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장성계 굿네이버스 대북협력팀장

“우리 단체가 할 일이 없어지는 것이 좋은 일이겠죠. 평양에 갈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2003년 3월부터 대북사업을 맡은 이후 잦을 때는 한 달에 서너 차례 북한에 간다는 국내 토종 국제구호단체 굿네이버스의 장성계(34) 대북협력팀장은 이달 11일 또 다시 수의사 3명과 함께 평양시 강동군 구빈리 협동농장을 찾는다.

굿네이버스가 보내준 200여 마리의 젖소를 키우며 우유를 생산하고 있는 현지 농장원들을 대상으로 선진화된 인공수정법을 교육하기 위해서다.

1990년대 중반 빵이나 의류 등 긴급구호품을 중심으로 대북 지원사업을 시작한 굿네이버스는 농축산 개발사업이 식량난의 구조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획기적 사업이라는 데 착안해 1998년부터 2005년까지 510마리의 젖소를 북녘에 보냈다.

“멸균설비 등 우유가공설비도 지원했습니다. 여기에서 생산되는 우유의 30-40%는 인근 육아원과 양로원에 무상 공급되고 일부는 평양 시내에서 판매되고 있는데, 우리가 한 일로 인해 누군가 혜택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뿌듯하죠.”

장 팀장이 몸을 담고 있는 굿네이버스는 농축산 개발사업 뿐만 아니라 열악한 환경에서 질병으로 고통받는 주민들을 위한 의료환경 개선 작업, 5세 미만의 아이들이 살고 있는 육아원 지원 사업, 평양시 강남군 지역개발사업 등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다.

지난달 9일 화촉을 밝힌 장 팀장은 북녘 곳곳을 다니며 모니터링도 하고 사업 의견도 나누다 보면 새색시보다 오히려 북측 사람들이 살갑게 느껴진다고 한다.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이 개최된 이후 민간 차원의 교류.협력이 자연스러운 일이 됐지만 아직까지 “왜 북한을 지원하느냐”는 따가운 시선이 존재하고 있어 허탈해질 때도 많다고 장 팀장은 말했다.

그는 대북사업과 관련한 소감을 묻는 질문에 “답답하다”고 말문을 연 뒤 “반세기 동안 떨어져 살아왔으니 남과 북은 삶의 양식 등에서 많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북한이 협력의 대상이 됐지만 아직도 양분된 시각이 존재하고 있고 ‘왜 그런 일을 하느냐’는 말을 들을 때 제일 힘들다”고 토로했다.

그래도 자신이 ‘평화의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할 때도 많다고 한다.

장 팀장은 “한민족, 한나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아직 무너뜨려야 할 장벽도 많고 넘어야 할 산도 많은데 민간 차원의 작은 노력이 통일을 앞당기는 촉매제, 전쟁을 막는 안전판 역할을 하는 것 같다”고 자부심을 표시했다.

그는 “점차 북녘 주민들의 얼굴빛이 활기차게 변하며 의욕적으로 바뀌고 있다. 매대 점원들도 지나가는 손님의 옷자락을 잡는 등 물건을 팔려고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며 북한의 변화가 저변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전했다.

북한의 14개 육아원 중 굿네이버스가 지원하는 평양.남포 등의 육아원도 장 팀장이 즐겨 찾는 장소 중 하나이다.

1990년대에는 정말 뼈만 앙상하게 남은 아이들이 있었다는데 요즈음에는, 물론 튼튼하지 않아도 통통하게 살이 오른 모습을 보면 기분이 참 좋다는 것이 장 그의 전언이다.

장 팀장은 “쌀을 지원하거나 분유.약 같은 것을 갖다주지 않는 상황이 됐으면 좋겠다. 경제 순환 사이클이 살아나는 시스템을 만드는데 힘을 쏟아야 한다”며 환하게 웃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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