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상봉] “아버지 울지 마세요”

북쪽에 두고 온 두 딸 산옥(63) 경선(59)씨를 화면을 통해 만난 남쪽의 아버지 지장용(97)씨는 내내 눈물을 닦느라 손수건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함북 경선군에서 살던 지씨는 6.25전쟁이 터지자 부인과 아들, 두 딸을 고향에 남겨둔 채 남쪽으로 내려왔다.

“어머니가 아버지 시신이라도 찾겠다고 청진까지, 멀리까지 갔다 돌아오셨어요. 전쟁 시기 어머니가 얼마나 고생하셨는지 모릅니다. 1974년 10월 돌아가셨어요”라는 경선씨의 말에 지씨는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경선씨는 “여기에 어버지 손자가 12명이고 증손자가 11명입니다. 많이 뒀습니다”라고 말하며 사뭇 웃음을 지었으나 지씨가 눈물을 감추지 못하자 “아버지 울지 마세요. 눈물 흘리면 건강에 해로워요”라며 자신도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네 오빠, 영호는 어떻게 됐어”라는 지씨의 말에 경선씨는 “오빠는 심장병으로 30년 전에 돌아가셨어요. 어려운 일 도맡아 하고 우리한테 얼마나 잘 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이 효자라고 칭찬하셨어요”라고 말했다.

북쪽의 두 딸은 지씨가 자신들을 버려둔 채 남쪽으로 내려간 데 대해 원망을 털어놓기도 했다.

경선씨는 “명절 때면 다른 가족들은 어머니, 아버지 손 잡고 놀러가는데, 우리는 어머니 손을 잡고 갈 때 아버지없는 서러움을 얼마나 느꼈는지 몰라요”라며 아버지에 대한 섭섭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경선씨는 또 “학교에 갔다 왔을 때 다른 애들은 ‘아버지 학교 다녀왔습니다’라고 하는데 우리는 이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왜 아버지가 없을까 하고 원망도 많이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북쪽의 두 딸은 결혼 후에도 외지로 나가 살지 않고 고향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경선씨는 “할머니 돌아가실 때 ‘너네 아버지는 죽을 사람이 아니니 고향을 뜨지 말아라. 통일이 되면 꼭 만난다’고 하셨어요. 어머니도 우리 시집 보낼 때 ‘아버지를 만나게 될지도 모르니 고향을 떠나지 말라’고 하셔서 언니도 가까운 데 살아요”라고 말했다.

북쪽 친지들의 안부를 들으면서도 지씨가 눈물을 감추지 못하자 산옥씨는 “아버지 눈물 거두세요. 우리 건강하게, 아무 근심 걱정없이 잘 살고 있어요”라고 위로했고, 남측의 며느리도 “아버님 시간 많아요. 천천히 하세요”라며 진정시키기도 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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