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철 칼럼] 김정일과 카다피의 닮은점과 차이점

지난 해 12월 튀니지에서 시작된 중동 민주화 시위는 튀니지와 이집트, 예멘의 독재자들을 굴복시켰고, ‘철옹성’으로 알려진 리비아마저 무너트리며 42년 철권통치자 카다피로 하여금 비참한 죽음을 맞게 하였다.


우리는 리비아의 독재자 카디피의 최후를 보며 북한을 떠올린다. 돌이켜보면 세계의 정치학자들이 구소련 및 동구가 붕괴할 거라는 걸 선뜻 예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이른바 ‘복종’의 종교가 지배하는 중동이 민주화 시위의 물결로 순식간에 요동칠 것이라는 점 역시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엄연한 역사의 시간은 우리에게 엄중한 역사의 진리, 자유 민주의 승리라는 지당한 진리를 또 한 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지구상 마지막 남은 ‘독재지대’라 할 한반도의 북단 북한 역시 이 거대한 역사의 파고를 비켜가지 못할 것이라는 이치를 생각하는 것이다.


카다피와 김정일은 참으로 닮은 구석이 많다. 독재의 기간과 방식, 일족(一族)의 권력독점과 부정부패, 권력세습 그리고 독재자의 무자비한 성격까지 판에 박은 듯하다. 그런데 리비아의 42년 철권통치자 카다피는 북한의 독재자 김정일에 비하면 ‘천양지차(天壤之差)’인 측면이 있다.


카다피는 독재를 했지만, 리비아의 국민소득을 1만 달러 이상, 사우디아라비아와 비슷한 수준으로 올려놓았다. 핵무기 개발을 시도하였지만 2003년 과감하게 핵을 포기하고 서방의 지원을 끌어들이는 선택을 했다. SNS 혁명을 가능케 한 인터넷도 일정하게 허용하였다.


그러나 김정일은 온갖 폭압 기구를 동원해 주민들을 억압하는 것은 물론 수백만의 주민을 굶어 죽게도 하였다. 대외 개방은커녕 최소한의 자구책인 주민들의 ‘장마당’도 철저히 탄압하고 있다. 2002년 2차 핵문제를 야기, 국민이야 ‘거지’ 신세가 되든 말든 국제사회와 극단적 대립각을 세우며 핵무기 보유에 몰두하고 있다. 그나마 최근 들어 휴대폰이 빠르게 보급되고 있지만, 북한에서 일반인 중에 인터넷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렇듯 차이가 남에도 카다피가 비참한 최후를 맞는 것이 ‘사필귀정(事必歸正)’이며 ‘정의’라면 김정일의 운명 역시 불을 보듯 뻔한 이치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현실을 좀 더 냉정하게 볼 부분이 있다.  


카디피의 최후를 보며 김정일이 어떤 생각을 할까. 김정일은 카다피가 독재를 완화하였기 때문에 민중의 ‘칼’이 자신의 목을 겨누는 상황을 만들고 말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핵무기를 포기하였기 때문에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고 여길 것이다.


사실이 그렇다. 카다피는 시위대를 향해 조준 사격과 미사일 공격까지 했던 인물이다. 시위대가 트리폴리를 에워싼 가운데도 내전을 선포하며 탱크 부대를 출격시켰으며, 거꾸로 시위대를 제2수도 벵가지로 몰아넣고 항복을 종용하던 카다피가 결국 패배하고 붕괴하게 된 데는 역시 국제사회의 인도주의적 개입이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이다.
 
이에 김정일이 앞으로 택할 방향 역시 자명하다. 북한 주민에 대한 통제와 억압을 더욱 강력하게 시행할 것이고 무엇보다 핵무기에 더욱 집착할 것이다. 김정일은 결사코 핵무기로 최후의 상황을 대비하려 할 것이다. 결국 김정일의 핵무기는 북한 인민의 저항을 억누르고 국제사회가 아니 대한민국이 북한 인민의 편에서 섣불리 김정일을 ‘포박하지’ 못하도록 하는 유용한 장치가 되는 것이다.


김정일의 핵무기는 바로 그런 것이다. 항간에서 이야기 하듯 미국과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위한 ‘수단’이라느니 경제적 대가를 더 많이 받아 내기 위한 ‘협상용’이라느니 하는 ‘미사여구(美辭麗句)’ 이전에 인민들을 억압하고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결정적인 순간을 대비한 김정일의 직접적인 방편인 것이다. 김정일이 리비아의 카다피처럼 북한 주민들을 향해 학살을 자행할 때 한국과 국제사회가 인도적 개입에 선뜻 엄두를 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안전장치 인 것이다.


십년 여간의 시간 동안, 그런 핵무기를 김정일이 ‘착실히’ 확보하는 과정을 ‘두 눈 뜨고’ 바라본 것이며 동시에 북한 주민들의 압제와 고통을 ‘두 손 놓고’ 바라보고 있었던 것임을 우리는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북한 주민들 역시 리비아 민중들처럼 독재에 저항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상황이 어떻든 카다피를 무너트린 근본 동력은 리비아 민중들의 저항과 투쟁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같은 민중의 분출은 언제 어떤 식으로 터져나올지 알 수 없으며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다. 북한에서 리비아와 같은 상황이 전개되고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 김정일이 카다피처럼 국민들에 대해 무자비한 학살을 감행한다면 우리는, 외부 사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카다피의 최후를 보며 민주주의는 ‘피의 대가’를 요구할지언정 반드시 승리한다는 자명한 역사의 진리를 확인한다. 카다피와 김정일의 운명을 오버랩하는 동안, 동시에 우리는 좀 더 냉정하게 북한과 우리의 미래를 고민하고 대비하여야 한다.


어떻게 하면 희생을 최소화하며 북한 인민의 저항이 성공에 이르도록 할 수 있을지, 그를 위해 대한민국이 그리고 우리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야 한다. 오늘 이 순간 한반도 문제를 어떻게 바라 봐야 할지 우리는 더욱 책임있는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 그것이 바로 리비아 민주화 시위의 ‘혹독한’ 과정과 성공이 우리에게는 던져주는 생생한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