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상봉] “내가 너를 어떻게 또 두고 가느냐”

제16차 남북 이산가족 2회차 상봉 마지막 날인 22일 남북 가족들은 작별상봉을 끝으로 3일 간의 일정을 마쳤다.

0…남측 상봉단은 이날 오전 9시부터 1시간 동안 금강산호텔에서 기다리고 있던 북측 가족들을 만났다.

아쉬움을 달래기에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기 때문인지 가족들은 한마디라도 더 하고 한장의 사진이라도 더 남기기 위해 애를 썼다.

상봉 둘째 날 해금강 삼일포에서 권주가와 고향의 봄을 부르고 덩실덩실 춤을 추며 남측 형님 고영범(70)씨와 만났던 북측 남동생 광영(68)씨, 여동생 춘심(65)씨는 작별의 아픔에 연신 눈물만 훔쳤다. 동생들과 짧은 만남이 못내 아쉬운 듯 영범씨의 빰 위로도 눈물이 흘렀다.

형 고씨는 “올해 내가 칠순인데 초대장을 보내면 동생들이 오겠다고 하네 글쎄. 광영이 큰 아들은 며칠 후 장가를 간다고 해”라고 겨우 말을 이었다.

고씨는 위장병으로 고생하는 여동생에게 소화제를 건네준 뒤 “식후 30분에 12알씩 먹으라”고 자상하게 일러줬다. 의사를 불러 위장병약을 신청해 여동생 손에 꼭 쥐어주기까지 했다.

고씨는 또 이틀간의 만남에서 이미 다 들었던 얘기지만 남쪽에 돌아가서 기억하지 못할까가봐 전날 밤 적어온 질문지에 답을 적어달라고 동생들에게 부탁했다.

질문지에는 부모의 사망일자와 시간, 동생들의 현재 주소 등에 관한 질문이 적혀 있었다. 고씨는 “통일되면 만나게 될 테니 주소를 정확히 적어라”고 당부했다.

유형열(81)씨는 북측의 두 딸인 성옥(59) 후남(56)씨와 동생 춘단(72)씨에게서 큰 절을 받고 통한의 눈물을 쏟았다.

북측에 있는 쌍둥이 형과 조카들을 만난 이봉근(88)씨는 호텔 바닥에 앉아 조카 내외의 절을 받았다. 조카 내외는 “또 절을 올릴 수 있는 날까지 건강하게 계시라”며 울먹였다.

딸과 외손자를 상봉했던 남측의 김성도(86)씨는 “이게 사람 사는 거야. 또 너를 두고 간다”면서 홧김에 지팡이를 부러뜨렸다.

57년만에 부인을 만난 최길선(85)씨는 부인 송종순(75)씨를 앞에 두고 마지막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선뜻 입을 열지 못했다. 부인의 의자를 가까이 끌어당긴 뒤에도 한동안 말이 없었다.

“60년 전에는 아가씨였는데 얼굴이 주글주글한 것을 보니 맘이 안 좋아”라고 입을 열었으나 눈시울이 금세 붉어지며 얼굴 표정이 굳어졌다. 서울 주소를 또박또박 적어 건네고는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차명재(72)씨의 여동생 옥희(53)씨는 오빠를 보자마자 울음부터 터뜨렸다.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면서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오빠”라고 힘없이 입을 열었다. 차씨는 여동생을 다독거리며 “또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홍인석(82)씨의 북측 아들 국환(62)씨는 “아버지, 통일 빨리 해서 다시 만납시다. 아버지는 남에서, 저는 북에서 노력합시다”라며 아버지 손을 꼭 잡았다. 북측 막내딸 명옥(58)씨는 “통일 때까지 아버지 건강하게 오래 사시도록 건배합니다”라며 즉석건배를 제의하기도 했다. 남에서 온 이복 여동생 용옥(44)씨와 국환씨도 서로 손을 맞잡았다.

1.4후퇴 때 황해도에서 홀로 남으로 내려온 뒤 57년만에 아들과 손자를 만난 노병헌(83)씨도 다가오는 이별이 두려운지 연신 물만 들이켰다. 북측 아들 덕성(64)씨는 “통일되면 꼭 모시고 살겠다”며 아버지 손을 잡았다.

0…떠들썩하던 행사장은 “만남을 정리해 달라”는 장내 방송이 나오자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딸 2명과 동생 2명을 만난 최문성(87)씨는 헤어짐이 고통스러운 듯 안내방송이 끝나자마자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동생 문필(71)씨는 테이블에 얼굴을 묻은 채 울음을 터뜨렸고 두 딸은 아버지를 쫓아가며 부짖었다. 하지만 최씨는 끝내 돌아보지 않았다.

부인과 57년만에 만난 최길선씨도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다 “당신은 정말 효부야. 고마워”라는 말을 남긴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 남측 가족들이 2층 행사장에서 계단을 따라 내려오자 북측 가족들은 난간에 매달린 채 “이모”, “엄마”, “아버지” 등을 부르며 오열했다.

차마 계단을 내려서지 못하는 남측 가족들을 아래로 인도하던 주최측과 의료진도 모두 눈시울을 붉혔다.

남측 가족들은 예정된 작별상봉 시간이 끝나자 금강산호텔 밖에 있는 버스에 먼저 올랐다. 다시 헤어져야 하는 뼈아픈 현실에 호텔 앞마당은 이내 눈물바다로 변했다.

안금철(80.여)씨는 버스에 올라타고서도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민 채 “보배야, 내가 너를 어떻게 또 두고 가느냐”며 크게 울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다른 가족들도 모두 버스 창문을 열고 가족들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남측 가족들을 태운 버스가 시동을 걸고 움직이자 호텔 앞은 “어머니”, “아버지”, “막내야” 등을 외치는 북측 가족들의 목소리로 범벅이 됐다. 57년만에 다시 찾아온 이산의 아픔 앞에서 떠나는 사람도, 남는 이들도 한맺힌 울음을 참지 못했다.

제17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 일정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금강산=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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