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로 본 북한] ⑤공산우방의 인식

소련과 동구권 국가 외교문서들에선 북한의 실정과 그 정치ㆍ경제적 원인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많이 눈에 띈다.
특히 소련이 앞서고 일부 동구권 외교관들이 이에 동조하는 양상이다.

그러나 소련 대사가 “북한의 문제는 모두 지나친 자존심에서 비롯됐다”라고 비판한 데 대해 헝가리 기록들을 분석한 헝가리 학자는 “약소국에 대한 초강대국의 오만의 표현”이라고 지적했다.

또 소련이 북한에 대해 중공업 부문 말고 농업과 광산 개발에 더 투자해야 하며 혼자 모든 것을 다 만들려 하지 말고 국제협력(분업)을 해야 한다고 주문한 것에 대해서도 북한의 경제계획이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은 맞지만 “북한 경제를 소련의 필요에 맞추려는 한 측면도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 비밀주의에 동구권 정보 공유로 대응 = (베른트 쉐퍼 논문) 북한은 소련, 중국, 동구권 국가들에 의존하면서도 내부 문제에 대해 이들 나라에 비밀로 했다.

그러나 동구권 국가들은 평양주재 외교사절끼리 정보 조각의 교환을 통해 퍼즐맞추기를 했다.

동독 대사관은 과거 동독에 살았던 북한인이나 북한인과 결혼한 동독인들을 통해 북한 정권의 특징적 현상인 두려움, 불신, 빈곤, 무지에 관한 정보를 입수했다.

(헝가리 발라즈스 스잘로타니 논문) 헝가리에서 교육받고 귀국한 북한인들이 헝가리 대사관과 접촉을 유지함으로써 헝가리 대사관은 북한의 내부 정책 정보 획득에서 소련에 필적했다.

북한에서는 개인숭배가 모든 잘못의 근원

▲동독 대사 “중국이 북한보다 솔직” = (1955년 10월26일 헝가리 대사관 보고서. 동독 대사의 말) 북한은 중국과 완전히 다르다. 북한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할 수 없는 일임을 분명히 알면서도 어떤 문제이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파괴적인 전쟁(6.25전쟁)을 겪은 후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어려움과 단점들에 관해 우방 사이에선 거리낌없이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중국은 이 점에서도 북한보다 훨씬 앞서 있다. 중국 사람들은 훨씬 솔직하고 개방적이다.

▲소련 “개인 숭배가 모든 잘못의 근원” = (1955년 4월13일 헝가리 대사관 보고서. 소련 고문관 A.M. 페트로프의 북한 내부 정세 분석) 북한 국내정치 문제는 비판과 자아 비판의 부재와 변함없는 개인숭배다.

비판은 하향식만 있고 상향식은 거의 없다. 비판은 김일성 동지만 한다. 김일성 동지가 아첨꾼과 출세주의자들에 둘러싸인 게 심각한 문제다. 개인숭배가 모든 실책의 주된 동시에 결정적인 요인이다.

(예컨대) 1954년 곡물 작황이 과장보고를 근거로 300만t으로 추산됐으나 최근 북한 정부도 실제론 230만t에 불과하다고 인정했다. 이조차 정확치 않을 가능성이 있다.정부는 잘못된 보고를 근거로, 야만적인 힘을 사용해 법률상의 23-27%가 아니라 최대 50%까지 농민들로부터 현물세를 징수했다.

그 결과 여론이 급격히 악화돼 농민계층으로부터 강한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적대 분자들이 이런 불만을 부채질했다. 자살이 빈발했다.

북한 정부는 2월 대책을 비밀 논의, 중국과 소련에서 곡물을 샀고(’우리가 알기로 20만t’이라고 헝가리 대사관은 보고), 강제 공출은 즉시 중단됐고, 공출된 일부는 농민들에게 대부 형식으로 돌려줬다. 문제가 완화되긴 했으나 근본적으로 바뀐 것은 아니다.

협동조합화 속도 역시 너무 빠르다. 1년만에 농민의 30%가 가입했다. 강제력이 동원된 경우도 일부 있다고 북한 당국은 인정했다. (아마 훨씬 많을 것이라고 헝가리 대사관은 주석을 담)

▲동독의 북한 비판 = (베른트 쉐퍼 논문) 1956년 4월 동독대사관은 미리 받아본 노동당 강령안에 ’평화적 방법’에 의한 통일 언급이 없는 점과 통일 방안에 관한 ’피상적인’ 개념을 지적하는 등 비판적인 보고서를 본국에 보냈다. 또 개인숭배 문제점에 대해 언급이 없는 점을 비판적으로 주목했다.

동독 외교부는 1962년 노동당 내부 소책자에 대한 평가에선 김일성이 백두산 항일 유격전을 날조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1963년 북한 노동당의 ’무장 항일투쟁기 혁명 전통’이라는 제목의 당 내부용 소책자에 대한 해설에서도 ’1930년에서 1945년 사이 한국 역사 왜곡’을 지적했다. 동독 대사관은 국제 결혼 터부시 등의 현상을 나치 독일에 비유했다.

▲소련 “북한의 지나친 자존심이 문제” = (1959년 12월16일 헝가리 대사관 보고서. 소련 대사의 말) 북한의 실정 대부분은 단 한가지, 북한 사람들의 지나친 국가 자존심때문이다. 경제분야 실책도 거기서 비롯된다. 북한 동지들은 다른 나라의 경험을 따르는 것을 싫어한다. 조언을 원치 않으며, 자신들 방식대로만 한다.

소련공산당 제21차 당대회 후 후루시초프는 모스크바에서 김일성을 만나 북한의 제1차 5개년 계획에 대한 설명을 듣고 그러한 거대한 계획을 오로지 노동자들의 역동성과 열정에만 의존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것이라고 비판했다.

후루시초프는 북한 동지들이 우방과 협력을 배제한 채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자체 생산하려는 것을 비판했다. 북한 동지들은 어떤 조치를 취할 경우 사전에 소련에 알려주지 않았다. (헝가리 대사관은 헝가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보고) 시도 등 지방정부에서 당위원회 권력 확대는 결국 (관료의) 전문성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는다./워싱턴=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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