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천역 참사 1주년] ① 그후 어떻게 달라졌나

융단 폭격을 받은 듯 거의 폐허더미가 됐던 룡천은 참사 1년이 못돼 주민들이 일상을 되찾았고 산뜻한 신도시로 탈바꿈했다.

1t급 폭탄 100개가 한번에 터진 것과 맞먹는 폭발의 위력으로 150여명의 사망자와 1천300여명의 부상자가 난 참사의 현장은 마치 교외 신도시 같은 곳으로 탈바꿈했고 학교와 주택 재건축이 완료돼 800여가구의 이재민들이 새 주택단지에 입주했다.

외국 기자로는 드물게 작년 말 룡천을 방문한 호주 일간지 오스트레일리안의 베드란 드라쿨릭 기자는 폭발로 집을 잃은 이재민들은 수개월동안 불안과 고통속에서도 친척과 이웃, 적십자사의 도움으로 견뎌왔지만 최근 복구작업이 진척을 보이며 한시름을 덜고 있다고 전했다.

북한 내각 기관지 민주조선의 특집 보도에 따르면 1천650가구를 수용하는 2-3층 짜리 현대적인 주택단지가 새로 건설된 것을 비롯해 7천 가구에 달하는 주택이 대대적으로 보수되거나 세워졌다.

3층이 무너져 내린 흉물스런 모습과 부상 어린이들이 참혹한 모습으로 참상의 상징이었던 룡천 소학교는 작년 9월부터 다시 문을 열었다.

특히 컴퓨터와 TV 등 최신 교육시설을 갖추게 된 룡천소학교에는 외국손님과 전국 각지에서 숱한 사람들이 달라진 모습을 참관하기 위해 그칠 새 없이 찾아온다는 게 이 학교 최병렵 교장의 설명이다.

새로 만들어진 읍 거리에는 건평 600㎡의 국숫집을 비롯해 다양한 편의시설과 공공건물이 들어서고 기본 및 간선도로도 교통편의를 보장할 수 있도록 새롭게 닦였다. 상하수도 망도 제대로 갖춰졌다.

국제적십자사의 건설 및 설비 지원을 받아 1천365㎡ 규모로 착공된 3층 짜리 종합진료소도 올해초 문을 열었다.

존 스패로 국제적십자사연맹(IFRC) 베이징 사무소 대변인은 최근 사고지역을 다녀왔다며 모든 이재만이 작년 말까지 새 주택에 입주했고 주민 생활이 완전 정상을 되찾았다는 말을 북한 관계자들로부터 전해들었다고 말했다.

룡천의 이같은 대변신은 한국과 국제사회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이뤄진 것이지만 북한 당국은 오히려 체제 선전에 열을 올리고 있는 모습이다.

파편에 맞아 한눈 또는 양눈을 모두 잃고 시설이 빈약하기 그지없는 신의주 병원의 병상도 아닌, 캐비닛 위에서 신음하던 룡천 소학교 아이들의 소식은 더 이상 전해지지 않고 있다.

“룡천읍이 오늘 인간사랑의 화원 속에 선군시대 선경으로 변모됐으며 룡천 사람들은 화를 복으로 전환시켜주신 장군님의 위대한 사랑의 이야기로 꽃을 피우고 있다”는 노동신문의 보도는 북한 특유의 선전술을 보여준다. 룡천 역에 작년말 김일성ㆍ김정일 혁명사적 표식비가 건립되기도 했다.

대한적십자사에 따르면 룡천 사고이후 대북 지원은 한국이 정부와 민간을 합쳐 644억원, 국제사회는 1천800만 달러에 이른다.

대규모 인명ㆍ재산 피해를 낸 룡천 참사를 계기로 북한은 이례적으로 신속히 사건 진상을 공개하는 유연한 태도로 한국과 국제사회의 지원을 끌어내며 일단 복구에 성공했다.

한국도 신속하고 대대적인 인도주의적 지원을 통해 남북 관계 개선 효과를 봤지만 ‘반짝’에 그치고 조문파동 등으로 남북 관계는 다시 경색 국면을 맞으면서 민간 교류확대로 이어지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룡천은 신도시로 탈바꿈했지만 이는 오히려 체제 선전의 기회로 적극 활용됐고, 남북 관계 활성화는 아직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상기시켰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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