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北자동차 대부 박상권 평화자동차 사장

지난 21일 오후 중국 선양(瀋陽) 타오셴(桃仙)국제공항에서 만난 박상권(56) 평화자동차 사장은 공항 뷔페식당 한 구석에서 양복 상의까지 벗어 제친 채 백지에 뭔가를 열심히 적느라 바쁜 모습이었다.

박 사장은 이날 오전 평양을 출발해 신의주를 거쳐 단둥(丹東)에 도착한 뒤 서울로 가는 비행기를 타러 선양으로 들어왔다. 지난 11일 평양에 들어가서 이번에는 열흘 만에 북한을 빠져 나왔다.

박 사장은 이번이 122번째 북한 방문이었다. 남들은 한 번도 어렵다는 신의주-단둥을 거쳐 북한을 드나든 것만 무려 20여 번이나 된다.

북한에서 자동차 조립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박 사장은 이날 연합뉴스 기자를 만나자 마자 뜻밖에도 자동차가 아닌 북한의 대집단체조 ‘아리랑’의 변화에 대해 먼저 얘기를 꺼냈다.

“이번에 평양에서 아리랑을 보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오는 8월 공연에는 서울에서도 관람객을 불러 온다고 하는 데 핵보유국 구호라도 나오면 어떻게 하나 그런 걱정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핵과 관련된 장면은 전혀 나오지 않더군요. 재작년 공연에서 논란이 됐던 총검술 장면이 사라지고 태권도 시범이 들어갔습니다. 이 정도면 오는 8월 공연에 서울 사람도 부담없이 공연을 보러 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박 사장은 이렇듯 ‘아리랑’에서 정치적 색채가 많이 엷어진 것을 중요하게 평가했다. 그는 “이번 공연을 보면서 북한이 일정한 조건만 충족되면 핵을 포기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화제를 자동차로 돌렸다. 평화자동차는 지난 2월 선양(瀋陽)의 자동차제조업체 화천(華晨)자동차와 미니버스 ‘진베이하이스(金杯海獅)’에 대한 북한 현지 조립생산 계약을 체결해 중국 현지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는 “오늘로 화천자동차에서 ‘중화(中華)’라는 브랜드로 생산하고 있는 ‘쥔제(駿捷)’ 모델에 대한 1만㎞ 주행시험을 성공적으로 마쳤다”며 “오는 5월 평양 국제상품전람회에서 출품해 반응을 살펴본 뒤 생산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대목에서 박 사장을 수행하고 있는 비서는 “시험주행 과정에서 일부 북한 기업들은 ‘자동차 디자인도 세련되고 성능도 좋아 보인다’며 이미 구매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고 귀띔했다.

중화는 치루이(奇瑞)와 함께 중국 독자 브랜드의 자부심으로 꼽히는 자동차. 계획대로라면 쥔제는 북한에서 현지 생산되는 첫 중국산 승용차라는 기록을 남기게 된다.

박 사장은 하얼빈(哈爾濱) 하페이(哈飛)자동차에서 생산하고 있는 소형차 ‘싸이바오(賽豹) Ⅲ’에도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단둥(丹東)의 수광(曙光)자동차에서 SUV 차량 3종류, 화천자동차로부터 미니버스와 중형차의 차체와 부품을 수입해 조립 생산을 하고 있거나 생산할 계획이지만 아직까지 소형차까지 구색을 완전히 갖추지는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페이와 조립생산 합작계약이 성사된다면 평화자동차는 화물차를 제외한 모든 차종을 망라한 조립 생산라인을 구축하게 되는 셈이다.

이를 위해 박 사장은 이미 4년 전부터 이들 중국 회사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합작을 타진했다. 창춘(長春)에 있는 제일자동차와 합작만 성사된다면 중국 동북지방의 대표적 자동차 메이커와는 모두 손을 잡게 된다.

북한의 남포에 자동차 조립라인 공장을 갖고 있는 평화자동차는 자체 개발능력을 갖추고 있지는 못하지만 반제품 현지생산조립(CKD)이라는 방식으로 북한에 자동차 산업의 씨앗을 뿌렸고 이제는 어느 정도 결실을 맺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박 사장은 북한 자동차 산업의 대부로 불려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평화자동차는 북한에 조립라인을 건설해주는 대가로 부품공급점 및 자동차 수리점, 주유소 운영을 독점하는 권리를 얻었다. 북한이 CKD 방식으로 수입한 모든 외국산 자동차는 평화자동차를 통해서만 애프터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이미 평양시내에는 평화자동차가 개설한 부속품 상점과 수리점, 주유소가 문을 열고 영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한국 자동차를 북한 현지에서 조립생산을 하면 더 좋지 않았을까”
이 대목에서 박 사장은 북한의 정치적 상황과 경제적 논리를 들어 ‘한국 자동차가 북한에 들어갈 수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평화자동차의 북한 측 합작파트너는 국영 회사이기 때문 수입선 결정은 북한 당국의 의사가 반영될 수밖에 없다는 것. 중국, 특히 동북지방이 지리적으로 북한과 가까워 물류비가 적게 들뿐 아니라 자동차의 가격이 다른 외국산 자동차에 비해 저렴한 것도 이유로 꼽았다.

박 사장은 “중국 회사들이 북한을 중시하는 이유는 ‘코리아’이기 때문”이라며 “북한이나 한국에 진출해 브랜드 이미지를 제고한다는 전략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아주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고 소개했다.

북한 관광사업도 추진하고 있는 그는 평양-신의주 도로의 상태를 살펴 보려고 일부러 비행기를 타지 않고 이날 오전 자동차를 타고 평양을 출발, 정주와 신의주를 거쳐 단둥으로 빠져 나왔다.

그가 기자에게 보여준 정주 부근의 도로 사진은 오랫 동안 개보수를 하지 못한 탓인지 도로를 다질 때 사용했던 큼지막한 자갈들이 노면에 그대로 드러나 있을 정도로 열악한 모습이었다.

박 사장은 덜컹거리는 도로를 달리느라 피곤했을 법도 했지만 “평양에서 신의주로 가는 동안 우리 회사에서 조립 생산해서 판매한 미니버스를 3대나 목격할 수 있었다”며 환하게 웃음을 지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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