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상봉] “만남을 정리해달라” 방송에 울음보

19일 오전 1시간동안 예정된 작별상봉을 하던 남북이산가족들은 한 목소리로 ‘고향의 봄’ 등을 부르며 사흘간의 짧은 만남 뒤에 다시 맞는 작별의 아쉬움을 달랬다.

그러나 예정시간 5분여를 남기고 “이산가족 만남을 정리해 달라”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오자 여기저기서 울음이 터지기도 했다.

0…남측 부인 김계실(79)씨와 딸 혜숙(59)씨를 만난 북측 김홍기(81)씨는 부인과 딸의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았다.

북측 김씨는 딸에게 “10년, 20년 후에라도 우리 자식들이 서로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도록 돌아가서 자식들을 잘 교육해 달라. 훗날 통일이 됐는데 형제끼리 길거리에서 마주쳐도 서로 못 알아본다면 어떻겠나. 그게 조선의 불행이야”라고 말했다.

그는 북측에서 재혼해 5남매를 뒀고, 남측 부인 김씨도 재혼해 3남매를 뒀다.

부인 김씨는 “그 전에 죽지 말고 살아서 만나야지”라고, 혜숙씨는 “할머니가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마음 때문에 91세까지 사셨어요. 통일까지는 아니더라도 서신왕래, 화상상봉 등 정부에서 문을 열어준다니 10년은 더 사셔야 해요”라고 말했다.

부인 김씨와 딸 혜숙씨는 상봉 마감을 알리는 안내방송에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0…북측 고동식(73)씨는 남측 누나 복성(76)씨의 한쪽 손을 꼭 잡은 채 다른 한 손으로 자신의 부인과 자녀들의 생년월일을 천천히 종이에 써 내려갔다.

동생이 청력이 약한 누나에게 목소리를 높여 “김옥란이 내 마누라인데, 1937년 6월 1일, 좀 있으면 진갑이오”라고 말하자 누나는 “응 가야지. 진갑 때 가야지”라며 “약 꼭 챙겨먹어라”고 말하고는 동생의 뒷머리를 쓰다듬었다.

북측 동생은 남측 누나에게 또 “우리 자식들이 말이야, 성격은 강하지만 정의감이 있어 나쁜 짓은 안 한다”며 “가정은 화목한데 명절 때가 아니고선 아이들을 볼 수가 없다. 이 사진은 명절 때나 보여주겠구먼”이라고 말했다.

눈시울을 붉힌 채 묵묵히 옆에서 듣고 있던 남측 조카 이창기(38)씨는 카메라를 들어, 57년만에 만났다가 다시 기약없이 작별하는 오누이의 찍었다.

0…북측 리성실(75)씨의 남측 제수인 신순화(69)씨는 “그 노래 알아요”라고 리씨에게 묻더니 ‘우리의 소원’을 먼저 불렀고, 손뼉을 치며 몇 소절을 함께 부르던 리성실씨는 “나보다 더 잘 부르는구먼. 그래, 우리 통일되면 또 만나자”라고 말했다.

함께 온 조카 이수일(61), 승일(57)씨도 노래를 부르다 양쪽에서 삼촌의 손을 잡고 쓰다듬기도 했다.

리씨의 형수 황윤옥(80)씨는 “나는 못 보더라도 꼭 90세까지 살아서 북에 있는 조카들을 남쪽에 있는 우리 조카들에게 좀 보여주소”라며 눈물을 훔쳤다.

노래를 마친 신순화씨는 “다들 잘 살아야 한다”며 “고생했으니까 더 잘 살아야지”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수일씨는 “방송에 삼촌 나왔어. 남쪽에 있는 뉴스에 삼촌 나왔다구. 아주 잘 나왔어”라며 리성실씨의 손을 다시 쓰다듬으며 웃다가 눈시울을 붉혔다.

0…남동생 고용호(73), 용진(70)씨를 만난 북측 누나 옥녀(78)씨는 6.25전쟁전 제주도에 살다 돈을 벌기 위해 혼자 상경했다가 북한 의용군으로 징집당했다고 말했다.

옥녀씨는 “통일 되면 다들 보자우”라고, 올케인 최종례(69)씨는 “오래오래 사셔서 통일되면 꼭 다시 만나요”라고 재회를 기약했다.

남측의 권해동(60)씨는 해룡(80), 순호(70.여), 순조(68.여)씨 등 형과 누나들이 북측 둘째 형 해영(77)씨와 함께 손잡고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촬영하면서 같이 노래를 부르다가 끝내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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