라 질서를 유지할 것을 당부한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남측 가족을 태운 버스가 10시10분께 시동을 걸자 3∼4m 밖에 늘어서 있던 북측 가족들이 버스에 매달려 오열했다.

남측 가족들은 차창 밖으로 손을 내밀어 북측 가족과 안타까운 이별을 했다.

북측 이흥선(77)씨는 남측 오빠인 이강영(81)씨에게 “오빠 잘 가요”라며 손수건을 흔들며 눈물을 흘렸다.

무전기를 든 북측 ‘보장성원(행사 진행요원)’들은 “차가 곧 출발합니다”라며 북측 가족들을 제지했고, 이를 취재하던 남측 사진기자들에게 고함을 치며 밀쳐내기도 했다.

하지만 물러났던 북측 가족들이 다시 차창으로 몰리면서 버스는 쉽게 떠나지 못했다./연합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